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살롱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론이나 법칙을 남기는 것은 언제나 영예로운 일이나. 특히 생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생물 종을 발견하고, 여기에 자신의 이름, 혹은 자신이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올해 9월 초, 새로 발견된 기생충에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이름이 붙였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말레이시아의 민물 거북에서 발견된 흡충의 일종인데, 정식 명칭은 버락트레마 오바마이다. 해석하자면 버락 오바마 흡충 정도가 되겠다. 혹자는 기생충에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것이 풍자나 비난의 의미가 아닐까 해석하기도 했지만, 기생충 학자들이 기생충에 가지고 있는 애정을 생각하면 비하의 의미로 사용했을 것 같지는 않다. 발견자이며 거북이 기생충의 권위자인 토마스 플랫 박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되었으며, 실제로 과거에도 새로 발견한 기생충에 지도교수, 장인, 친구, 동료 연구자들의 이름을 붙인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한국에서도 1993년 췌장염 환자에서 서울대 의대 연구진이 새로 발견된 흡충에 짐노팔로이데스 서아이(Gymnophalloides seoi)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전쟁 후 한국에서 기생충학교실을 처음으로 다시 개설한 고 서병설 교수를 기리는 의미에서였다.
옛날에는 새로 발견된 생물의 이름에 주로 자신의 이름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혹은 연구에 도움을 준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더 재치 넘치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2016년 아제르바이잔에서 발견된 이는 새의 깃털을 갉아 먹으며 살아가는 외부 기생충이다. 새로운 종류임을 알게된 연구자가 이름 짓기에 고심하던 중, 약혼자가 기생충의 머리모양이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등장하는 ‘다스베이더’를 닮았다는데서 번뜩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렇게 정해진 이름이 바로 리시누스 베이더리다. 다스베이더 깃털니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생물의 학명은 전세계 학자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약속된 언어다. 따라서 학자들도 많은 연구와 고심을 거쳐 이름을 정하고, 일정한 절차를 거쳐 등록된다. 학자가 신종을 발견하여 명명한 다음, 지정된 국제 위원회에 제출하면 이름의 적합성, 타당성, 중복 여부 등을 검토한 뒤 공표된다. 생물 종을 명명하는 것보다 조금 더 절차가 간단한 단백질이나 유전자 분야에서는 더 발랄한 명명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2008년 일본에서 발표한 단백질의 이름은 피카츄린이었다. 바로 포켓몬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피카츄에서 따온 이름이다. 연구진은 망막에서 신경전달을 매개하는 이 단백질이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놀라운 전기 신호 효과를 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언젠가 친구 생물학자나 기생충학자가 새로 발견한 생물에 당신의 이름을 붙이고 싶다고 말하면, 기쁜 마음으로 수락해 주기를 바란다. 한 학자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존경과 애정의 표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