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어제부터는 티노 세갈이 여기 와 있는데, 바쁘지 않을 때면 그도 암흑 속에서 춤을 추지. 익명성을 누리면서 자유롭게 몸을 흔드는 것을 즐기는 거야. 제롬 벨도 여기에 비디오를 틀고 공연도 며칠 하는데, 그거 알아? 티노 세갈은 제롬 벨이 『쇼 머스트 고 온』을 만들었을 때 초창기 무용수였기도 해.”

공연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친절하게 공개되어 있지 않고, 단지 관람을 했던 사람들의 구전을 통해서만 어디에서 어떻게 공연이 진행되는지 알 수 있는 티노 세갈의 작업. 같이 만든 사람의 이름도 공개되어 있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작업으로 기록되는 그의 공연임에도 참여자들은 그 어떠한 민주적인 프러덕션보다 흥미롭고 참여하는데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한 티노 세갈의 공연은 올해 카셀 말고도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도 있다. 비누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 회사 유니레버가 지원하여 유니레버 시리즈로 불리우는 터번 홀(Turbine Hall)에서의 공연 『디즈 어소시에이션즈(These Associations)』이다. 몇몇의 무용수들은 카셀 공연이 끝나면 런던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로 되어 있다.
몇몇은 아직도 고민중이다. 바닥이 딱딱한 터번 홀이 하루종일 뛰고 걸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을 신체적으로 쉽게 지치게 하는 까닭이다. 좋은 운동화를 신지 않으면 무릎과 발목이 망가져 버린다는 그 일에 대해 우스갯 소리로 우리는 영국의 대형 수퍼마켓인 테스코에서 일하는 것과 같다하여 ‘테스코 잡’이라고 불렀다.
월급 받기를 상상하기 어려운 독립 무용수들은 대체로 프로젝트 단위로 돈을 번다. ‘카셀 프로젝트’에서는 석 달간 보수를 받는다. 월급은 1,800 유로. 브뤼셀과 같이 대우가 좋은 곳에서 온 무용수들은 불평이 자자했지만 베를린에서 온 율라는 하반기에는 일하지 않고, 원하는 워크숍을 실컷 듣고 자기 작업만을 할 것이라고 했다. 베를린과 같이 좋은 대우 받기 힘든 곳에서는 오히려 나쁘지 않은 작업 조건인 것이다.
이렇게 기간제로 월급을 받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것에 비교하자면 이 유니버셜 시리즈는 시간당 계산이 되며 시간당 최저 임금이 부여된다. 그래서 ‘이건 뭐, 테스코 잡’이라 했더니 모두들 웃으며 그렇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하지만 관객인 나로서는 이미 짜여진 캔터베리 여정에 런던을 지나칠 때 반드시 할 일 중 하나로 이 유니버셜 씨리즈를 관전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관전의 기술(Zuschaukunst). 이것이 나치시대에 활동했던 독일의 연출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개념이라는 것을,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알 거다. 또한 그가 말한 관전이란 ‘참여’라는 것을 알 거다. 가장 많은 브레히트에 대한 연구와 가장 많은 학회가 있는 나라 중 하나가 우리나라니까. 고백하건대, 나의 외유 중 상당한 부분은 바로 이 관전으로 채워졌고, 관전은 때로 이런 기이한 이동의 원동력이 되곤 한다.
미학자 아도르노(Theodor W. Adorno)가 1959년 2회 전시회 기간 동안 강연을 한 것이 시초가 된 카셀 도큐멘타의 세미나 시리즈는 올해에도 현상에 뒤쳐지지 않는 신선한 주제 (“What is thinking? Or a taste that hates itself”)를 가지고 독일어와 영어로 진행되었다.
이 가운데, 그 동안의 강연들을 마감하는 이른바 ‘클로징 노트’에서는 그간의 강연회들을 직접 프로그래밍하고 부분부분 강의를 하기도 한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의 크리스토프 밍케(Christoph Menke)와 큐레이터로 활발히 활동하는 추스 마르티네즈(Chus Martinez)가 한 꼭지씩 담당하여 이론이 예술에서 무엇인가에 대해 해제하고 토론했다.
밍케는 철학자답게 가다머(Hans-Georg Gadamer)와 리터(Joachim Ritter)가 해제한 이론과 이론가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리터에 의하면 이론가는 즉 경기나 경연과 같은 제축적 행사를 그 사람의 본고장 아닌 다른 곳에 방문하여 관전하면서 그 의미를 잡아내고 그것을 본향으로 돌아가 전달해 주는 사람이고, 가다머가 정의한 ‘이론’이 다른 어떤 이들의 것과 다른 부분은 그것이 스스로의 결정이 중심이 되는 실험의 과정이나, 방법이 아니라 그 상황을 직관하는 열린 받아들임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듣자, 나의 활동 반경을 두고 ‘공부’를 권했던, 지금은 친형제보다 친해진 연출가 양지원의 충고가 경험과 선험으로 이루어진 진심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론이 공연에서 선뜻 내키지 않고 나 역시 그 이유로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이유는 우리가 경험하는 그 직관의 과정이 언어로 설명하기 매우 힘든 부분이라는 것 때문이다. 밍케는 바로 그 부분을 짚으며, 불가능 한 것을 그 상태에서 머물지 않고 다른 단계로 이행하기 때문에 ‘이론’이라는, 즉 그 어떠한 것도 결론으로 원하지 않는 공동체적 행위이자 누구나 할 수 있는 연습이라고 강조한다.
직관한 그 상태를 떠나는 동시에 직관한 그 상태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경험을 통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제에 관한 예로 대신한다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추스는 이 전시는 이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론 자체라고 강조한다. 스페인의 상황을 빗대어 주제로 가는 그의 이야기 전체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정작 더 흥미로웠던 것은 토론에서 보여준 그의 자세다. 한 청자가 강연이 독일 철학의 심연을 다루고 있으면서 독일어로 진행되지 않고 영어로 진행되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고 독일인인 밍케를 집중 힐난하자, 추스는 응수하기를 나누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스페인어로 철학할 수는 없느냐 (Kann man nicht auf spanisch philosopieren?)’며 면박을 주었다.
그의 태도로부터, 모국어를 잊은 채 동시에 모국어에 천착한 채 세상에 던져진 나 자신이 그 동안 얼마나 그 문제에 관해 의기 소침해 있었으며 그래서 나누고 드러내기에 인색해져 있었는가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추스가 반문한 그 지점에서, 한국어로 한국인으로서 예술하고 이론하고 그것을 세상에서 나누고 싶었던 것이고 자연스럽게 제시할 힘이 아직 부족했던 것이다.

9월 16일. 도큐멘타 마지막 전시일이다. 베를린에서 카셀로 당일 치기 여행을 결정한다. 하루에 갔다 도큐멘타를 보고 오는 모든 일을 하기란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리임에 분명하지만, 그 하루를 온전히 ‘공연’이라는 테마에 바치기로 한다. 늦은 아침 도착한 카셀. 곧장 호텔 뒷마당, 티노 세갈의 작업이 있는 그 곳으로 향한다.

“Baby, it’s alright, now you ain’t gotta floss for me
If we go there, you can still touch my love, it’s free

팀버랜드(Timbaland)의 히트송 「그대로의 나(The way I are)」를 부르는 남녀 무용수들의 코트 댄스를 한참 바라본다. 통속적이기 이를 데 없는 가사지만, 기계음을 제외하고 사람의 목소리로만 들어보니 이 또한 아름답다. 간격이 좁혀지며 아슬아슬하게 가사와 의미가 들어맞기까지 하는 순간, 정지하며 다시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는 『디스 어소시에이션』. 캄캄한 동굴 속에서 사물을 알아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분간 할 수 있고 나서는 또 다시 그 춤과 노래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룰 때를 기다려야 하지만, 그 시간이 도무지 지루하지 않다. 이걸 느껴보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들은 작업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할까?

강연이 있는 스튠데하우스를 지나 다음으로 향하는 곳은 노이에 뮤지엄 2층이다. 스튜어트 링홀트(Stuart Ringholt)가 진행하는 「앵거 워크숍(Anger Workshop)」을 일찌감치 신청해 놓고는 그것이 단일 행위,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지만 직접 그 안에 있으면 어떨지에 대한 흥분으로 도착한다. 스튜어트의 사전 요구는 간단하다. 우선 혈압이 정상이고 건강할 것,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질 것에 대한 간략한 서약서에 서명을 하는 것이다. 그의 설명은 본인이 개발한 새로운 퍼포먼스가 결코 아니며 명상가인 오쇼(Osho)의 7일 명상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한 가지 감정만을 하루에 하나씩 그렇게 7일을 보내는 오쇼의 명상으로부터 스튜어트는 “화(Anger)”에 집중해본다.
예상대로 한 가지만을 하는 것으로 기마자세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것이다.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밀폐된 방안에서 질러대는 괴성은, 아보리진과의 화해되지 않는 역사를 아파하는 호주의 미술만을 전시한 노이에 뮤지엄 2층에서 적절한 큐레이팅을 이룬다. 괴성이 끝나자 얼굴을 보지도 못한 관객들이 벽 밖에서 박수를 쳐준다. 워크숍은 그렇게 5분은 소리를 지르고 마음껏 화를 낸 후, 다른 5분은 다른 사람을 안아주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화를 내는 5분이 정말 힘들다는 사실. 화가 난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그 화를 방출하지 않고 안고 사는 폭발 직전의 사람들 말이다. 거의 모든 참석자들은 끊임없이 화내기는 불가능했던 반면, 처음 보는 사람이나 연인이나 상대를 보듬는 과정은 한없이 평화롭고 길었다. 사랑의 상태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는 그 순간과 같이.
워크숍이 끝나고, 스튜어트는 화는 무엇일까를 참석자들에게 묻는다. 사전적 정의와 같은 거절당하는 것으로부터 느끼는 느낌, 당혹감, 실망이 화와 대치되는 단어라는 중론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의는 화는 다시 말해 사랑의 상태라고 했다. 그가 빗댄 일화는 이렇다. 사랑하는 아내가 친구와 불륜을 저지른 것을 알게 된 남자가 있다. 그의 상태. 그가 느끼는 대로 화를 내면 아내도 도망가고 친구도 잃고 혼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아내를 향한 사랑은 앵거(anger). 즉 화와 근심 그 자체이면서 분출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 거다.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는 이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입구에 간판이 커피숍으로 바뀐 아주 오래된 영화 극장에서 공연하는 탓에 「앵거 워크숍」 이전 공연은 장소를 제대로 찾지 못했던 제롬 벨(Jereme Bel)의 『디스에이블드 씨어터(Disabled Theatre)』는 시간이 되자 긴 입장 행렬로 이번에는 도무지 그 앞을 못보고 지나칠 수 없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매번 허를 찌르는 지적 충만을 제공하는 것으로써 “악동”으로 종종 비유되곤 하는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미학은 이번에는 무엇일지 궁금한 가운데 나는 다시 객석에 앉는다.
통역가겸 모더레이터가 등장하고, 공연을 제롬 벨의 지시와 작업 순서대로 진행시킨다. 한명 한명 등장하는 무용수들은 흔히 알려진 병명대로 “다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타인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들의 춤은 무엇인가, 그 춤을 본 지인들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그의 안무는 비록 작업이 부지런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얄팍한 뒤집기로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보여주려는 잔재주를 피우지는 않았다.
일반인보다 감정적으로 보다 예민하고 섬세한 다운증후군의 출연자들은 그들이 내키지 않는 한 억지로 그렇게 기뻐하며 땀흘리며 춤을 출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의 공연이 아니었던들 자신을 보이는 것을 항상 부끄럽게 여기도록 훈육된 사회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을 것으로, 제롬이 새로 들고 온 질문에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미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들이 조금 다르게 생겼다고 하더라도, 누구와 마찬가지로 자랑스러워하며 기뻐하며 다른 이들 앞에서 춤 출 수 있다. 제롬이 제시하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믿을 수도 상상해볼 수도 없었던 것이다.
몇 주 후 제롬의 페이스북 포스트에는 “표지 모델(Cover Girl)”이라는 제목으로 한 장의 사진이 올려졌다. 유수의 독일 연극저널 가운데 하나인 「테아터 호이테(Theater Heute)」가 과감히 근접 촬영한 공연 사진을 표지에 사용했고 그것을 상업 패션지에서 최고 인기 모델만이 그 커버를 장식할 수 있는 현실에 비유했던 것이다.

매번 보아도 다른 느낌 때문에, 마지막 기차를 타기 직전의 몇 분을 다시 티노 세갈의 작업이 있는 그 마당으로 향한다. 많은 씬들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 코트 댄스 씬이 얼마 기다리지 않아 나를 반기듯 다시 나온다.

“Baby, it’s alright, now you ain’t gotta floss for me
If we go there, you can still touch my love, it’s free.”

이 광경을 몇 번이고 지켜본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 줄 것이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몸소 체험한 것을, 사실 언어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 이 경험을, 나는 나만의 해석과 재생산 방법으로 누군가에게 전달해 줄 것이다. 그 언어와 전달 방법은 진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청자는 또 어둠이 빛으로 바뀌기까지 기다리지 못한 관객들처럼 사라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를 위해 논리적이며 명철한 방법과 언어를 사용할 테지만, 나는 그 방법이 전달하는 이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리고 다시 만드는 것일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