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독서의 달인 9월의 첫머리에 서울광장에서 열린 9회 「2016 서울북페스티벌」의 표제어는 ‘도서관! 로봇’이었다. 로봇과 관련된 16가지 주제의 장서와 정보원, 관심사를 다루었다. 서울도서관이 한국로봇산업진흥원과 함께 로봇 체험 교실과 공연을 선보였다. 이 행사들은 지난해의 주제 ‘공룡’에 이어 책과 자연과학이 만나는 향연장이 되었다. 평면적인 책 전시를 뛰어넘어 입체적이면서도 흥미롭게 주제에 다가서 진화된 축제의 장이 연출되었다.
또한 10월3일까지 홍대 앞에서 열린 12회 「2016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질문하는 문학, 상상하는 과학’을 주제로 물리학, 뇌과학, 진화학, 천문학 관련 대중 강연과 SF작가 등의 북토크, 문학과 무용, 미디어아트가 결합한 기계문명 퍼포먼스가 풍성하게 더해졌다. 인문학과 과학의 통섭, 융합이 자연스럽게 엮어지며 과학 대중화의 문이 열리고 있는 듯하다.
이와 같이 책과 관련된 행사에서 과학이 중심이 된 것은 최근의 경향이라 할 만하다. 인간을 대표하는 이세돌과 인공지능 로봇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이 펼쳐졌던 올해 3월의 충격적인 경험은 우리 사회를 온통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 로봇 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세계인의 화두로 등장했음을 실감하게 한 사건이었다. 인터넷 혁명(제3차 산업혁명)에 이은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형국이다. 사회 구조와 그 변화 속에서 미디어의 형질이 결정되는 출판에서 과학도서 붐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최근 국내 출판계에서는 과학 교양도서가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매출 감소가 이어지고 있는 전체 출판시장 분위기와 달리 자연과학 분야의 판매량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2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과학도서의 발행 종수도 작년 대비 1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등을 발행한 민음사 계열 사이언스북스의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3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이 같은 분위기는 국내에서만 1천만 관객이 극장을 찾은 「인터스텔라」나 「그레비티」, 「마션」 등 할리우드 영화가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고 ‘알파고’가 던져준 충격이나 화제가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책보다는 강연 시장에서 유독 뜨겁던 인문학 열풍을 대신해 교양과학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 같은 스테디셀러 목록들이 꾸준한 판매량을 유지하는데다 젊은 국내 학자들의 가독성 높은 글쓰기가 여기에 가세하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김범준의 「세상물정의 물리학」, 「김대식의 빅퀘스천」, 「김상욱의 과학공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리학 또는 뇌과학 전공 학자들의 책은 첨단의 과학을 대중적으로 전달하는 힘이 뛰어나다. 페이스북 등을 활용해 저자가 직접 독자와 소통하며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도 판매량 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04년에 발간된 이래 30만 부 이상 판매된 「코스모스」를 펴낸 민음사는 작년에 이어 ‘칼 세이건 살롱’을 올해 12월까지 확대 개최하며 과학 대중화의 세몰이에 나선다. 과학출판의 활성화가 과학입국의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