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시

시월, 마당의 햇살들

허 림

조 이삭에 햇살이 자글자글하다
수수 이삭에 매달린 바람이 동글동글 하다
땅속 깊이 내려간 고구마 뿌리에는 웃음이 한 덩어리
바람 불 때마다 후두둑 떨어지는 밤에는 햇살이 달달하다
한나절 앉아 놀다간 밭두렁마다 햇살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바람의 춤을 추는 옥수수 잎에서 햇살 마른 내가 난다
늦은 우화를 한 잠자리
하늘을 날 돌아 고춧대에 내려앉는다
고요에 드는 시월 한낮
편지요 꽃아 놓고 가는 느티나무 붉은 편지를 읽다가
소요한 닭장을 바라본다
알을 낳고 우는 암탉에게 수탉이 깃춤을 춘다
알은 아직 따듯하다
봉당에 뺑대발을 펴고 고추를 넌다
한나절 햇살이 뒹굴더니 맵고 붉어진다
호박잎 따다가 얼개미에 앉히고
애호박 몇 개를 썰어 장 소래기에 넌다
햇살의 걸음걸이가 사뿐하다
다람쥐가 입 가득 햇살을 물고 달려간다
가을 뜨락에 햇살 한마당 펼쳐놓는 어머이
춤사위가 깊어지고 바람의 추임새가 가벼웁다
지나간 여름은 푸른 연애가 아니었던가
베고 묶고 떨고 따고 담는
햇살의 향연
시월에 거둬들여야 할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