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수상- 작은 배가 있었네

두루미(crane)라고도 일컫는 학(鶴)은 십장생(十長生) 가운데 하나로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졌는데 예로부터 장수와 더불어 행운과 풍요와 정절을 기원하면서 기물에 학을 새겨서 선물하곤 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학의 모습에서 더욱 인상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눈밭을 외발로 서 있는 모습이다. 그 가늘고 기다란 다리 하나로 차갑게 얼어붙을 듯한 대기 속에서 땅 위를 버티고 서서 흔들리지도 않고 있는 모습.
우리나라에서 두루미(학명 Grus japonensis)는 늑대(Canis lupus coreanus), 붉은박쥐(일명 황금박쥐. Myotis formosus chofukusei), 사향노루(Moschus moschiferus parvipes), 수달(Lutra lutra), 호랑이(Panthera tigris altaica), 검독수리(Aquila chrysaetos), 노랑부리백로(Egretta eulophotes), 크낙새(Dryocopus javensis), 장수하늘소(Callipogon relictus) 등과 함께 멸종위기야생동식물 I급으로 지정되어 있다(야생동식물보호법 제2조 제2호, 야생동.식물보호법 시행규칙 제2조 별표1).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다시는 외발로 서 있는 학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다양한 종류의 삐루엣(pirouette)은 발레에서의 큰 볼거리이다. 이 동작을 수행하기 위하여 역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외발로 서기일 것이다. 삐루엣을 시작하기 직전의 쁠리에 동작이나 두 발의 무게 중심의 분배 그리고 상체와 팔의 위치는 물론 삐루엣을 수행하는 도중의 상체와 팔과 고개의 움직임도 모두 서 있는 발의 발끝에서 머리 끝까지 하나의 쇠꼬챙이가 몸 속에 있는 듯이 몸이 지면과 어느 방향으로든 반듯한 수직으로 서서 지탱할 수 있기 위한 보조역할이 되는 것으로, 그러한 외발로 서기가 삐루엣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은 회전수로 할 수 있게 하는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팽이가 곧추 선 채로 돌면 오래도록 돌지만 기울게 되면 곧 쓰러지게 되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무용을 비롯하여 모든 신체적인 운동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이렇게 외발로 잘 서는 일인 것 같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 축구를 배운 적이 있는데, 겨우 한 두 시간 배정된 시간에 한 훈련이란 장애물을 일정한 간격으로 일렬로 늘어서 세워 놓고 그 장애물들 사이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빠져나가면서 공을 몰고 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 훈련에서도 공을 다루는데 있어 양발을 모두 사용하게 하느냐 아니면 한 발만을 사용하게 하느냐 하는 등 훈련의 방법에 따라 단련되는 근육이 있겠고 물론 나름의 이점이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축구 뿐 아니라 모든 운동에 있어서 한 발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이 더욱 기본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때로 든다. 한 발로 서 있으면서 다른 발이나 상체 혹은 팔의 움직임에 전혀 영향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 다음 다른 발로서는 월드컵의 스타들처럼 마음껏 공을 다룰 수 있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제기차기를 하여도 그러하리라. 그래서 긴 다리를 가진 학이 그렇게 외발로 서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감탄스러운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두루미는 다리 못지않게 가늘고 긴 목으로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는데,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 1911-1980) 식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들의 팔의 확장(extension of arm)인 길고 단단한 팔(boom)을 가진 기중기 또한 모양새로 보아 두루미의 긴 목을 닮았다고 하여 크레인(crane)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
수 년 전 무거운 물건을 들어서 옮기는 이러한 크레인과 그 가까운 형제격인 타워크레인(tower crane), 사촌쯤인 포클레인(poclain) 등 이들 일가들이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무색하게 하듯이 불과 한 달여 사이에 경기도 남양주시의 산 하나를 꿀꺽 집어 삼키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의 산과 강과 전 지구의 생명들의 어머니 자연에서는 매일 같이 현대의 두루미 패거리들이 자연의 두루미 가족들을 몰아 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엔가는 차량으로 갈 것인가 지하철을 타고 갈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이렇게 의존적인 교통수단 말고 외발로 서듯 독립적인 교통수단이 없을까 하는 또 다른 고민이 들기도 하였다. 다른 수많은 차들 사이에 갇혀서 가만히 선 채 기름을 때면서 연기를 뿜어내기를 반복하여야 할 교통수단과 지하 굴속으로 들어간 다음 마치 미세한 알약처럼 다른 알약들과 뒤섞여 캡슐 속에 든 채 멈추지 않고 가기를 기다려야 할 교통수단.
그렇다고 자전거는 과연 독립적인 교통수단일까. 지금 우리에겐 자전거 도로를 빙자하여 수많은 강기슭이 파헤쳐지고 콘크리트에 묻힌 트라우마(trauma)도 있을 뿐더러, 아무 곳에나 자전거를 두고 다니기가 마땅하지 아니한 현실에서는 무언가 일을 보러 갈 때 자전거로 가는 것인지 자전거와 함께 가는 것인지 아니면 자전거에 매여 가는 것인지 모를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더구나 어릴 적 자전거 타기를 배운 다음 혼자서 혹은 친구와 함께 갔었던 송도 바닷가나 을숙도(乙淑島)의 에덴공원도 더 이상 그 모습으로 있지는 않지 않은가.
전원 문제만 해결될 수 있다면 지금은 지하철역 내부에서도 많은 곳에서 가동되고 있는 무빙워크(moving walkway)를 근거리 이동 수단으로 지상 곳곳에 설치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되도록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적게 의존하는 그런 교통수단이 없을까 하는 고민은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다.
철학자들은 아예 사회 전체에 대하여 이러한 고민을 하여 온 것 같다. 「국가」라는 저작 속에 자신의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 BC428-BC347),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의 ‘유토피아(utopia)’라는 섬에서 자신의 이상향을 묘사하고 있는 영국의 법률가이자 사회철학자인 토마스 모어(Sir Thomas More 1478-1535) 등등.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스키너(B. F. Skinner 1904-1990)는 또한 「월든 투(Walden Two)」에서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공동체, 즉 심리학적 이상사회에 대하여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월든 투」란 제목은 미국의 작가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가 쓴 「월든(Walden)」에서 따 온 것이었다.
소로우는 미국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주 콩코드(Concord)카운티에 있는 월든 호수(Walden Pond)의 가에서 2년간 홀로 산 경험을 토대로 미국 수필문학의 백미이자 환경주의자들의 고전인 ‘월든’을 썼다고 한다. 소로우가 예찬하고 실천하였던 삶은 ‘단순하고 자급자족적인 삶(simple living and self-sufficiency)’이었다. 사람은 기대어 사는 것이라고들 쉽게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 바깥의 것들에 너무 많이 기대어 사는 것은 아닐까.
휴일이나 휴가철에 교외로 빠져 나가는 차량들의 행렬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부럽기는 커녕 가여운 느낌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대도시 지역에서 원래 자라고 있던 숲과 원래 흐르고 있던 시내를 망가뜨려 놓고서 이번에는 그나마 겨우 숨쉬고 있는 숲과 시내를 찾아서 특히 귀가길 몇 시간씩을 좁은 차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마다 않고 떠나는 사람들의 삶이라니….
대도시의 커다란 빌딩 숲들을 헤치고 그런 한 가운데에 다시 숲을 되살릴 수는 없는 것일까. 도시 내에, 집 가까운 곳에, 푸른 숲이 있고 맑은 시내가 있고 곡식이 자라는 들이 있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 개인적인 마음과 몸을 다스림에 있어서든,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장소와 제도를 마련함에 있어서든 외발로 설 수 있고 외발로 서게 되어 있는 그러한 상태가 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기대는 것은,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을 정도로, 빼앗지 않을 정도로, 소유하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온기를 느낄 만큼, 조금씩만 서로 기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