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20년 전 펴낸 시평 모음 책 제목은 「정직한 관객」이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만난 관객 얘기를 쓴 첫 글이 그대로 책명이 됐는데 현장을 봤던 이들로서는 빙그레 웃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당시 대상을 받은 쿠바 출신 작가 알렉시스 레이바 카초의 작품 「잊어버리기 위하여」는 2천 여 개 맥주병 위에 빈 배를 덜렁 올려놓아 쿠바 난민의 처지를 은유한 것이었다. 설치미술을 처음 접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영감, 인자 그만 보고 가십시다. 오래 본다고 아요? 다 배움이 깊어야 아는 법이제.” “자네는 꼭 날 무시해야 쓰겄는가? 모르긴 뭘 몰러?” “그라믄, 이것이 뭐다요?” “뭐긴 다 뭐여, 인생이란 맥주병 위에 떠 있는 빈 배란 말이시.”
비엔날레(2년마다 열리는 국제미술전)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20년 전, 한 촌부의 이 멋진 해설에 당시 ‘아태 지역’ 커미셔너를 맡았던 유 청장은 “미술평론가로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고 썼다. 현대미술의 이상야릇한 흐름을 총집합시킨 축제를 나름 연륜으로 소화한 이 솔직한 관객의 품평은 지금도 비엔날레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른다.
그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창설 20주년을 맞았으니, 비엔날레 개최를 일종의 평가 잣대로 본다면 한국 미술계의 약진은 대단하다. 올 9~11월에 전국에서 열리는 각종 비엔날레가 무려 6개다. 가히 비엔날레의 계절인 것이다. ‘2016 광주비엔날레’(9월2일~11월6일), ‘2016 부산비엔날레’(9월3일~11월30일),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6’(9월1일~11월20일), ‘2016 창원조각비엔날레’(9월22일~10월23일), ‘2016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8월26일~11월30일), ‘2016 대구사진비엔날레’(9월29일~11월3일)가 각기 내세운 주제를 중심으로 대충 어림해도 수 천 점 신작을 쏟아낸다. 여기에 청주에서 개최한 ‘직지 코리아 국제 페스티벌’(9월1~8일)과 안양에서 마련한 ‘제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10월15일~12월15일)까지 있어 시쳇말로 대략난감이다. ‘비엔날레 피로감’이랄까.
‘비엔날레’ 라는 형식은 20세기가 창안한 일종의 현대미술 터미널이다. 물산 장려를 위한 만국박람회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제 기능을 꽤 했으니 물릴 법도 하다. 미술인들조차도 시큰둥하니 퇴색의 기미가 짙어진 듯도 하다. 올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6’의 전시명은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다. 일본 작가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쓴 ‘20억 광년의 고독’이란 시에서 따왔다. “화성인은 작은 공 위에서 /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 어쩌면 네리리 하고 키르르 하고 하라라 하고 있는지.” 우리의 미래를 묻는 미술인의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