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집안에서든 공동체에서든 서너 명만 모이면 신기하게도 누구나 가까운 사람 중에는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반드시 존재한다. 왜일까?
그것은 어쩌면 물건을 고를 때 내 취향이 아닌 물건이 반드시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치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 중에는 단지 나와 코드가 다른 것뿐만 아니라 나에게 악의적으로 대하는 사람도 있다. 웬일인지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 한 명 정도는 꼭 꼬이는데, 특히 한국사회에서 그렇다. 나에게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해주면 고맙게 여기고 ‘나도 그래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런 사람을 소위 ‘물로 보고’ 내 맘대로 휘두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드러내게끔 자극하는 것 아닌가 싶다. 흔히들 ‘기가 쎈(!)’사람 일수록 부드러움을 선으로 보기보다는 기가 약한 사람 취급하며 어떻게 해서든 내 밑에 두어야겠다는 일종의 서열매기기와 같은 동물적 본능이 충만해서다. 가정, 학교, 군대, 회사 등 상하관계를 분명히 그어야 하는 집단 일수록 상하의 갈등이 심하고, 상하관계가 보호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강자와 약자의 논리로 변질되는 것을 흔히 목격하게 된다.
최근 인터넷 블로그를 보다가 한 여성의 사연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성격도 무난하고 외모도 나쁘지 않은 인상의 소유자지만 막상 집에서는 태어난 이래로 성인이 된 지금까지 뭘 해도, 하지 않아도 입버릇처럼 내뱉는 “재수 없는 년”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친부모에게. 특이점이라면, 그녀의 부모는 사업상 일이 잘 안 풀려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식이 그들의 운을 막고 있다고 믿어서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으로 자식을 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회적으로는 상식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30년 가까이 언어학대를 들으며 살다보니 내면에 자존감이 상실되어 살기가 너무 힘든 지경에 이르러 인터넷을 찾은 것이다. 부모가 자신을 본인들 분노의 쓰레기통쯤으로 생각하고 욕만 해대니 이러다 정신병 걸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까지도 된다니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생각이 운명을 만들고 인격을 만든다는데 언어적 학대 때문에 현재도, 미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라고까지 하소연을 했다. 이제껏 부모 복 없는 자신의 팔자라고 위안하면서 살았는데 정신과를 다녀볼지, 아니면 따로 독립해서 살지 여러 의견이 듣고 싶은 것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잠시 생각을 하고 다음글로 이어나갔으면 한다. 대부분 네티즌 반응은 곧 서른이고 이미 성인이니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나가라며 독립을 조언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수적으로는 정신과 치료도 조언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의견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어쩌면 혼란만 가중시킬 수도, 길가다가 훈수를 두는 정도의 막연한 동정으로만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댓글들을 읽어 내려가다가 한 인상적인 글을 발견했다.

“저는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댓글에 왜 독립 못하냐는 글이 참 서늘하게 느껴져요. 저렇게 자존감이 낮아지면 사회에서 좋은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쉽게 말해서 나 스스로를 좀 더 발전적으로 가꾸고 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에 적극적이지가 못 하게 돼요, 다른 집에서는 사랑과 정성을 듬뿍 줘서 키워도 사회란 정글에 나오면 적응하기 힘든데, 집에서조차 시들시들하게 키운 잡초가 정글로 가면 더욱 발에 채이기 마련이죠. 학습된 무력감도 독립을 주저시키고, 또 부모들 역시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자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식이 독립하려고 하면 저지합니다. 저런 부모들은 자식을 통제하고 휘두르는 쾌감이 크다는 걸 알거든요. 어디다 풀겠어요. … 무엇보다도 효과 있었던 건 나 스스로에게 부모가 되어서 내 마음 다독거리고, 내가 부모로서 자식한테 말하는 것처럼 나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괜찮아, 잘 할 수 있어, 어린 시절이 너무 개떡 같아서 남들보다 느리지만 지금부터 잘 할 수 있어, 나는 잠재력이 많은 아이야라고요. 저 머리 참 좋은 사람인데, 낮은 자존감과 불안한 정서, 그리고 자기비하는 두뇌회전마저 느리게 만들더군요. 성공할 수 있는 좋은 타이밍에 주저하게 돼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그리고 필요하면 의절하세요.
제가 제일 힘들었던 게 사회적인 반 무의식적 메시지였어요, 자식은 효도해야한다. 부모에게 공손해야한다, 자식은 부모한테 그러면 안 된다 등등 근데 부모대접도 자격 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노릇을 제대로 했어야 자식한테도 대접 받는 거예요. 전 그래서 그런 사회적인 메시지 힘들게 뿌리쳤어요. 그리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건강가정지원센터나 그런 곳에서 무료상담이라도 받아보세요. 도움이 될 거예요.” - 인터넷 블로그에서 인용

객관적이고 통찰력 있는 이 댓글을 읽은 네티즌들은 ‘가족같은’ 정서에 마취되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일깨움으로 인해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정말로 결혼과 동시에 가정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무자격으로 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1990년대, 미국의 전철 안에서 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경찰 두 명이 한 남자 흑인을 체포하고 있고 그 옆에 초등학교 정도로 되어 보이는 아들이 그 남자에게 울부짖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영문 카피문구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다시는 돌아오지 마! 당신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못해!’의 내용이었다. 어쨌든 그때 광고는 가족 폭력에 관한 내용이었고 경찰에 신고하면 가족폭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광고를 보면서 언뜻 ‘아, 미국에서는 부모를 경찰에 신고 할 수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나는 만약 술주정뱅이 부모가 술을 더 가져오라고 폭력을 휘두르면 그 부모를 묶어서 병원에 보내더라도 술을 더 이상 못 마시게 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단지 부모를 ‘묶었다’는 것만으로 몹쓸 자식이 되어버리는 것이 한국적 정서다. 술 살 돈이 없으면 몸을 팔아서라도 아버지께 술을 바치는 것이 효도라는 한국적 정서가 깊게 배어 있기에 이 같은 광고가 나에게는 꽤 인상 깊게 뇌리에 남았다.

우리는 부모도 한 인간이라는 것을 늘 망각한다. 유교적 도리에 입각해 자신의 가정도 그렇지 않으면서 남들에게는 ‘모두들 도리를 지키고 살겠지’라는 이율배반적이고도 형이상적인 가정 상을 주위사람들에게 끼워 맞추려고 하고, 끼워서 맞지 않을 경우 비난하거나 수근 댄다. 부모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둘러서 신고를 하면 한국경찰의 해결방법은 아직까지 ‘집안에서 해결하라’ 정도이며 미연방지보다는 누군가 죽어야 사건에 개입하는 낙후된 처리방식이라는 것을 미국 전철에서 본 그 광고 이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부모로부터 학대받는 자녀들에 대한 사례들은 일찍이 「콩쥐팥쥐」, 「장화홍련」 등의 잔혹동화에서 보았듯이 역사가 오래됐고 지금도 간간히 뉴스로도 접하지만 사람들에게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사건은 주로 ‘자식이 부모에게 어떻게(!)’식의 이야기다. 이미 호주제가 폐지된 지 오래고, 2016년을 살고 있는데 생각은 조선시대의 대가족 같은 한국의 정서가 고쳐지지 않는 한 여기에 대해 부모가, 혹은 강자가 저지르는 가족폭력을 개선할 법이 한국에는 미비하다. 마치 한국이 담배에 대해 관대한 이유는 윗선이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라 하는데 법을 만드는 사람들의 가정을 의심해봐야 하는 것 아닌지 싶다.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기른다는 것은 희생이 따르고 애정과 헌신이 따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경외심은 당연하다. 그러나 준비도 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애정 없이도 아이를 만들고 살 수 있다는 것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친부모는 친자식을 반드시 사랑한다는 막연한 공식은 없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자주 목격하면서도 우리는 정서의 마비 속에서 깨닫지 못한다. 시부모의 잘못을 지적하는 며느리는 막 되먹은 것이고, 결혼한 자식이 지적하면 결혼하더니 변했다고 말 할 수 있는 정서에서 막장드라마는 수요를 충족시키는 공급이라는 점에서 욕하면서 보게 되는 것이 그리 신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왜 그에게 휘둘리는가: 내 인생 꼬이게 만드는 그 사람 대처법」. 서점가를 거닐다 눈에 띈 제목1) 이었다. 크리스텔 프티콜랭이라는 프랑스 작가의 심리학 저서로 내 주위에 있을 법한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로, 주로 언어폭력으로 심리적으로 괴롭히고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자기가 한 말을 제멋대로 뒤집는가 하면 늘 불평불만을 일삼고 자꾸 잘못을 들춰 나 스스로 자책하게 한다. 겉으로는 흠 잡을 데 없어 보이지만 미숙하고 비열한 성격을 감추고 있는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답답해지는 그 사람은 직장 상사, 연인, 엄마, 친구, 남편…. 누구라도 될 수 있다.” - 프티콜랭 「나는 왜 그에게 휘둘리는가」 부분

거부하지 못할 위치에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자들이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심리적으로 이들의 공통된 심리는 누구든 먹잇감을 만들어 자신의 감정대로 휘두르려는 것인데, 작가는 이러한 부류들을 언어적 폭력으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하는 ‘심리 조종자’라 명명했다. 이러한 부류의 가장 큰 문제는 인용구대로 밖에서는 멀쩡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한 쪽이 오히려 문제 있는 사람으로 누명을 쓸 소지가 많다. 이러한 ‘심리조종자’는 지능범 이라기보다는 - 경험담을 보태자면 - 자신을 학대한 사람에게는 차마 되갚아주지는 못하고 대신 자신을 닮은 누구에겐가 받은 대로 갚으려는 비겁함이 숨어있음이 있기 때문에 그의 감추어진 이면에는 그를 다치게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이들은 상대방이 괴로워할수록 그 악의가 심해지기 때문에 작가는 이러한 굴레에서 과감히 떨쳐나갈 것을 권고할 뿐 만 아니라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날 괴롭게 했던 그 사람이 사실은 그저 애기처럼 떼쟁이에 불과한, 미성숙한 겁쟁이였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그 지배에서 한결 수월하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독자들을 다독인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채 나이가 먹는 어쩌다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은 위치에서 갑으로 행세하는 끔찍한 세상을 살고 있는 세상이다. 가정을 갖게 된 한 어른으로서, 나는 합리적인 어른으로서 준비가 되어있는지, 또 그러고 사는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무더운 여름의 휴가동안 심호흡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점검해보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다.


--------
1) 「굿바이 심리 조종자 (2012)」의 복간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