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6일 인쇄
2016년 9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6년 9월호 통권 487호 |2025년 7월 3일 목요일|
 

공연평

 

우리시대 ‘거인들’에 대해 생각하다
- 노정식·국립발레단




박민경(朴玟京)(춤평론)

* 노정식 안무 『거인들』(8월 4~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노정식의 안무작 『거인들』은 14명의 남녀무용수가 출연해 한 시간 동안 펼쳐진, 제법 규모있는 공연이었다. 제목의 ‘거인들’은 먼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초월적인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문헌에 따르면, 흔히 거인은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크고 아름다운 것에 가진 경외감과 공포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로 설명된다. 고대로 갈수록 주요 대상은 자연지물이나 자연현상 그 자체이고, 거인으로 묘사되는 신들은 대부분 자연현상의 상징인 신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수많은 신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거인이라 함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티탄족이 제일 먼저 연상된다. 거인신족은 그들의 권능을 제우스와 포세이돈 등과 같은 신, 즉 인간을 대변하는 것과 같은 신들에게 이양하는데, 인간과 신의 전쟁에서 인간의 승리로 해석되는 이야기다. 대충 해석하면, 인간은 자연적인 힘을 경외하며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에 맞서고 이겨내려는 양가적 태도로써 자연과 관계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작품과 관련해 안무자는 인간을 초월하는 거대한 무엇과 그러한 거대한 힘을 바라는 인간을 ‘거인’으로 상정하고, 거인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다고 밝혔는데, 여기서 욕망은 다소 부정적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거인들’이라는 제목은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어느 정도 함축한다. 푸른 초원처럼 바닥을 초록색으로 뒤덮은 무대연출은 간단히 대자연을 연상시키고, 또한 두 팔을 다리처럼 사용하는 듯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원시성을 표출한다. 원시적 세계에서 인간은 대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했고, 따라서 어우러져 조화롭게 사는 생명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진화와 진보를 통해 인간은 자연에 대적하는, 즉 다른 생명체들을 몰살하는 등 자연을 파괴하는 괴물로 변해가면서 급기야 자연을 지배하려는 존재로 군림한다. 이러한 세계에는 근본적으로 상생과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전쟁과 다툼과 야욕과 지배와 같은 파괴적 공격적 행위가 난무한다.
안무자는 이 같은 현실을 작품의 문제의식으로 삼아 장면들을 엮었다. 때로는 다수 무용수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역동적이면서 무게감 있는 힘을 과시하고, 때로는 연약한 육체의 한계가 대자연의 거대한 힘과 대조적으로 드러나는 동시에 인간의 한계로 비춰지게 하면서 흥미로운 구성이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또한 영상과 음향이 작품의 이해와 극적 분위기에 효과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였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꺾을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인 거인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 혹은 바람으로 끝나는 결말은 평화를 바라는 안무자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새삼 이 시대의 거인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거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최근 지원의 축소와 제반 환경의 변화로 개인공연이 감소하면서 중진급 안무가들의 규모있는 작업이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인데, 오랜만에 노정식이 단독 개인공연으로 규모있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선보여 그 존재감을 확인시킨 무대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동시대인이 처한 사회현실적 문제를 작품의 주제로 삼아 공감과 소통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작가적 인식이 건재한 작품이었다.

* 국립발레단의 「KNB 무브먼트 시리즈」(7월 30~3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국립발레단이 여전히 활발한 공연활동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딘지 힘이 빠진 것 같다. 발레단의 활기가 예전 같지 않은데, 눈에 띄는 새로운 작품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014년 부임해 3년째 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강수진 감독은 애초 기대했던 것과 달리 평범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발레리나로서 개인은 은퇴공연까지 잘 마무리하며 명성을 과시했지만 국립발레단의 감독으로서는 주목할 만한 활약을 보이지 못한 편이다. 특히 공연활동에 있어 레퍼토리 확대는 긍정적이나 크랑코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발란신의 『세레나데』 등 작품선정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발레단의 행보가 미래지향적으로 보이지 않고 여전히 클래식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레퍼토리 선정에 있어 현실적인 한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발레단이 어디를 바라보고 어떻게 나아가고 있다는 메시지가 전달되지 못한다면 그러한 레퍼토리는 감독과 발레단의 한계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 국립발레단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인 「KNB 무브먼트」(시리즈 2)를 진행했다. 단원들의 안무작을 발표하는 기회인 셈인데, 무료공연인데다 10여분 내외의 작품이어서 마치 워크숍 같은 인상을 주었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일곱 편의 작품이 80분간 진행(휴식시간 15분 제외)되었는데, 2인무를 비롯해 자유로운 형식의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발레단은 이 기획에 대해 두 가지 목적을 밝혔는데, 하나는 발레단 소속 무용수들이 안무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발레단의 레퍼토리를 생산하는 것이다. 발레단의 레퍼토리 확대, 특히 클래식을 벗어나 새로운 창작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보니 후자에 좀 더 주목하게 된다. 강수진 감독이 이를 발레단의 과제로 인식하고 실행에 옮기면서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한다. 다만 이번 공연을 보면서, 후자의 목적이 달성되려면 안무자를 점차 발레단 외부, 즉 춤계 전체로 개방해야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간 이벤트가 아니라면 단원들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뜻이다.
더불어 그동안 국립발레단은 레퍼토리 확보를 위해 꾸준히 신경을 썼고 거기에는 창작 활성에 대한 관심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같은 기획공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외부 안무가 초청으로 단원들이 출연하는 공연은 간헐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대부분 일회적, 즉 이벤트성으로 제작되면서 제대로 레퍼토리화되지 못했다. 따라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까닭도 파악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