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대학로 연극현장에 초유의 국고횡령사건이 발생했다. 정부가 메르스 사태로 인해 붕괴직전에 있는 연극계 지원사업의 하나로 300억원을 투입하여 티켓 1+1 사업을 시행했는데 이 사업의 허점을 노린 대학로의 일부 극단이 범죄에 휘말려든 것이다. 그들은 티켓 1장을 팔면 티켓 1장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원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자신들이 마련한 공연 티켓을 예매처로부터 허위로 사들이거나 팔지 않은 티켓을 실제로 판 것처럼 위장하여 국고를 탈취한 것이다.
이들이 탈취한 금액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어떤 극단의 대표는 10억원 이상의 지원금을 부정하게 탈취한 죄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20여명의 극단 대표는 그보다 액수가 적어서 인지 불구속 내지 입건상태에 들어가 있다. 이들이 부정하게 탈취한 금액도 1억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것이어서 그 죄가 결코 가볍다고 보기가 어렵다.
어떻게 이러한 국고횡령사건이 대학로 연극현장에서 발생했을까. 이러한 사건은 정치나 경제의 현장에서나 생겨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연극인의 빈곤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이 나쁜 일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은 거의 듣지 못했다. 장 루이 바로는 그가 쓴 「내일에의 선물: 장 루이 바로의 자서전」에서 자신은 악에 물들지 않기 위해 연극하는 일을 선택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생존경쟁이 일상화되어 있던 산업화의 과도기를 살아온 나로서는 연극을 통해 선과 악에 대한 지혜를 터득한다는 것은 큰 소득이었다. 나는 연극인이 날마다 연극을 통해 가상적이기는 하지만 선과 악의 문제를 몸과 마음으로 다루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대학로는 어느 때인가 예술에서 상업의 현장으로 변모했다. 예술로 밥을 먹어선 안된다는 극단적 순수주의에서 벗어나서 예술도 밥과 돈과 권력을 쥘 수 있다는 초월적 상업주의로 변신을 거듭했다. 이번 사건은 상업화의 허상에 사로잡힌 연극인들이 벌린 사건이다. 그들은 대학로를 예술이 아니라 돈을 얻기 위한 장소로 이용했다. 돈의 논리에 따라 레퍼토리를 선정하고 배우를 고용하고 관객을 선택했다. 일단 연극을 통해 돈을 얻은 다음에는 그 돈을 이용하여 대학로와 연극인에게 비현실적 조건을 내걸고 황제처럼 군림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 들어난 사실은 하나의 극단이 허위적으로 지원금을 탈취하게 되면 다른 극단에 그만큼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모든 극단이 상부상조하고 하나로 뜻을 모아도 연극이 가난함을 벗어나기 힘든데 다른 극단이 가져가야 하는 지원금을 가로챘다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대학로에는 연극의 순수성과 예술적 자부심을 지켜나간다는 생각만으로 극단을 유지해온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받았을지 모르는 상실감과 자괴감은 어떤 지원금으로도 메꿀 수가 없다. 연극인들은 대학로 연극현장의 정화에 노력을 경주하고, 정부와 지자체는 지원금 배분의 제도와 공정성을 보완하여야 한국연극의 어두움이 거침없이 번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