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

─ 공식적인 데뷔는 언제 어디서 하셨나요?
* 나의 데뷔는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창단 공연입니다. 1975년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꼭두인간』 작품을 발표하면서 연극인 최주봉 씨와 함께 했는데 꼭두각시춤이였죠. 한국 잠뱅이 의상을 입고 줄인형춤을 추었어요. 최주봉 씨는 줄을 조정하는 조정자였어요. 그의 강렬한 몸짓과 눈빛으로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아마 소극장 공연이 그때부터 시작이었을 겁니다. 아주 작은 소극장인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작품을 발표했고 어쩜 새로운 시도였어요. 나의 『꼭두인간』은 사회상을 반영했고 아름다운 춤을 추는 그런 춤은 아니었어요. 창단멤버는 이청자, 김옥규, 이정희, 김복희, 김화숙, 박명숙, 박인숙, 양정수였습니다. 그때부터 컨템포러리무용단의 1~3회 공연을 마치고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여 『살푸리』 연작 1~9까지 계속 안무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1980년 민주화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사람들이 민주화를 열망하고 있었던 사회상이었죠. 그때부터 나는 의식있는 춤을 추고 싶었고 무용가로 예술가로 사회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 올해 무용인생 50주년을 맞으시는데 지금 소감은 어떠신가요?
�� 올해로 나이 앞에 7자가 붙었어요. 깜짝 놀랄 일이죠. 나이와는 상관없이 철없이 산다고 할까요. 아! 나도 이제 내 삶을 정리 할 시기가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12월 한 번 중간정산을 하려구요. 지난 시간들의 흔적들인 사진과 영상을 정리 하고 있는데 무척 많군요. 잊고 지냈는데 영상 기록은 그때를 상기 시켜주고 그 모든 시간들의 기억속으로 유영하게 합니다. 역시 그 모든 순간들은 아름다웠으며, 나의 패기가 넘치던 젊음도 열정도 몸짓도 춤도 모두가 내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거나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 특히 야외공연 『봄날 문밖에서 춤』 공연을 1980년 초부터 시작했죠. 봄이면 봄이 좋아 밖으로 나갔던 거예요. 모든 나뭇잎이 새롭게 솟아오르고 아지랑이 피고 자연은 그렇게 태동을 시작하죠. 그래서 자연과 동화되어 밖에서 거리에서 춤추어왔습니다.
그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진행된 야외공연입니다. 지금은 일반화되었지만 그때는 제가 시작이였어요. 야외공연으로 국토를 순례하고 마라도에서부터 판문점, 최남단 마라도에서 을릉도, 독도를 거쳐서 민족의 한이 서린 철책선까지 단원들과 함께 종주를 했던거지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휴전선 철조망 앞까지…, 분단의 아픔을! 그 울부짖음을! 그 열정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 선생님 작품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무엇인가요?
* 나의 작품의 정신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 바로 이 국가와 사회죠. 내가 숨쉬고 부딪치고 있는, 지금의 이곳의 ‘나’란 거지요. 난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다시 여과되어 제 작품속 무대 위 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재창조되었지요.
처음엔 이정희는 춤을 제대로 추지 않는 무용가라고 말을 들었고, 무용계는 사실 대다수가 춤동작 위주의 춤추기를 좋아 하죠. 춤을 위한 춤! 어떤 동작들을 해보여야만이 그것이 춤이 되는 것이고, 춤을 추게되는 이유라고들 생각들 하죠. 춤이란 정지해 있는 것, 걷는 것, 서 있는 것, 모두가 춤의 요소죠. 진정한 의미에서의 춤이란, 정신과 육체의 합일에서만이 탄생되는 거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느끼게되요.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서 어떤 순간에는 ‘정지된 상태’로 머물러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지요.
내가 첫 작품에 줄인형춤을 추었던 것처럼 환경과 인간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지요. 우리는 영혼을 가지고 있고 보다 나은 사회 환경에서 살기를 갈망하죠. 그러한 영혼, 바로 그러한 춤을 추고 싶어요. 내 작품 속엔 그러한 것들이 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유한한 죽음의 이미지가 그 안에 있는거죠. 그래서 삶은 애틋하고 슬퍼요.

─ 마사 그레이엄, 머스 커닝험, 호세 리몽 등 뉴욕에서 현대춤을 공부하셨는데 그분들께 구체적으로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 뉴욕에서 무용학교 전전하며 다녔는데 그때 한국은 다양한 춤이 없었고 모든 현대 예술이 뉴욕에 집중되어 있었으니 그때 그곳에서 공부 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였죠. 1980년 초 뉴욕은 현대무용의 메카였죠. 마사 그라함, 머스 커닝험, 앨빈 애일리, 모두 생존하셨고 직접 무용학교를 운영하셔서 배울 수 있었죠. 그리고 현대무용이 지닌 사상과 철학 그리고 실험과 창작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춤이 모두 거기에 있었습니다. 세계 무용인들이 춤을 배우려고 모여 들어 무용인구도 많았고 공연장은 무척 수준 높은 관객으로 차 있었어요. 공연장 로비에 가면 알 수 있었죠. 타분야 예술가들이 무용을 즐겼으니까요. 링컨센터 앞 발레북 샵은 책과 무용용품을 사고파느라고 북적였는데 지금은 문을 닫은 지 이미 오래되었고 그 중심가 무용학교들은 외곽으로 떠나 몇 남지도 않게 되었죠. 이것은 시대적 흐름으로 봐야죠, 우리 무용계도 그 여파를 타고 있는 것이지요. 뉴욕에서 느낀 점은 춤의 다양성 그것이죠. 그것을 인정해주고 높여 주는 것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1980년 귀국직후 안무하신 『살푸리80』으로 시작된 살푸리 연작은 한국 무용계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자 작품입니다. 처음 무대에 올렸을 때 준비과정이나 주변 반응, 어려움 등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나의 『살푸리』 연작은 내가 작품을 왕성하게 할 수 있던 1980년대죠. 그때 「대한민국 무용제」가 시작되었고 시상도 있고 해서 열기가 한창이었어요. 한국 현대춤이 팽창하던 시기였죠. 『살푸리80』으로 안무상을 받고는 『살푸리 둘』때도 상을 받았어요. 매년 쉬지 않고 9편의 연작을 냈습니다. 당시 사회는 온통 민주화 물결로 들끓어 있을 때였죠. 그건 나의 사회상과 맞물려 나의 춤으로 살푸리를 한 거죠.

─ 국립무용단을 통해 발표한 『자연인』은 한국춤과 현대춤의 결합을 최초로 시도한 것으로 주목의 대상이었는데요.
* 달을 소재로 한 『자연인』은 조용한 한국춤과 현대춤으로, 무대는 달의 3분의 1을 쪼개 올려 놓고 라이브음악과 그 위로 오르내리는 무용수들 모두 잘 어울린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이번에 영상을 꺼내 보면서 한 번으로 끝난 것이 너무 아쉬운 작품이었어요.

─ 비디오영상의 도입 등 선생님은 춤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키셨는데요 그 작업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지요?
* 필름 비디오 & 댄스(Film video & dance)는 이동현 감독과 함께한 작품으로 영상작업 비디오 작업인데 무대공간을 확장 시키는 융합의 작업입니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 쉽지 않은 작업을 남편이 함께 도와준 셈이죠. 그런 작품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 경동교회 강원용 목사님과도 인연이 깊으시지요?
* 경동교회는 음악 무용 연극 등의 공연을 특별예배에 많이 올린 교회였어요. 담임목사이신 강원용 목사님께서 직접 감독을 하셨어요. 그곳에서 새로운 관객들을 접할 수 있었고 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했었습니다.

─ 몸학교를 열어 춤치유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요, 그 계기와 의미, 혹시 운영 상 어려움을 겪는 점은 무엇이 있나요?
* 지금의 나의 생활은 춤을 통해 지역인들과 만나는 일입니다. 그동안 경험한 것들을 나누고 춤을 지도해요. 춤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를 그리고 나이 들어갈수록 모든 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춤을 통해 심신을 건강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요. 그래서 힐링댄스도 지도하고 있어요.

─ 어머니와 같은 길을 가는 이루다, 루마를 포함해서 춤계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 이루다 이루마 두 딸에게도 춤을 가르쳤어요. 그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춤과 오래했다는 것은 누구도 쉽게 따라 올 수 없는 것이지요. 배운 춤을 어떻게 시대가 요구하는 것으로 창조해 나갈수 있는지 그것을 연구해야 해요. 무대만 생각하지 말고 열어 놓고 많은 가능성을 찾아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몸을 지니고 있고 몸을 소재로 하는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과제이며, 최고의 경지라고 믿습니다.

[8월25일 이메일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