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전통적 미디어는 물론이고 인터넷과 SNS 등 뉴 미디어도 대통령 선거에 관한 뉴스로 넘쳐난다. 선거일이 50일도 안 남았으니 미디어로서는 당연한 뉴스 선택일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특정 후보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또는 선거 뉴스를 읽든 안 읽든 요즘 같은 뉴스 트렌드가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지속될 것은 틀림없다. 회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것이다. 2013년부터 5년 간 새 대통령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회피하기 보다는 누가 최선의 후보인지 관심을 갖고 분석해 보아야 한다.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최선(最善)은 아니더라도 차선(次善)은 누구인지 저울질해 비교해 헤아려 보는 교량(較量)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이 때 필요한 저울은 어떤 것이고 교량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은 앞으로 5년 간 어떤 청사진을 국민 앞에 제시하고 있느냐일 것이다. 아무리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도 대통령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니 현재 후보들이 제시하고 있는 청사진이 속빈 강정이 아니라 꽉차있는 것인지 그 무게를 저울질 해 교량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박식한 독자라 해도 현재 후보들이 내놓고 있는 청사진, 즉 공약을 저울질 해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정책 대결보다는 과거사 논쟁을 비롯해 무차별적인 후보 비방과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판을 치는 선거 분위기에서 차분하게 공약을 분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가능에 가깝다. 대중 매체에서 각종 분석을 내놓기는 하지만 매체의 성격이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분석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은 어떤 저울을 갖고 교량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까? 결론은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이 전문적으로 잘 알고 있는 부분에서부터 교량 작업을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화 영역에 대해서는 어떤 청사진을 내놨는지, 예술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선거가 50일도 안 남았는데 그런 공약을 공식적인 통로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와 관련 가장 공신력 있는 통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홈페이지이다. 이 홈페이지에 게시된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은 공식적인 것이어서 중앙선관위가 10대 공약으로 집약해 홍보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하순 주요 후보(박근혜, 문재인, 안철수)들의 10대 공약이라고 발표된 중앙선관위의 보도 자료를 접하고 허탈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창의성을 높이고 격차를 줄이는 교육과 문화예술정책을 펼치겠습니다.’라고 내걸었을 뿐 두 정당 후보는 문화도, 예술도 언급한 게 없다. 10대 공약에 넣기에 문화 예술은 시급하지 않다는 판단 결과였을 것이다.
이에 따라 안 후보의 공약 내용을 ‘상세 자료’를 클릭해 확인해 보니 또 다른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앞서 말한 공약을 내건 동기로 ‘문화 예술 인프라 부족과 지역적 격차’를 이유로 들고 ‘공동체 가치를 높이는 문화 예술 콘텐츠 지원’을 이행 절차로, ‘문화 다양성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이 들어본 내용 아닌가. 10대 공약에 구색 맞추기로 ‘교육’ 다음에 문화를 한 줄 언급한 게 틀림없어 보인다. 문화 예술 인프라가 방방곡곡에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아직도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국에 500석 이상의 공연장이 500개가 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인프라 탓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공연장에 합당한 공연이 얼마나 열리고 있는지, 문화 예술 전공자는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 통계에 잡히고 있는데 상당수 공연장에는 프로그램이 빈약하거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박한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처럼 공식적으로는 후보들의 문화·예술 공약을 찾기 힘든 차에 지난 10월19일 예술의 전당 컨퍼런스 홀에서 열린 한국문화정책학회의 “차기 정부의 문화 정책 비전” 심포지엄은 그나마 후보 진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기회였다.
새누리당과 통합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문화 정책 비전을 두 교수가 발표하는 형식이었는데 새누리당의 문화정책은 문화 예산의 증액과 법제도·조직개선, 문화적 가치 향유 제고를 위한 교육 및 복지, 건강한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생산 및 공급 방안 마련의 세 영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문화 예술 내에서도 복지-교육-교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삶의 현장에서 문화 활동 증대에 초점을 맞추고 문화 재정을 현재의 1%에서 2%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진 발표에서 발표자는 통합민주당 문화 정책의 골자는 문화가 가진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참여 정부의 ‘창의한국’을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조적 성장과 창조 산업으로서의 문화에 주목하며 공공, 비영리, 준영리, 영리 영역으로 이뤄진 창조적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5년 간 매년 5조원을 문화계승, 문화산업, 문화유산, 관광산업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설명했다. (※안철수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는 발표자가 없었음. 발표자의 구체적인 내용은 네이버 자료 참조).
두 당의 문화정책 내용을 보면 문화를 복지·산업 차원에서 주목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아마도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나온 비전이고 공약이 아니었던가 상기된다.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 계획도 역대 대통령 선거의 공약집을 보면 다 나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은 정책 내용들을 접하고 아쉬웠던 점은 현재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일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각 후보 진영이 충분히 하고 있는가이다.

실력이 있든 없든, 문화 예술계 인력(대학 졸업자)은 넘쳐나는 게 현실이고 문제는 이들이 공연을 해도 봐 줄 관객이 없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해법이 눈에 띄지 않는다. 프로야구 500여회의 시합만으로 연간 700만 관중시대를 여는데 반해 국악, 양악, 연극, 무용과 같은 순수 예술 공연은 8만2000여회의 공연을 해야 프로 야구와 비슷한 7백여 만 명의 관중이 된다. 문화예술에 대해 이해하는 국민이 적어 아무리 좋은 공연을 해도 유료객석 점유율 50%를 채우기 힘든 현실에서 여전히 연기자와 공연장만 강조하는 목소리만 들리니 답답하다. 문제는 관람객인데 이들을 문화예술로 인도하는 방법론(감상교육)에 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무용이나 연극은 교과과정에도 없으니 이해를 위한 감상교육은 물론이요 학생들이 접할 기회조차 없다.
문화예술을 위한 가장 좋은 정책 비전은 문화예술 종사자를 위한 소프트웨어도 공연시설과 같은 하드웨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순수공연이든 실험적 공연이든, 많은 국민이 문화예술을 이해(literacy)하고 참여하도록 하는 정책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문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