추모공연후기

우봉 이매방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날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 저 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니 오랜만에 뵙는데도 바로 나를 알아보셨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선생님 얼굴에서 숨길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께서는 같이 이야기 좀 하다가 연습실로 올라가라 하시며 나를 붙잡으셨다. 그때 선생님과 마주앉아 오래도록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가 된다. 얼마 후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을 때 그 소식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뵌 그 날이 생각나 가슴을 쳤다.
선생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 내가 이화여대 무용과 2학년일 때였다. 그때는 아직 선생님께서 인간문화재로 지정 받으시기 전으로, 마포에 있는 연습실에서 『승무』와 『살풀이』 등 전통춤 강습을 하시던 시절이었다. 나도 어릴 적부터 한국 전통춤을 좋아해 학교나 학원에서 배운 것은 있었지만, 선생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살아 숨 쉬는 진짜 전통춤을 알게 되었다.
이매방 선생님을 추억하면 선생님의 여러 모습들이 떠오른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모습은 당연히 춤을 추시는 모습이다. 가만히 앉아 계시다가도 벌떡 일어나셔서 손짓 한 번 발 디딤 한 번으로 멋진 춤사위를 보여주시곤 했다. 장구 장단도 선생님만큼 잘 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연습할 때 선생님의 장구 장단으로 춤을 추면 저절로 없던 흥도 솟아났다. 음악도 집에서 직접 릴 테이프를 만져서 만드신 것이었다. 또 손재주도 뛰어나셨는데, 자주 재봉틀 앞에 앉아계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의 무대 의상을 전부 직접 재봉틀(싱거미싱을 쓰셨다)로 만들어 선물해주셨는데,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신 승무의 장삼과 고깔, 살풀이 의상과 아얌은 지금도 애지중지 보관 하고 있는 내 보물 1호다. 목수일도 척척 해내셔서 선생님 댁에는 직접 만드신 선반이나 장이 이곳저곳 많이 있었다. 내 기억 속 선생님은 이렇게 춤 말고도 재주가 많은 분이셨다.
선생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 “마음이 고와야 춤도 곱다.”
다른 일도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 춤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러니 고운 춤을 추려면 마음부터 곱게 다스려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춤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내면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는 뼈가 있는 말씀으로, 항상 내 가슴에 깊이 새겨두고 있는 말씀이다.
이번 1주기 추모공연은 선생님께 춤을 배운 제자들이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70명이 넘게 모여 준비한 뜻 깊은 공연이었다. 특히 올여름은 연일 폭염주의보가 이어지는 날씨로 연습에도 지장이 많았다. 수십 명이 모인 연습실은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3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사우나를 방불케 했지만, 우리의 선생님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을 몰랐다. 나이도 지역도 다른 개성 넘치는 70명의 춤꾼들이 각자 다른 일들은 모두 제쳐놓고 모여서 공연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매우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로지 이매방 선생님의 제자라는 공통점 하나와 선생님을 추모하는 마음 하나로 가능했던 일이다.
2016년 8월18일 저녁 7시30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70명의 제자들이 피땀 흘려 준비한 공연의 막이 올랐다. 공연은 『호남 검무』를 시작으로 『입춤』, 『사풍정감』, 『승천무』, 『대감놀이』, 『살풀이춤』,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 대목(안숙선), 『장검무』, 『승무』, 「판굿」(창작 타악 그룹 유소), 마지막으로 『삼고무』 순으로 진행되었다.
정기공연마다 선생님께서 항상 출연하시던 춤이 있는데, 『입춤』, 『승천무』, 『승무』, 『살풀이』가 그것이다. 『입춤』에서는 선생님께서 나무꾼 의상을 입고 지게를 메고 춤을 추시다 무대 뒤의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시면, 우리가 무대 위로 나가는 순서였다. 이번 추모공연에서는 예전에 촬영된 선생님의 영상이 스크린 안에서 대신 춤을 추었다. 모두들 무대 뒤에서 그 영상을 보고 있다가, 마치 진짜로 무대 위에서 선생님께서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계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눈시울을 붉혔다.
『승천무』는 이매방 선생님께서 혼자 추시던 춤이었다. 이번에는 그 자리를 최창덕 선생이 대신하였다. 강처럼 무대를 가로 지르는 길고 하얀 천 사이를 하얀 종이배를 들고 때론 유유히 때론 거침없이 누비시던 선생님을 떠올렸다.
『살풀이춤』(중요 무형문화재 제97호)은 사모님을 비롯해 원로 6분이 앞부분을 추고, 다른 제자 21명이 뒷부분을 추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살풀이춤』 이수 시험 때면 의상을 선생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매해마다 그 색상과 소품(노리개, 아얌)이 조금씩 달랐다. 선생님의 손길이 어린 의상을 입고 단체로 춤을 추니 다시금 선생님 생각에 감회가 남달랐다.
『장검무』는 이매방 선생님께서 1950년대에 중국 경극 배우 매란방에게서 배운 검무와 우리 전통 검무를 바탕으로 창작한 춤으로, 이번 공연에서 특별히 따님(이현주)이 무대 뒤에 띄워진 선생님의 영상을 보고 있다가 춤을 시작하였다.
『승무』(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도 살풀이처럼 전반은 사모님과 원로 2분이, 후반은 18명의 제자들이 선생님이 지어주신 장삼과 고깔을 쓰고 함께 추었다. 마지막은 『삼고무』로, 「판굿」이 끝날 무렵 무대 양쪽에서 이층 단이 등장하고, 22명의 무용수가 함께 신명나게 북을 울리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커튼콜 후에 모든 공연자가 선생님의 사진을 향해 묵념을 하면서 공연이 끝이 났다. 선생님이 오늘의 공연을 보셨다면 “나도 춤을 추고 싶다”고 하셨을까? 오랜 세월을 춤을 추셨지만 마지막까지도 계속 무대에서 춤을 추고 싶어 하셨던 선생님의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제자들이 준비한 공연이 선생님 마음에는 차지 않으셨을 테지만, 선생님을 향한 제자들의 사랑이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