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2016년 폴란드 크라쿠프 공연초청
2016년 7월 17일~ 8월 2일까지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렸던 2016세계청년대회(WYD)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120개국의 세계 각국 청년 2백 여만 명이 참여했던 글로벌 행사로서 그들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우리문화를 알리며 한국예술을 경험하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러한 기회가 우리무용단에게 주어졌다는 기쁨으로 준비하는 내내 철저히 그리고 최고의 무대를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는 각오로 임하였고 단원들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열심히 땀 흘려 연습에 매진하였다.
이번 폴란드공연에서 세계 청년들이 환호한 작품 『몽(夢), 춤의 대지』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나에게 왔다.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직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그동안 적막해 있던 단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2015년 「제주 해비치 페스티벌」에 도전하였는데 “2016 민간예술단체 우수레퍼토리” 1순위 작품으로 선정되는 시원한 바람이 되어 격려를 주었다. 그 후 이번 폴란드 공연에서 『몽(夢), 춤의 대지』는 야외용과 실내극장용 버전으로 또다시 탈바꿈을 하였다. 이 작품은 호랑이와 곰의 기도에서 시작하여 인간이 된 웅녀와 인간이 되지 못한 호랑이가 작품 전체의 흐름을 끌어가면서 장구한 시간 속에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반만년 한국의 역사와 창조의 시간들을 춤으로 풀어가며, 인간의 유한함에서 비롯된 죽음에 대한 잠재의식을 새롭게 해석하여, 생사(生死)의 세계가 이어지며 영원한 미래를 채비하는 부활의 숨결을 이끌어냈다. 전쟁과 질병 등 인류가 겪고 있는 상처와 갈등을 자비로움으로 치유하려는 염원이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야외무대에서는 아픔과 갈등을 낭만적인 감성으로 끌어가다가 부채춤으로 꽃을 피워 미래로 떠나는 시간여행으로 이어지도록 작품을 완성했으며, 극장공연에서는 작품을 조금 심오하게 창작무용적인 기법으로 표출하고 대바라춤으로 자비를 보이며 천상장면으로 옮겨 가도록 하였다.
이번 폴란드 공연의 핵심은 번복과 시행착오 속에서도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축제였으나 무용페스티벌에 단순히 다녀오는 일이 아니었기에 무용공연 전문가의 도움없이 수많은 장애 요소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움직이며 우리 손으로 해결하고, 자체적으로 헤쳐 나가며 최상의 공연으로 해피엔딩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모든 급박한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면서 시행착오를 견디었고, 번복이 되면 번복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예술적인 무대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던 우리의 염원이 기적을 이루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아시아가톨릭청년대회」로부터 태동
2014년 5월 해미읍성, 솔뫼성지 일원에서 개최된 「아시아가톨릭청년대회(AYD)」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면서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된 행사였는데, 이 행사를 총지휘했던 가톨릭 대전교구 박진홍 신부는 처음 세인트폴발레단의 최지연 선생에게 추천을 받았다며 개막에 『부채춤』, 중간일정에 『신비의 북소리』, 폐막에 『대바라춤』의 공연을 의뢰했다. 이 대회의 개·폐막공연에 출연한 우리무용단은 4천여 명 아시아 청년들의 뜨거운 환호를 이끌어냈으며, 폴란드를 비롯한 외국선교사들도 이 공연을 통해 한국무용예술의 탁월성을 재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박 신부는 아시아 청년관객들의 뜨거운 반응과 행사 관계자들의 감동에 대하여 많은 얘기와 함께, 2016년 폴란드에서 열리는 「가톨릭세계청년대회」 본부측에 한국의 춤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정은혜무용단의 초청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그 후 박 신부는 폴란드 한국대사에게 정은혜무용단이 세계청년대회에서 공연하게 된다면 세계에 한국예술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무용단 초청 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나는 박진홍 신부가 나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안목이 없었다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박 신부는 부끄러워서 중국집에 혼자는 짜장면도 못시키는 분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후 박진홍 신부는 주폴란드 한국대사에게 무용단의 사진과 영상 자료를 첨부한 편지를 통해 세계청년들이 모이는 축제자리에서 한국춤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하였고, 이것이 현실화된 무대가 세계청년대회였다. 새롭게 한국예술을 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주폴란드 홍지인 한국대사는 흔쾌히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해외단체문화예술지원사업」에 예산지원신청을 하였으나 지역별 안배문제로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오자, 다시 외교부 공공외교 역량강화사업지원에 지원신청을 하여 정은혜무용단의 「2016년 가톨릭세계청년대회」 한국공연을 위한 예산(4천만원)을 확보함으로써 초청공연사업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스태프들의 항공권을 샀다가 취소했다가 다시 샀다
이번 공연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세계청년본부로부터 정은혜무용단에게 보내온 초청장은 세계대회본부 측에서 세계적인 공연단에게 보내는 3번째 초청장이라는 것이며 이는 한국문화를 열망하는 뜨거운 관심과 우리무용단의 역량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적인 공연단체들이 초청될 이번 대회에서 크라쿠프시내의 국립극장에서 독자적으로 3~4회의 한국창작춤 공연을 펼칠 예정이라는 내용의 초청장을 받고 매우 기뻤다. 지금까지 국경을 넘어 성공적으로 보여진 한류가 드라마, K-pop 등 일정 범위의 틀 안에서 펼쳐져 왔다고 한다면, 이제 그 경계를 벗어나 한국 춤 예술을 통해 좀 더 뚜렷하고 새롭게 한국철학이 담긴 예술작품으로 보여줄 필요성이 부각되는 시점이라는 생각에 뚜렷한 한국춤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적인 한국창작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한국무용계에서 독특한 표현법과 색깔로 인정받는 나름의 이미지와 특별한 감성적 아름다움을 포함한 이번 작품은 인류가 당면한 갈등과 상처들을 보듬을 수 있는 예술적 치유의 세계를 담아 더욱 그 성과는 높아질 것이다. 전 지구에서 모인 청년관객들에게 춤을 통한 동양적인 정신세계의 경험은 한국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할 것이며, 이와 더불어 공연에 참여하는 우리단원들은 관객들의 다양한 반응과 호응 속에서 자신들의 예술적 성장과 창의성 고취를 위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번 공연이 포스트 한류의 시작점이자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하는 소통의 기회로서 진정한 국제문화교류의 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였다.
200여만 명의 세계청년들은 크라크푸 시내에서 7일 동안 지역 내 야외와 실내극장에서 펼쳐지는 세계적인 예술작품들을 골라보는 기쁨을 만끽하게 되며, 그중 정은혜무용단 공연은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며, 한국 춤의 새로운 이미지와 독특한 감성적 감동뿐 아니라 인류가 갖는 공통적인 영감의 원천을 끌어내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청년대회본부에서 초청장이 왔고 공연은 확정되었지만 우리는 몇 회 공연이 어느 극장에 배정될지 모르고 있었다. 기다리라는 답만을 받던 우리는 이렇게 좋은 기회에 실내극장이어야 『몽(夢), 춤의 대지』 작품을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일단 실내극장에서 공연하기를 희망한다고 메일을 보낸 후 뜻대로 이뤄어질거라 생각하고 스태프(조명, 영상, 레이저 등등)들의 항공권을 예약하였다. 왜냐하면 하루가 다르게 항공비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갈 즈음, 극장이 아닌 야외메인 무대로 1시간30분의 공연이 결정되었고 공연시간은 오후 5시라는 연락이 왔다. 유럽의 여름은 밤 9시쯤 해가 지니 오후 5시는 대낮공연이었다. 그렇다면 조명, 영상 등의 스태프들은 가서 할 일이 없으니 스태프들에게 미안함을 뒤로 하고 항공권을 30% 수수료와 함께 취소하고 마음을 삭였다. 그런데 이틀 뒤 폴란드 한국문화원 김보민 팀장에게서 그라죌라 행사 총감독이 700석 규모의 실내 극장(필하모니아)을 주겠다고 하는데 공연 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바로 할 수 있다고 답했고 스태프들의 항공권을 다시 예약했다.

외교부에서 공공외교 역량강화사업지원 선정, 우리는 20명의 단원이 꼭 필요하다
2015년 10월27일 김현준 주폴란드 한국문화원장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해외단체문화예술지원사업」에 예산지원신청을 하기 전에 단원수를 조금 축소하면 지원을 받기 쉬울 것 같다며 규모가 크면 비용이 비례하여 발생하는 바, 소요금액이 지원 한도를 넘어서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답신을 보냈다. 한국춤의 강약고저의 아름다움과 다이내믹을 겸비한 탁월한 효과를 20명 이하의 단원으로는 극대화할 수 없다. 진정한 한국예술에 대한 위상과 이미지 제고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품을 축소하여 공연을 했다는 성과만을 올리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20명이 아니면 안하겠다. 그렇게 낸 지원신청은 「폴란드세계청년대회」가 세계문화교류의 중요한 장이 될 것이 분명함에도 결국 국제교류재단의 사업에는 선정되지 못하였고, 우리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2016년1월). 다시 힘을 내자고 생각을 할 즈음 김현준 문화원장에게서 기쁜 소식이 왔다. 외교부에서 「공공외교 역량강화사업지원선정」 심사결과 공연지원 예산 4천만 원이 결정되었다는 것이었다(2016년3월). 우리는 외교부에서 요구하는 셀 수 없는 예산안의 수정에 지쳐갈 무렵에 세계청년대회 본부의 초청장을 첨부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제예술교류사업에 지원하였고 8백만 원의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였다(2016년 6월).

기적적인 호랑이 탈의 운반
「탄생 댄스 비젼 페스티벌」이 대전예술가의집에서 7월6일과 8일 양일간에 걸쳐 공연되어졌다. 「정은혜무용단 30주년 기념공연」이라 중요 핵심 멤버였던 경진, 자영, 서진, 예나 등이 여기에 참여하였고 많은 단원들이 스태프로 뛰어야 했기에 폴란드 공연준비와 연습은 잠시 중단하고 정신없이 거기에 매달렸다. 박숙영 팀장은 이렇게 계속 일이 많아 폴란드 공연준비에 지장을 준다고 궁시렁 거렸지만 예정된 공연은 어쩔 수 없었고, 「탄생 댄스비젼 페스티벌」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작품 점검과 의상점검, 음악점검, 소품 점검을 끝내고 떠나기 하루 전 수하물 포장을 하려는데 ‘사이언스&드럼(Science & Drum)’에 나오는 북과 받침대, 호랑이 탈, 그리고 빔프로젝트가 문제였다. IS테러와 같은 일로 예민해져 있던 터라 빔프로젝트는 항공수하물 탑재불가판정이 나와 폴란드현지 렌트를 의뢰하였는데 가능할지는 기다려봐야 하고, 북은 항공수하물 규격에 맞추어 포장하더라도 대형 호랑이 머리 탈은 너무 컸다. 일찍 배로 부쳤어야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지만 나는 『몽(夢), 춤의 대지』 작품의 마무리를 위하여 호랑이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밤12시가 넘어서 포장을 위해 수하물 포장소에 가져가려니 자동차에 들어가지 않아 내 사위(우리는 민사우란 애칭으로 부른다)를 불러 밴에 태워 포장을 하러 갔다. 착하고 고마운 수하물 포장 아저씨와 자영이와 서진이가 밤을 꼴딱 새워서 포장을 해왔다.
7월17일 새벽. 드디어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버스가 왔는데, 28인승 버스는 짐칸도 작아서 의상가방도 다 안 들어가고 호랑이와 북은 물론 들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단골 트럭아저씨에게 연락을 했으나 새벽이라 전화를 안 받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할 때 겨우 트럭이 와 주었고 인천공항에 시간 내에 겨우 도착하였다. 여행사대표에게 호랑이 탈 때문에 현지에서 트럭 하나를 부탁한다고 하니 한국처럼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면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300kg이 넘는 대형수하물들이 비행기에 실릴까 긴장했는데 다행히 우리 공연 팜플렛을 보고 태도가 수그러들면서 짐은 모두 실렸다. 11시간 비행하는 동안 잠도 오지 않고 내 머리 속은 온통 호랑이 탈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으로 가득했다. 현지에서 트럭을 못 구하면? 비행장 어느 곳에 맡길 곳은 있을까? 호랑이탈의 제작비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부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갈까? 그럼 작품의 마무리는? 체코 프라하 공항에 도착하자 로비에 가이드가 나와 있었다. 만나자 마자 트럭을 부탁한다고 하니 박두선 가이드는 버스에 실어 보자고 하여 나가보니 대형 그레이하운드 유럽형 버스에 호랑이 탈이 수하물칸으로 기적처럼 쏘옥 들어갔다. 참! 일이 이렇게 풀리는 구나! 이번 공연은 대박이다라는 예감이 들면서 몸이 날아갈듯 가벼워졌다.

바르샤바 유스페스티벌과 홈스테이 추억들
외교부 지원으로 무용단 초청이 확정되자 박진홍 신부는 무용단원들도 대전교구와 함께 한 팀이 되었으니 바르샤바에서는 폴란드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나도 흔쾌히 동의를 했었지만 되돌아보면 바르샤바에서 우리 단원들에게는 매우 힘든 일정이었다. 청년들과 구보를 하는 등 빡빡한 모든 일정과 5일간의 홈스테이를 소화하면서 밤새워 다림질 등 공연 준비를 하고 다음 날 공연하는 식으로 엄청난 극기 훈련을 한 셈이었는데도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꿋꿋하게 지낸 우리 단원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7월22일은 이사야사도단53과 합동공연을 하고, 7월23일 「바르샤바 유스 페스티벌」이 열리는 그날 맑은 아침 햇살은 우리들 앞날의 희망을 비춰주는 듯 감미로웠다. 바르샤바신학대학 메인광장무대에서 우리 단원들은 부채춤을 추며 훨~훨 무대를 날아다녔다. 광장에 모인 참가자들의 환호성과 함께 끝난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리허설도 없이 바로 올라가게 된 무대 뒤에는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있어 단원들이 발에 걸려 혹시 넘어지지 않을까 내 마음은 콩알처럼 오그라들었었다. 이 날 홍지인 폴란드 한국대사와 김식 서기관이 공연을 보러 왔는데 오늘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역동적인 부채춤은 처음 보았고 전문성이 돋보여서 품위가 느껴진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전문적이라는 말은 내가 춤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뜻으로 들려 기분이 좋았다.

신작 『폴란드 여정』의 탄생
『폴란드 여정』 폴란드 공연을 향해 가는 길은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꿈을 향한 기도와 현실적인 부분의 갈등, 그리고 순례자 같은 마음으로 가는 구도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힘든 기다림의 시간과 기도가 있었다. 그런 마음과 느낌은 이 작품을 한 시간도 안 되는 순식간에 호텔 거실에서 완성해버렸다. 「바르샤바 유스 페스티벌」이 끝나고 다음 날인 7월24일, 크라쿠프로 떠나기 전 홈스테이 했던 폴란드 부모님들께 감사의 뜻으로 한국춤을 보여 드리자는 의견으로 조경진의 『부채춤』 솔로와 김자영의 『태평무』 솔로를 하기로 했는데 경진의 얼굴이 화장독으로 빨갛게 부어올라 도저히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자 그러면 나라도 『부채춤』을 추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박 신부가 전화로 어제 축제에서 우리 『부채춤』 공연이 소문이 나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고 있으며, 마침 오늘 홍콩신도가 많은 착한목자성당에서 바르샤바 마을 축제가 있는데 홈스테이 부모님들이 다 오시니까 그곳에서 하면 좋겠다고 제의하여, 그런 자리라면 부채춤 보다는 좀 더 깊고 심오한 동양적 신비의 춤을 추고 싶어 인터넷으로 음악을 찾고 바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의상은 가지고 갔던 누드 톤의 원피스를 입고 아래는 마침 한복 속에 입었던 미색 페치코트를 입으니 묘한 맛이 나는데 다리는 비치게 두고 버선만 신었고, 머리가 허전하여 고깔을 써보니 제법 멋지게 되었다. 가지고 있던 미색 숄을 잔디밭 앞 바닥에 펼쳐놓고 앉아 기도하는 모습으로 작품이 시작되고 마지막에 숄을 잡아 흩날리며 작품을 끝내었다. 『폴란드 여정』이란 제목은 공연하러 가는 택시 안에서 완성했다. 바르샤바 지역주민들은 사각형으로 잔디밭에 둘러앉아 매우 진중하게 춤을 감상했고, 공연 후 작품이 품고 있는 깊은 뜻을 사회자가 물어보기에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기도와 현실적인 부분의 갈등, 그리고 순례자 같은 마음으로 가는 여정의 길인데 그런 것을 느끼셨는지 궁금하다고 말하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연 후 주민들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다가와 베스트와 어메이징이라고 하며 사진촬영을 요청했다.
다음날 25일 아침, 바르샤바 홈스테이 일정을 마친 폴란드 가족과 단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작별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내가 단원들에게 정말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었다는 자부심과 젊음에 대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폴란드 대사의 초청으로 폴란드한국문화원과 대사관을 방문하였는데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복을 곱게 입고 대사관을 방문한 팀은 처음이라고 즐거워하시며 서익휘 영사와 함께 정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대사님께서 사주신 점심(한국음식)을 배불리 먹고, 폴란드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 곳, 본 대회가 열리는 크라쿠프로 이동을 했다.

크라크푸 올드타운 광장 야외특설무대 공연과 필하모니아 극장 공연
크라크푸는 한국의 경주처럼 유서깊은 고도이다. 200여만 명의 세계청년들이 모이기 때문에 숙소를 잡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의상 짐이 많은 우리 단원들이 유스호스텔의 비좁은 한방에서 불편함을 감수할 때 참으로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크라쿠프 내 곳곳에는 많은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세계청년들은 매일 저녁, 매일 낮, 그곳에서 공연을 했고 축제를 열었다. 그중에 우리의 공연은 가장 메인무대인 크라쿠프의 올드타운 광장 야외특설무대에서 진행됐다.
다행히 빔프로젝트가 현지에서 고가였지만 4일간 확보되었고 우리는 퀄리티 높은 공연을 위해 모든 스태프들과 단원들이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처음 레이저기와 빔프로젝트 등을 설치하고 무대깔판이나 포그기 등의 점검과 조명디자인, 북의 음향체크 그리고 계단무대여서 등·퇴장로가 달라져 급하게 작품을 수정하는 등등 리허설 3시간밖에 안되는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 나는 단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점검하지 못하고 공연하는 것이 너무도 불안하여 다른 팀들이 공연하는 동안 분장실에서 모두 앉아 작품영상을 보며 마인드 콘트롤을 통해 작품으로 이입해 들어가도록 유도했으며, 다섯 장면을 출연한 나도 공연 전 분장실에서 모든 신경을 작품에 몰입했다.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내 마음은 설렘과 감사로 충만했다. 전석 스탠딩으로 1시간 20분이상 진행된 공연에도 관객들은 우리에게 집중하였고, 중간 중간 무대에서 춤추는 단원들의 모습을 보니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어디선가 한국 청년 관객들이 ‘대한민국’을 외쳤다 그러자 세계청년들이 함께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기 시작했다. 가장 짜릿하고 소름끼치는 감격적인 순간, 폴란드 홍지인 대사는 예정에도 없이 무대 위로 올라와 나에게 아름다운 꽃다발을 전해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더욱 빛났던 꽃다발은 이 공연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었으며 단원들에게 공연의 마무리를 매우 흡족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나는 공연이 끝나자 많은 찬사 속에서도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극장의 여건이나 리허설시간 부족 등으로 귀한 공연이 내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 마음을 읽었는지 김 팀장이 다가와 “교수님 원하는 대로 다 못해드려 죄송해요.”하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짐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도 눈시울을 붉혔다. 최선을 다하는 나를 이해해주고, 마음을 다해 보필해준 그녀가 참으로 고마웠다.
28일 오전 크라쿠프 필하모니아 극장으로 의상과 소품을 옮기고 공간 리허설을 조금 진행하였다. 오후에는 음악공연이 예정되어 있어 무대를 비워주고 거리로 나가, 의상을 입고 하유준 작가(폴란드 한국문화원 인턴)와 즐거운 사진촬영을 했고, 단원들과 함께 전단을 나누어주며 한 명이라도 더 한국의 예술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 또한 밤늦게 광장무대와는 달라진 작품에 대한 해설을 다듬어 폴란드어와 영어로 준비할 수 있도록 김 팀장에게 보냈다. 필하모니아 극장은 음악전문 공연장이어서 춤을 위한 무대로서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올드타운 광장 야외특설무대공연을 본 후 그라쥘라 총감독은 포그기나 무대플로어 깔판을 깔아주는 등 모든 것을 허락하며 솔선하여 도와주었다. 또한 김 팀장은 현장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변수를 최선을 다해 슬기롭게 풀어주어 너무나 많은 큰 도움을 받았다. 필하모니아 극장에서는 창작무용적인 기법으로 변화를 표출하였는데, 광장무대와는 또 다른 폴란드인들과 관광객 그리고 세계청년들에게 큰 감동을 준 것이 확실하였다. 모두 기립하여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우리와 함께 했다. 공연 후 관객인터뷰를 하니 “이 공연을 보며 웃었고, 또 울었다. 내가 이 자리에 와 이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놀랍고 감사하다.”며 뜨겁게 호응을 해주었으며, 폴란드 한국문화원도 이렇게 광장무대와는 다른 작품으로 준비한 것이 놀랍고 자랑스럽다며 격려를 해주었다.

세계적인 무대에 서다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무용단이 대전에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장하다 정은혜무용단! ” 지인들에게서 온 이러한 문자들은 16일 동안의 피로와 우울감을 싸악 가셔주었다. 외교부로부터 체제비 지원과 세계청년대회본부측에서 극장 및 제반사항을 모두 제공받는 좋은 기회였던 이번 폴란드공연여행에서 느끼고 얻은 것이 많다. 모든 것을 다 얘기할 수 없지만 이번 공연의 성공은 우리 단원들의 극기적인 작업정신이 있었기에 그리고 박숙영 기획팀장과 김수경 연출의 헌신적 노력과 무대스태프가 함께 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예술에 대한 사랑을 넘치게 주신 박진홍 신부, 모니카 선교사, 폴란드 홍지인 대사, 한국문화원의 김현준 원장과 김보민 팀장의 고마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의 한류가 민속춤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예술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는 유럽인들에게 한국의 정신과 철학을 담은 진솔하고 승화된 예술작품으로 다가가 소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 점, 지난 55년 동안 한국의 전통춤을 추었고 창작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여 새로운 문화콘텐츠가 축적된 점, 한국인의 흥과 멋의 깊이를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느낀 점들은 폴란드 공연에서 『몽(夢), 춤의 대지』를 통해 큰 성과를 내었다. 이번 폴란드 공연과 같은 공연은 앞으로도 계속 시도되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가는 새로운 꿈이다. 이번 공연은 무용페스티벌에 단순히 무용공연만 다녀오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힘든 과정 속에서 예술적인 무대를 이루어 낸 그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의 염원이 이루어졌기에 너무나 행복하고 스스로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는 큰 씨앗을 뿌리고 돌아왔음에 틀림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