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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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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융복합전통창작무용극
-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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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金成泰)
(문화평론가·대구가톨릭대 산학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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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안무·연출의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8월27~28일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웅부홀)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후략)
- 병술년(1586년) 유월 초하룻날(6월1일) 아내가
위 글은 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 과정 중 조선 중기 이응태(1556~ 1586)의 무덤에서 발견된 한글 편지 중의 일부이다. 이 글을 쓴 ‘원이엄마’는 430여 년 전 조선중기 안동시 정하동 고성 이씨 귀래정파 문중의 며느리이다. 만 31살의 젊은 나이로 남편 이응태가 세상을 뜨자 애틋한 사랑을 담은 편지와 남편 병구완을 위해 삼과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들었던 미투리(신발)를 함께 관속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한지에 붓으로 빼곡히 써내려간 한글 편지에는 서럽고 쓸쓸하고 황망하고 안타까운 한 아내의 심정이 강물처럼 굽이친다. 이런 내용은 다큐멘터리 저널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소개됐고, 2009년 3월에는 ‘원이엄마 한글편지’와 출토물을 다룬 연구논문이 국제 고고학 잡지 「앤티쿼티」의 표지논문으로 실리기도 했다.
원이엄마의 자필 편지에는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이별에 대한 아픔이 절절히 묻어 있어 실로 감동적이다. 이에 많은 예술가들이 원이엄마를 소재로 한 작품을 산출하였다. 매일신문 기자 조두진이 쓴 「능소화」라는 소설로 재탄생하고 박재정이 주연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있었다. 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 「원이엄마」가 국립안동대학교 교수 박창근에 의하여 무대에 올랐다. 안동지방법원 인근에는 원이엄마 동상이 건립되어 있고, 안동 곳곳에 원이엄마 테마 공원 등 여러 명소가 조성되어 있다. 안동시 관계자는 “원이엄마 테마공원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감동을 준 곳인 만큼 가족, 부부, 연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새로운 명소로 각광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원이엄마에 관한 뮤지컬은 적어도 3가지 버전이나 된다. 먼저 2011년 및 2012년 안동 문화예술의전당에서 「불멸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다. 연출가 김광보, 작곡가 황호준이었다. 두 번째로 2013년, 2014년에는 극단 대학로극장의 이우천 감독이 연출한 작품 뮤지컬 「원이엄마」가 있고, 그해 2월과 11월 안동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뒤 경북 청송에서도 공연되었다. 작곡가는 박상수, 제작사는 두레문화기획이었다. 세 번째로 2015년, 2016년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이 연출한 작품이 있다. 연출자는 굳이 이 작품을 뮤직씨어터라고 칭하였다. 뮤지컬 또는 음악극이라는 용어를 피한 이유는 모호하다. 이 세 번째 뮤지컬의 작곡가는 옴브레(ohmbre)이다. 주최측은 작곡가 이름의 스펠링도 틀리게 기록하였고, 본명(김헌기)도 숨겨 관객들에게 불편을 초래하였다. 이 3가지 뮤지컬의 스타일이 각각 다르다. 그러나 지나치게 판타지화한 느낌이 있고 원이엄마의 숭고한 사랑이라는 명확한 주제를 표현하기에는 스토리가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있다.
안동아리예술단의 전통창작춤극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A Love that Conquered Death)』은 원이엄마를 소재로 한 예술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종결판이고, 한국전통무용극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표하고 있다. 원이엄마 모티브는 감동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너무 간단하다. 그래서 스토리를 극화하는 일, 특히 공연작품으로 무대에 올리기에는 쉽지 않은 과정을 넘어서야 한다. 먼저 스토리 구성의 적합성과 자연스러운 전개가 바로 그것이다. 앞선 오페라와 뮤지컬들은 원이엄마의 순수한 사랑을 벗어나는 지나치게 비약적인 스토리가 없지 않았다. 물론 각각 다른 장르 고유의 장점이 있겠지만, 원이엄마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표현함에는 순수한 몸짓의 무용극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의미에서 2010년 정숙희 교수의 무용극 「원이엄마」가 그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고, 관객들에게는 원이엄마 편지의 사본까지 제공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1부에서는 정숙희무용단의 「오고무」와 중국잉츠무용단의 무용이 소개되었고, 2부에 들어서야 무용극 「원이엄마」가 무대에 올랐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원이엄마 무용극의 완성판은 안동아리예술단의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은 예술총감독 김사라 교수가 쓴 대본에 있다. “일반적 역사극에서는 젊은 나이에 원이엄마 같이 사랑하는 남편을 잃게 된 여인의 삶을 운명적이고 수동적인 한(恨) 으로 이해하는데 비해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은 운명을 자유의지로 극복함으로써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을 부각시켰다. 어떻게 보면 서구적/역동적/현대적 여성성을 부각시켰다.” 이는 원이엄마의 편지 그 자체에서 이미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에 근거한 작가의 해석과 예술총감독의 무대 위에서의 표현인 셈이다.
문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창의성으로 재구성된 극의 내용과 전개는 다음과 같다. “천상에서 생명의 신과 죽음의 신이 서로 내기를 하면서 인간의 사랑을 시험하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사랑에 빠져 행복에 겨운 두 남녀에게 분노와 질시를 느끼는 죽음의 신이 이응태의 생명을 앗아가고, 그의 부인 원이엄마는 상실감과 절망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자결을 결심한다. 그러나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선 마지막 순간에 삶을 선택한다. 뱃속에서 생명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생명을 잉태했고, 생명은 죽음을 극복하며 다시 사랑을 낳는다. 원이 엄마의 숭고한 사랑의 힘에 감복한 죽음의 신은 자신이 내기에 진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쌍둥이, 생명의 신과 화해한다. 원래 하나였던 죽음의 신과 생명의 신이 다시 하나로 융합된 것은 그들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숭고한 사랑의 힘에 감동을 받아서 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신에 의해 조정되는 운명적 존재로서 피동적인 삶을 살지 않고 자유의지의 소유자로서 운명을 개척하고 스스로의 삶을 창조해나가는 고귀한 영혼이라는 것이 이 극의 주제”라고 예술총감독이 밝힌바 있다
극의 주제와 구성이 가히 파격적이었고 신선했다. 이는 종래의 모든 한국 문학과 예술이 원이엄마와 같은 여성이 가혹한 운명에 처했을 때 통상적으로 한(恨)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해온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서곡부터 시작하여 1장 신들의 게임부터 10장 생명의 빛에 이르기까지 그 구성이 탄탄하고 군더더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극의 전개가 매우 자연스럽다. 중간중간 삽입된 작시 또한 극의 재미와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기여하였다. 무엇보다도 “원이엄마의 사랑” 이라는 포커스를 놓치지 않고 있다. 주제에 관한 충분한 의식이 있다는 것인데, 종교철학박사 학위와 여러 편의 ‘철학적’ 소설을 발간한 그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그 다음으로 김나영 단장의 안무와 연출이 대단히 유려하고 세련되었다는 점이다. 국립무용단에서 전 세계를 누빈 18년을 포함하여 38년간이나 무용현장을 지킨 이에게는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이를 허샘(원이엄마)과 최석민(이응태), 이호준(죽음의 신), 석지은(생명의 신)을 비롯한 잘 생기고 능숙한 무용수들이 안정되게 잘 표현하였다. 무용수들의 상당수는 전국무용제에서 대상을 타거나 한 경력이 있고, 경주 정동극장에서 『신국의 땅 신라』라든가 『바실라』 같은 작품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낸 전문가들이다. 안무가가 손끝 하나 발동작 하나까지 정교하게 완성시킨 독무와 2인무와 군무는 하나하나 신선하고 적절히 잘 배정되어 있었다. 작곡가 임교민의 절제된 음악을 비롯, 분장과 영상과 조명 그리고 부채 등의 소품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모든 요소도 잘 받쳐주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이용주의 의상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고, 매 장마다 약간씩 변화된 무대장치도 극의 효과를 잘 부여하면서도 경제적인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미투리 모습이 압권이다. 더욱이 각 장을 시작할 때마다 간단한 해설을 자막으로 비쳐줘 극의 이해를 더욱 용이하게 해주어서 관객들은 1시간 반의 공연에 몰입될 수 있었고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프로그램북 역시 적당한 정보와 함께 깔끔하였는데 영어, 일어, 중국어 등의 번역문도 게재되어 이 작품이 국제무대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확신을 더해주었다.
안동시와 경상북도가 배출시킨 이 아름다운 전통무용극을 전국 각지 투어와 함께 2017년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개최되는 경주문화엑스포의 테마공연으로도 추진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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