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살롱

무더운 여름을 거치며 시들고 타죽지 않고 건강한 9월을 맞이하였으매 감사한다. 특히 8월 말의 두 색다른 춤공연은 내게 살아있음에 행복을 안겨주었다. 그 한 공연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장 깊고 넓게 아픈 상처로 남아 모두에게 작용하는 폭력과 억압을 다루고 있는 『린치(Lynch)』(8월26~2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다. 김성용이 안무하고 박은영과 마르코 카키자키가 춤을 추어 우리를 감동시킨 이작품은 현대무용의 모호함과 거칠어질 수 있는 약점을 극복한 훌륭한 무대였다. 김성용이 우리시대의 난제로 폭력과 억압, 그에 길들여진 무감각과 무력감, 그리고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통절하게 그려내고있는 한 편의 값진 무대였다. 두 무용수의 절실하고 적나라한 몸의 표현은 흔히 현대춤에서 놓치기쉬운 섬세함과 집요한 힘을 그들의 손과 손가락, 심지어는 발가락에 까지 미치는 온 힘을 다하여 인간의 심리를 지배하는 내면의 변화를 형상화하여 전달하는데서 안무가의 의도를 모두 제 것으로 소화한 훌륭한 춤꾼들이였다. 말하자면 안무자와 두 춤꾼들은 인간의 ‘감정과 심리의 지도’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전달해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영혼의 울림을 자아내게 하는 경지로까지 몰고갔다. 표정과 근육, 사지와 몸이 자칫 따로 놀게 되므로 해서 일어나는 부조화를 들키지 않을 만큼 몰입하여 추는 춤을 보았다는 행복과 감동을 전하는 데에는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창의성이 높은 소리와 음향, 그에 걸맞는 단순 명료하여 상징적이까지한 공간설정과 그 사용이 공연의 응집력을 높이고 있다. 지칫 현대무용어법이 스토리텔링에 치우칠 때 일어나는 어설픔과 겉멋으로 흐르기쉬운 위험을 김성용의 춤사위는 철저한 심리분석을 거쳐서 나온 인간 내면의 무색채감과 절규를 통해, 그리고 절망과 포기, 그 뒤에 오는 무력감과 무기력, 무너짐의 자포자기, 일상이 된 무심함의 반복을 간결함과 절실함으로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소리와 시간의 흐름을 잘 담아낸 무대는 금상첨화였다.
올 여름의 무더위를 날려버린 또 하나의 춤무대는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 국립발레단은 최태지, 강수진 예술감독이 이끌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스파르타쿠스(정영재, 이재우, 김기완), 크라쑤스(허서영, 변성완, 박종석)의 대비는 동화속의 인물들로 살아났고, 프리기야/예기나(김지영, 김리희, 박승기)의 춤은 무대위에 열정적인 사랑의 무게를 받쳐주고 있었으며, 70~80명이 넘는 무용단의 열기는 그들이 앞으로 한국의 발레계를 이끌어갈 인재들임을 과시하고 있었다. 스케일과 스피드, 스펙타클을 고루 갖추고 보기드문 열정과 재미를 뿜어낸 이번 공연은 볼쇼이 발레단의 신화를 이끌어 낸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안무와 세계무용사속에 뿌리내린 발레정신을 에너지와 열정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근육과 표정으로 섬세함을 담아내기에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으나 장장 3막으로 이루어진 3시간의 행복을 선사하였다. 발레가 한국에서도 세월을 쌓으며 대중예술의 한가운데 서있음을 여실히 확인시켜준 힘찬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