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올해로 12회째를 맞이했다. 2001년 출범할 당시 이사장을 필두로 한 조직체였다가 3회째부터 지금의 예술감독직을 도입하였다. 이종훈(2003년), 김광림(2004-2005년)을 거쳐 김철리(2006-2010년) 예술감독에 들어서면서 전문집단과 대중 모두에게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2010년 한국공연예술센터(HanPAC)로 그 주최가 바뀌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었다. 공공적인 성격의 공연예술 극장 중심으로 재편성된 것이다. 인수인계를 마무리 진 올해는 완전하게 한국공연예술센터의 프로그래밍으로 실현되었는데 무용분야는 안애순 예술감독이 총괄하였다.
10월5~27일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등지에서 펼쳐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2012」의 무용분야는 해외초청작과 국내초청작의 방향이 조금 달리 느껴진다. 전자가 다양한 예술장르 간 통섭을 두드러지게 제시한다면 후자는 이를 바탕으로 한 젊은 창작자의 자기 색깔 찾기를 강조하고 있다. 국내초청작은 특히, 몸의 기교적인 탐닉과 과시에서 탈피하여 자기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창작자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국은미, 이경은&정정아, 임지애, 노경애, 김정은, 백효율, 주정민, 손명희, 나연우, 염하랑이란 구성을 보더라도 그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10월 2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있었던 나연우, 손명희, 염하랑의 공연 역시 그 경향을 선명히 드러낸다.
나연우의 『침이 고인다』는 ‘다수의 입장과 다른 소수’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협한 시각을 통해 우리 시대의 자유를 재고케 한다. 무거운 보따리들, 방대한 양의 귤, 거대한 고무대야, 포대 기능을 하는 의상 등을 활용하는 나연우의 움직임에는 기이한 유머와 관념적인 진지함이 상존한다.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신맛을 가진 귤이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하듯, 그녀의 춤으로 인해 관객이 웃는 가운데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유를 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아직 20대 후반인 나연우는 차근차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녀가 가진 무기는 장치를 활용하는데 있어 남다른 감각이다. 장치를 활용하는 움직임을 통해 사유할만한 주제꺼리를 표명하는데 남다른 예술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침이 고인다』에서 잘 드러나 있듯 말이다.
손명희의 『패턴 : 벽』은 역사적 사실을 담은 사진에서부터 생성된 영감을 움직임과 소리에 집중하여 그린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으로 디자인된 움직임과 소리는 무의미하거나 소소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전체적인 짜임새에서 풍기는 일련의 이미지와 분위기는 파괴와 재생, 허무와 희망을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다. 물론 이따금씩 일상적 동작들의 뻔한 조작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젊은 창작이 일련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풍겨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앞으로 더 뻗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염화랑의 『리셋』은 현실과 대립의 이질감 속에서 내면의 욕구와 미련을 ‘의자’라는 소품을 활용하여 표현한다. 몸을 긴장시키는 에너지를 실험하는 독무는 일정한 사이클로 변화와 회귀를 반복한다. 춤의 미적 선형에만 몰두하지 않은 채 부분적으로 한국춤적인 호흡과 밀도를 함양하고 있다는 점은 발레전공자로서는 흔치 않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마지막까지 유지한 점은 긍정적이나 결론적으로 무엇을 말하려는 지에 대한 개념의 발현은 다소 약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처럼 주도적인 페스티벌에서 젊은 무용가들에게 이렇게 집중적으로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사실 상대적으로 덜 검증된 젊은 무용가들을 대거 소개하는 만큼 위험부담도 있다. 발칙할 만큼 신선할 수도 있고 또 시행착오적인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젊은 창작자가 예술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득과 실임을 고려하면 버릴 것은 없다. 더 나아가,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젊은 창작자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성취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예리한 선별력과 앞서가는 안목이라는 전제조건을 끊임없이 충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