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롱

소리칠 함 喊 뫼 산 山, 두 낱말을 합칠 때는 순서에 따라 뜻을 달리한다. 山喊이라고 하면 ‘산이 울다’이고, 喊山이라 하면 ‘산을 울린다’가 될 것이다. 그 점이 미심쩍어 영어 제목을 보았더니 역시 ‘Mountain Cry’였다. 영화 「산이 울다」(喊山, 래리 양 감독, 극영화/애정물, 중국, 2015년, 107분)를 보면 메아리가 곳곳에 나오니 아무래도 ‘산을 울린다’가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영화 줄거리는 간단한 편이다. 산속 마을 청년 한총(왕쯔이)이 오소리를 잡으려 쳐놓은 덫에 얼마 전 마을로 이주해온 라홍이 한 쪽 다리를 잃고 만다. 워낙 깊은 산속이라 출혈을 막을 수 없어 라홍은 사망했고 그의 벙어리 아내 홍시아(량예팅)와 딸의 생계가 한총에게 맡겨진다. 산 밑의 공안에게 사건을 알릴 수 있지만 그래봐야 마을에 이득 될 게 없어 쉬쉬 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1984년의 중국은 그렇게 유야무야 범죄가 덮여지던 시절이었다. 한총에겐 딱히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흘러들어온 외지인이 마을 상황을 잘 모르고 당한 변이라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문제를 키우기보다 그저 자기가 희생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제 벙어리 여인 홍시아의 사연을 들어보자. 요즘 중국은 잘 모르겠지만 30년 전만 해도 어린아이를 유괴해 인신매매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에 나타난 유괴와 인신매매는 치를 떨게 만들었다. 사실 그렇게 얻은 여자를 데리고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면 어떻게 찾아낼 수 있겠는가? 더구나 중국처럼 광활한 땅이라면 더더욱 범죄를 밝혀내기 어려웠을 터다. 「산이 울다」의 강점은 그 애절한 사연을 섬세한 연출력으로 손에 잡힐 듯 만들었다는 데 있다. 홍시아가 벙어리가 된 사연과 딸을 낳고 폭력에 시달리는 이야기, 아무도 알아주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 이야기, 라홍이 불의의 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그저 묻히고 말았을 운명이다.
「산이 울다」는 소설가 거쉬핑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2005년 루쉰 문학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67회 칸 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았으며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상영되었다. 소재가 특이해서라기보다는 온전히 뛰어난 연출력이 덕분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영화에 담긴 상징성이 뛰어났던 탓도 있다. 70년대 문화혁명 이후로 중국의 민중들은 침묵의 시절을 강요받고 살아야 했다. 잔인한 폭력에 벙어리가 된 여인, 들을 수는 있으나 말을 할 수 없는 약자, 남의 일이려니 하면서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절대 폭력에 억눌려 사는 불쌍한 사람들. 희망이라곤 발견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런 절박한 조건에서 이루어진 한총과 홍시아의 사랑은 사막에 핀 한 송이 꽃과 같았다.
라홍이 떠나고 한총과 애정이 싹틀 무렵 홍시아는 산에 올라가 대야를 두드린다. 비록 소리를 지를 수는 없지만 그녀 맘속 깊이 자리 잡았던 뼈아픈 상처가 모습에 드러내 산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산은 소리를 받아들여서 소리를 낸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그 하나하나마다 무심한 세상을 거울에 비추듯 반영한다. 사랑이 지나간 난 뒤의 슬픔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 당신은 사랑이 지나고 나서도 살 수 있다고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