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고블린파티 『은장도』(8월19~2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초연작 『은장도』는 고블린파티의 기존 레퍼토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우선 임진호, 지경민으로 연상되는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임성은, 이경구, 이연주 그리고 안현민 이상 네 명의 여성 무용수들만 이 작품에 출연 한 것이 그렇다. 게다가 제목에 부응하듯 극장을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삼면의 백색 가벽과 바닥은 그간 친숙했던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의 블랙박스 시어터 분위기와도 사뭇 달랐는데, 프로그램에서 말한 것처럼, “은빛햇살 가득한 빛을 머금은 섬“을 뜻하며 백색이 의미하는 순결의 의미 곧 여성과 절개를 상징하는 듯도 해보였다.
참고로, 제목인 『은장도』는 은장도(銀粧刀)가 아닌 ‘은장도’라는 섬이다. 풀벌레소리와 함께 암전 그리고 무대가 밝아지면 백색 상자위에 네 명의 무용수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불상처럼 가부좌를 틀고 좌정해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곧 바닥으로 내려앉고는 무표정으로 이내 무거운 입을 뗀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데?”
은장도에 예전부터 구전되어오는 듯한 신세한탄 노래를 시작으로 무용수 각자 대사를 읊으면 나머지 세 명의 무용수들은 고대 그리스극에서 나오는 코러스처럼 음률에 맞춘 코러스로 메인의 대사를 강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서 기술한 비극이란, 순진무구한 선인이 환경의 영향과 실책의 결과로 휘말리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인생의 불일치를 보며 관객이 느끼게 되는 연민과 공포 등을 통해 감정이 정화(카타르시스) 된다는 것이다. 비교적 언급이 잘 나와 있지 않은 희극도 한 인간의 무지에서 시작 된다 볼 수 있으나, 선인이 아닌 악인(어리석은 인물도 포함)이 벌이는 행위에 대한 모방으로 묘사된다. 이 때문에 시학에서는 비극을 희극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말한 찰리 채플린의 명쾌한 한마디만큼 희극과 비극은 별개가 아닌 늘 공존하는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싶다. 아니 오히려 희극이 비극보다 묘사하기란 배로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한 선상에서 『은장도』역시 조선시대에서 한국으로 이어진 여성이라서 겪게 되는 비극을 희극적으로 풀어내려는 데 그 의미가 있으며,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의 “개념”을 언급한 것처럼 이 나라의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외국인 혹은 제 3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명하려 했는데, 여자의 이야기를 두 남성이 방향제안하고 네 명의 여성이 공동 창작 및 공연했다는 점이 작품개념을 증명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가냘프고, 귀엽다 라고도 느껴질 만큼 인상적인 코러스의 부드러운 발성이 팀워크 플레이라 생각할 만큼의 일사분란하고 날카롭다 싶을 만큼의 정교함을 완화시켜 ‘투명하고 예리함’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속의 무용수들은 ‘은장도’로 도망쳐온 1세대 여인들인지, 그들을 조상으로 둔 후예들인지 프로그램의 작품 소개와 본론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간혹 보인다. 이야기의 구성이나 분노를 표출하는 동작의 표현방식으로 봐서는 전자에 가까우나 사회적인 불평등을 받아본 여성을 묘사하기에는 아직 내면의 서투른 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조선 여성의 정절의 상징인 은장도(銀粧刀)는 분명 여성의 소지품이었지만 유사시 이를 활용하게 만든 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적 통념이었다. 작품 『은장도』역시 남자가 설계한 여성전용용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