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최근 젊은 무용가들에게 우려스러운 점은 컨템포러리댄스로의 접근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영역과 조우하는 컨템포러리댄스의 예술적 지향은, 예술가 몇몇이 만나서 갖가지 실험과 즉흥에 의존하여 춤 작품을 만든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도리어 묵직한 개념과 철학, 독창적인 시도와 혁신, 신선한 아이디어와 개성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어가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도 순수 예술가로서 춤에 대한 진지한 고찰, 열정, 집중력, 고집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
적지 않은 젊은 무용가들이 방향감각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상황은 안타깝지만 사실 그들만 탓할 수도 없다. 길잡이를 해줄만한 중견무용가들 중에서 순수하게 예술창작에 몰두하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어졌으며 한두 단계 올라선 선배격 무용가들을 보더라도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도전으로 다가오는 현실에서, 젊은 무용가들에게 예술적인 깊이까지 바라는 것은 사치일지 모르겠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동요 없이 순수 예술가로서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젊은 무용가들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 고블린파티 『은장도』(8월19~2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고블린파티는 8월19~20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은장도』를 선보였다. 지경민과 임진호의 방향제안에다가 이경구, 임성은, 안현민, 이연주의 공동창작으로 명시되어 있으나, 공연현장에서 받은 인상은 창작과 실행에 있어 이경구의 영향력이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임진호의 『아이고』로 큰 두각을 나타낸 젊은 여성무용가인 이경구는 이제 고블린파티의 신진 파워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현대무용에다가 한국적인 춤사위, 수행적인 몸짓, 일상적인 행위, 놀이적인 행태 등을 버무려놓은 듯한 움직임은 견고한 짜임새를 보이며 진행된다. 작품은 여러 개의 장면들로 이루어지는데, 각 장면들마다 주어진 동작 콘셉트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움직임을 엮어가고 풀어가는 과정이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다. 근래에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작가적 집요함이 돋보인다.
이는 여러 가지 소품을 사용할 때도 여실히 나타난다. 동작에서처럼 소품 사용에 있어서도 존재 의미가 불분명한 전시를 배제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창조적 활용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 젊은 감각의 재치와 유머를 표현하는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코미디를 차용하는 순간에서조차 표피적인 웃음을 거부한 채 고착된 흐름을 뚫어주거나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는 등의 세련된 연출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물론 이경구가 임성은, 안현민, 이연주와 함께 짚어 봐야 할 과제도 있다. 각 장면마다 주어진 동작 콘셉트에 지나치게 몰입하다보니, 장면과 장면 사이에 연결성이 떨어지고 큰 주제의 틀이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관계로, 항상 굵직한 심지를 의식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이경구를 필두로 한 그녀들에게 있어 가장 큰 가능성은 예술적 순수성이다. 순수한 젊은 무용가에게 있어 예술적 순수성은 진지한 고찰, 열정, 집중력, 고집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며 이는 곧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 국립현대무용단 『아카이브 플랫폼』(8월28~2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8월27~28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는 국립현대무용단 ‘아카이브 플랫폼’의 일환으로, 윤정아는 『동시대의 무용공연 향유자와 실존적 매개의 거리 관계에 다른 해석수준 분류와 분석, 그 실재적 재현이 거북이를 수용하는 주체의 예술대상에 대한 곶감정도에 미치는 영향의 실증』이라는 어마무시하게 긴 제목의 작품을 선보였다. 단어들의 불분명한 나열은 마치 춤 공연에서 쓸데없고 무의미한 말들이 난립하는 일부 젊은 춤을 비꼬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러한 제목이 장황하고 현학적인 프로그램 글과 함께 놓이다보니, 비틀기의 효과는 반감되었다. 도리어 무대 위에서 펼쳐진 흥미로운 행태들에 대한 순수한 접근을 방해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객석은 무대 위에 올라가 있다. 대극장 무대 위에 행위공간과 관람공간을 밀접하게 조성해 놓은 것이다. 그곳에서 윤정아는 여민하와 최민과 함께 국립 아카이빙 시스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 중에서 최근 11년간의 컨템포러리댄스를 찾아 각 작품의 주요 장면, 몸짓, 소재, 소품 등을 일부 차용하여 본인의 작품에 심어놓았다. 그 구체적인 대상은 안성수, 안애순, 안은미, 박호빈, 정영두, 한창호, 김성용, 김보람, 차집엽, 임진호 등의 작품들이다.
차용의 절정은 주요 소품을 매개로 하여 관객을 끌어들이는 부분이다. 차진엽의 『로튼애플』에서 가면, 최승윤의 『도시밀착형 퍼포먼스 매뉴얼: 공사장 편』에서 안전모, 최승윤의 『관람의 점수(The Scores of the Spectators)』에서 색 테이프를 차용하여 관객 참여를 유도한다. 한 쪽에서는 가면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안전모를 나눠주는 가운데 중앙 바닥에서는 테이프를 붙이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관객의 일부를 가면그룹, 안전모그룹, 테이프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극장의 정문, 로비, 객석으로 이끈다. 객석으로 이끌린 관객들은 얌전히 앉아 돌아가는 상황을 관람할 수 있었지만, 정문과 로비로 이끌린 관객들은 무용가가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주섬주섬 움직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모습이 그대로 동시 투영되었다.
윤정아는 자기 작품의 예술적, 실험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아카이빙 작품들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는데 이는 컨템포러리댄스로의 올바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러 춤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데 있어 불확실한 부분이 적지 않으므로 보다 핵심을 끄집어내려는 노력은 요구된다. 그 무엇보다도 윤정아가 본 무대를 상당히 현명하고 영리하게 실현시켰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팸플릿에 쓴 글에 드러난 대로 ‘이론의 실증과 검증을 가장’하지 않았더라면 성사되기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아직은 별다른 기대 없는 상태에서 발견한 가능성이니 만큼 이경구와 윤정아의 갈 길은 멀다. 이후 가능성을 자기 실력으로 업그레이드하여 확인시켜야만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신진 무용가로서 첫 단추를 잘 꿴 만큼 차분하게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한 단계씩 성장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