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의 서울유레카

지난 9월, 경주부근을 중심으로 관측사상 최대 규모인 진도 5.8의 지진이 발생하여 한반도는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지진천국 이웃나라 일본은 그 정도 지진은 매년 수십 차례 발생한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큰 지진이 발생한 적이 없어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졌다. 때문에 지난 2011년에 도호쿠 대지진(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많은 일본인들이 여진이 없는 밤을 보내기 위해 서울을 찾아왔고, 서울시내 호텔들은 도호쿠 대지진 직후 방문한 일본인 투숙객으로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큰 지진을 겪어본 적이 없는 한국인들은 이번 지진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같은 규모의 지진이 만약 서울에서 일어났다면 그 피해가 엄청났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차제에 내진설계에 일본만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기사와 방송이 연일 계속됐다.
아무튼 이번 지진으로 한국인들도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의 지진대비 매뉴얼을 배우자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하여 이번호에서는 일본이 지진을 대하는 자세가 어떤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본에 왜 지진이 많은가?
「일본서기」를 보면 지진에 대한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과학적인 기록이라기보다는 현상을 적시한 것이고, 원인에 대해서는 “땅속에 있는 메기가 몸부림을 쳐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적고 있다. 그만큼 일본의 지진은 오래되었단 말일 것이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메기의 생태가 지진과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된 적이 있는데, ‘근거 없음’이란 결론을 내린 적도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땅속의 수중기가 원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지진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지만 근거는 없었다. 이렇듯 지진에 대해서 동서를 막론하고 근대가 될 때까지 미신에서 그 원인을 찾았었다.
18세기 영국의 천문학자 존 미첼(John Mitchell)은 리스본 지진을 계기로 화산활동의 영향에 의한 수증기의 활동이 지진의 원인이라는 설을 세웠다. 그 후 20세기가 되면서 화산활동 외에 단층활동과 대륙 간의 판 활동 등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일본은 태평양판 위에 있으며, 일본열도 밑으로 들어가려는 태평양판의 활동에 반발하여 원위치로 돌아가려는 에너지 때문에 빈번한 지진활동이 일어난다. 일본에서 지진이 빈번한 원인이 밝혀지면서 1972년엔 일본열도가 태평양판과 함께 바다로 가라앉는다는 공상과학소설 「일본침몰」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대히트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2006년에 개봉이 돼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하기도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엔 지진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다. 올해 6월까지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을 보시라.

6월 28일 이바라키 5.8
6월 12일 사이타마 5.0
5월 27일 오키나와 5.5
5월 16일 동경 5.6
5월 3일 북해도 5.7
4월 14일 구마모토 7.4

구마모토 지진을 예외로 쳐도 이번 경주지진 정도는 일본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수준의 지진이다. 또한 지난 4월의 구마모토 지진 외에는 인명 및 재산 피해가 거의 없었다. 진도 5급이면 책상에서 물건이 떨어질 정도의 규모다. 내진설계가 잘 돼 있는 일본의 건물들은 웬만한 지진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진도 9.0이었던 도호쿠 지진 때도 무너진 건물들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해일로 인한 피해들이었다.
그렇다고 지진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전이나 단수가 되기도 하고, 교통이 일시적으로 마비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빠른 시간 안에 복구가 된다.

지진보다 무서운 것들
일본도 지진으로 인한 2차 재해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다시 기억하기도 끔찍하지만, 바로 처음에 언급한 2011년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보여줬던 일사분란 함이 사라지고 허둥지둥했다. 그때의 당혹스런 모습은 관민이 따로 없었다. 일단 쓰나미(해일)에 대한 대책이 무방비였다. 일본 동부 태평양 연안이 쓰나미 피해를 입은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이 더 문제였다.
1960년 5월 22일 칠레 발디비아에서 발생한 지진(진도 9.5~10.0) 때문에 24시간 후 쓰나미가 일본 동부를 강타했다. 도호쿠 대지진 때와 같은 장소인 동북지방 태평양 연안에 6.4m에 달하는 쓰나미가 덮쳤고, 그때도 많은 피해를 입었었다. 그 당시는 정보의 전달성 때문에 충분한 주의를 환기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그 지역 주민마저 50년 전의 교훈을 잊고 살았었다.
2011년 3월 11일 14시 26분에 일어난 지진으로 50년 전의 악몽이 다시 재현됐다. 지진 발생 후부터 쓰나미 도달까지 채 30분도 걸리지 않아 충분히 대피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고, 쓰나미 정보를 접하지 못한 지역도 있어서 피해가 더욱 커졌다. 해일의 파고는 평균 10m 이상, 최대 40m에 달했다. 이 거대 해일 때문에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훨씬 상회하는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주민 절반 이상이 죽은 마을도 있었다. 2016년 3월 10일 시점으로 사망과 행방불명은 18,455명이다. 21세기 들어 일본 최대의 자연재해다.
지진 피해는 그뿐이 아니었다. 해일은 태평양 연안의 원자력발전소를 덮쳤고, 특히 후쿠시마원전은 ‘노심용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았다.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하고 깨끗한 발전소라는 통설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지진에 익숙했던 재일 외국인들도 방사능만큼은 무서운 존재였다. 프랑스 정부는 대피 권고를 냈으며, 실재로 귀국을 서두르는 외국인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프로야구단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 선수도 많은 연봉을 보장받고 일본의 지바롯데야구단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방사능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컴백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본산 생선 등 식품류 수입을 금지했으며, 일본 여행을 취소하는 일이 속출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큐슈에서 촬영한 한국영화도 일부 출연진이 일본에 가는 것을 거부하려고 했었다는 소문이 전해질 정도였다. 큐슈지방은 후쿠시마에서 1,000km이상 떨어져 있어서 실질적인 방사능 피해가 보고되지 않았지만 단지 일본이기 때문에 무섭다는 공포 심리 때문이었다. 역으로 중국에서는 아직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는 일본 화장품을 구매하려고 재고가 바닥이 난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반경 30km 이내는 출입이 통제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주민들도 생겼다. 그것뿐만 아니다. 피폭자가 아닌데도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채용이 취소된 사태도 있었으며, 어떤 빵집에서는 후쿠시마에서 피난 온 주민이 만든 빵을 먹지 않겠다고 소동을 일으키는 고객도 있었다고 한다.
지진보다 무서운 것, 그것은 사람들의 루머와 편견일 수 있겠다.

일본인의 질서의식(?)
일본에서 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시민들의 질서 있는 행동이 세계를 놀랍게 하곤 한다. 뉴욕타임스 전 동경지국장이 쓴 ‘일본인의 질서와 참을성’에 대한 칼럼이 흥미롭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인은 인내심이 강하고 냉정히 질서를 잘 지킨다. 어떤 재해가 일어나도 약탈행위가 일어지 않는다. 한번은 어떤 상점에서 2인조 남자에게 물건을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주인에게 ‘같은 일본인이 도둑질을 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놀라서 ‘강도는 일본인이 아니다. 그놈은 외국인이다’라고 대답했다. 자국민에 대한 긍지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일본인들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내가 먼저’가 아닌 ‘양보의 정신’을 발휘한다. 대피소에서 10인분밖에 없는 우동을 50명이 먹었다거나, 내가 울면 주변에 있는 다른 피해자들도 슬퍼할 거니까 참는다거나, 정부는 관계자를 나무라는 주장을 중계하지 않는다거나, 약탈행위가 발생하지 않는다거나, 정치인들이 정쟁을 중단한다거나 하는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선 재해를 대하는 일본과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시사점이 될 것 같다. 우선 한국 언론은 피해자의 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월호’ 때도 그랬던 것처럼 카메라가 낙담한 피해자 가족을 따라다닌다. 당연히 슬픔에 젖어 울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방영된다. 뿐만 인가? 현장을 방문한 정부 관계자를 탓하거나 따지는 모습과, 그 관계자가 고개 숙이는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화면에 잡힌다.
반면 일본 언론들은 이런 울고불고하는 약한 모습 등은 (한국인이 느낄 때) 얄밉게도 보도하지 않는다. 도호쿠 대지진 때도 쓰나미가 덮치는 영상을 보여주었지만, 해일에 사람이 밀려가는 영상 등은 보여주지 않았다. 또 피해자들이 절망한 모습이나, 가족을 잃어 울고 있는 장면들은 보여주지 않았다. 이것은 각 매체들 간의 일종의 엠바고다. ‘재해예방 목적 외에는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는 영상과 사진을 보여주지 말자는 약속’의 실천인 것이다.
일본 언론의 이런 노력(?)은 ‘일본인은 인내심이 많고,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잘 지키는 국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일본도 사람 사는 곳이다. 왜 재해와 혼란을 틈탄 범죄가 없겠는가? 도둑질, 성범죄, 강도 등이 일어나곤 하지만 보도가 되지 않는 것뿐이다. ▲공포 심리를 조성하고 싶지 않다 ▲자원봉사자가 오지 않는다 ▲모방범죄를 유발한다 등의 이유로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은 이런 엠바고가 조금씩 깨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5월 3일자 아사히신문은 “지진 발생 2시간 30분 후 피난소에 있다가 집에 물건을 찾으러 갔는데 집 안에 모르는 남자 2명이 있었다. 그들을 경찰에 넘겼는데, 범인들은 후쿠오카 현 즉,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고 보도했고, 또 다른 매체에 보면 “구마모토 현 내의 피해 건수는 34건에 달했고, 또한 가짜 모금활동으로 금품을 갈취한 이들이 몇몇 체포되기도 했다”는 그동안 않던 예상외의 보도들이 있었다.
물론 재해지역 현지인들에 의한 범죄 보도를 아직 접하지는 못했다. 필자도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살아온 기간이 더 많아서 재해지역 자체의 치안 상태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한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고,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보도 또한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지진이 일어날까?
어느 일본 지진학자는 이번 경주지진보다 큰 지진이 한국에서 일어날 것이란 주장을 폈다. 그 진위 여부에 대해 내가 가부간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1995년에 일어난 고베지진을 예로 들고 싶다. 고베도 한국처럼 역사적으로 큰 지진이 없던 지역이었다.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내진설계가 좀 허술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망자가 5,000명이 넘었고, 고가도로 등 많은 건축물들이 무너졌다. 흔히 “고베지진은 인재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재해는 방심할 때 찾아온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 자연재해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보단 일상에서 재해예방 훈련을 하고, 재난에 직면해선 준비된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최선의 대책이 될 것이다. 다행히도 그 매뉴얼과 대응방식만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배우고 또 베껴도 된다. 지진에 관해선 일본을 스승 삼는다고 탓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