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그동안 우리는 장애인을 보는 시선에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이므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보다 성숙한 시선으로 다가간다면 장애인 역시 우리와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문화기본권을 누려야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러 형태의 문화기본권 중에서도 무용예술의 표현과 향수에 대한 기회는 높은 수준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장애무용예술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활동들이 전개되어 왔다. 2005년 장애예술 및 장애예술정책이 법과 제도로 구체화되고 2008년 국고와 2010년 복권기금을 통해 장애인예술지원사업이 실행됨에 따라 장애무용예술 역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장애예술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의 역사가 짧다보니 장애무용예술의 전문화 과정은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장애예술 중 특히 장애무용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수요는 낮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장애무용예술 활동의 구심점이나 플랫폼이 될 만한 행사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무용제는 체계, 창작, 교육, 교류 등에 있어서 다각적이고도 종합적인 역할을 통해 해당 무용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소규모 기획공연이나 개인공연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지만 무용계 전반에 걸쳐 훨씬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현장에서 요구되는 거의 모든 요소를 망라하고 있는 무용제인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국제무용제가 개최된다는 것은, 이후 성공적인 운영이 전제되어야겠지만, 해당 분야의 체계, 창작, 교육, 교류 등에 있어 보다 전문화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 본다.
1회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는 9월 8~1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국내외 17개 장애무용예술 작품을 선보였다. 해외초청(5개 단체)으로 독일(DIN A 13 Tanz Company), 일본(APi∞Lucky an Inclusive Company), 핀란드(Minni Hirvonen), 스페인 (Jordi Cortes), 미국(Douglas Scott)이 있으며 국내초청(6개)으로 룩스-빛&선화예술고등학교 무용부, 빛소리친구들&코리아댄스시어터, 서정춤세상, 춤추는 은평재활원, 댄스시어터 샤하르&디테에스행복들고나, 트러스트무용단이 있다. 그밖에 국내소품(2개 작품)에 유선식, 김진호 그리고 장애무용수솔로(4개 작품)에 강성국, 김영민, 김용우, 이광석이 참여하였다. 이에 앞서 9월 5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는 관련 포럼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그중 8일과 9일의 몇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8일 개막공연에서 빛소리친구들&코리아댄스시어터는 이정윤의 안무로 장애무용수와 일반무용수가 함께하는 『공존』을 선보였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오방처용무를 휠체어댄스로 재구성하였다는 데 있다. 남자 장애무용수들인 김용우, 김정훈, 전승훈, 노재욱에 의해 주요한 춤이 주도되는 가운데 여자 일반무용수들은 그들과의 면밀한 교감 속에 조력자이자 파트너로 활약한다. 남자 장애무용수들이 오방처용무의 대열과 동작을 휠체어댄스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놓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 휠체어를 조정해야한 하는 손일 수밖에 없다. 그 부분을 여자 일반무용수들이 장삼을 흩날리면서 채워주는 협업은 인상적이다. 휠체어댄스로 재구성된 오방처용무, 장애무용수와 일반무용수의 협업이 높은 수준을 이룬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미희가 이끄는 서정춤세상은 청각장애를 가진 여자무용수들을 참여시킨 『봄, 따스한 바람으로 다가오는』을 발표하였다. 장애무용수들은 외형이나 능력 면에서 전문무용수의 수준에 근접해 있었다. 물론 장애무용수들이 일반무용수들과 양 갈래로 나누어 춤출 때면 수준차를 읽을 수 있었으나, 서로 섞여 한 무리로 움직일 때는 명확한 구분이 불분명할 정도로 어우러져 있었던 것이다. 춤이란 원래 음악과의 조화가 절대적인 만큼 듣지 못한다는 것은 정확한 동작 수행이라든가 감정 표현의 몰입에 있어 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장애무용수들에게서 이에 대한 두드러진 지적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은 상당한 훈련을 거듭했음을 방증한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흰색 한복의상을 걸친 채 장면과 장면을 잇는 여자무용수가 지나치게 예쁜 선형을 의식한 움직임을 고집함으로써 작품의 차분한 분위기를 미세하게 균열시켰다는 데 있다.

9일, 홍혜전이 이끄는 춤추는은평재활원은 지도하기 까다로운 중증 지적장애 무용수들을 데리고 『가능한 춤』을 공연하였다. 대부분 다운증후군인 지적장애인으로 심신을 온전히 제어하기 힘든 까닭에 움직임의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는 무용수들은 데리고 공연을 펼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장애무용수와 일반무용수를 어울러 만든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가능한 춤』의 경우 중증 장애무용수들에 의해서만 전개된다는 차별성을 가진다. 이를 실현한 안무가 홍혜전의 노력과 열의는 인정되는 바다. 모두 여덟 명인 장애무용수들의 독무와 군무가 교차하는 가운데, 차례로 이어지는 세 개의 독무는 특히 인상적이다. 장애무용수의 본능적인 리듬감에 예술적인 감성을 입혔기 때문이다. 여기에 퍼커션 타무라 료, 기타 전보형, 소리 고현경의 세련되고 풍성하고 리드미컬한 라이브연주가 그들의 몸짓에 흥과 멋을 돋운다.
댄스시어터샤하르&디테에스행복들고나는 가장 유명한 장애인 중 하나인 헬렌 켈러의 일화를 무용극으로 꾸민 『헬렌 켈러-기적의 사람』을 선보였다. 여기에 청각장애를 앓았던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비창』을 배경음악으로 선택한 것은 매우 적절하였다. 총 14명의 출연자들 중에서 6명은 다양한 유형의 장애무용수인데 구체적으로 경계선장애 3명, 다운증후군이자 경계성장애 1명, 청각장애 1명, 시각장애 1명이다. 특히 시각장애의 전세빈은 발레리나로 활동하다가 40대 들어 녹내장으로 시력을 상실한 케이스다. 장애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음을 되새기게 해주는 한편, 우리가 장애인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깨달게 해준다. 안무를 맡은 지우영은 발레를 전공한 무용가이자 교육자이면서 경계성장애를 가진 아이의 어머니로서, 진솔하고 뭉클한 무용극을 완성하였다.

해외초청 작품들 중에는 장애무용수를 무대 위에 세운다는 것 이상으로 큰 의미를 찾기 힘든 작품도 있는 반면, 국내초청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장애무용수의 움직임을 예술적인 안무나 연출이라는 틀 안에서 짜임새 있게 어우르고 있다. 따라서 참여팀마다 편차가 있었던 해외초청 작품들보다 국내초청 작품들은 안정적으로 예술적 수준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장애무용예술의 가능성과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은 하나의 수확이다.
1회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가 갖는 의미는 장애무용을 집약해놓은 축제로서, 다양한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장애무용수의 창작활동을 고취하고, 장애무용의 현장 체계를 확립하는 한편, 장애무용의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장애무용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표성을 띤 장애무용 콘텐츠 개발, 둘째 생산 주체인 장애무용수의 양성 및 지원, 셋째 장애무용의 특수성을 고려한 교육프로그램 개발, 넷째 중장기적인 계획 수립과 지원 확립, 다섯째 각계각층의 지속적이고 궁극적인 관심 유도, 여섯째 장애무용 활동의 구심점 및 플랫폼으로서 역할 등을 꼽을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장애인국제무용제의 의미와 과제는 서로 연동되는 개념으로써 유기적인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고려되거나 추진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의 성공적인 정착은 단순히 한 무용제의 성과를 넘어 장애무용의 예술적, 교육적, 사회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