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이주형 안무 『도시의 부재』(10월19~20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는 생수통, 선풍기, 트렁크, 곰인형, 쓰레기통, 옷걸이 등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생활용품이 채우고 있는데, 이 소품들은 격자무늬 형태로 반듯하게 놓여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객석에서 한 남자가 무대 앞으로 뛰어 올라간다. 여행자 차림의 이 남자는 자기소개를 하고, 외국어(=일본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한국에 몇 번 왔었고 이 도시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그리고 갑자기 우주라는 화제를 꺼낸다. 자신은 ‘은하(galaxy)’에 관심이 많은데, 최근에 발견된 ‘힉스입자’에 감명받았다며 그것에 대해 설명한다. 낯선 도시를 찾아온 이 외국인 여행자는 또한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궁금해 한다. 그리고는 관객을 향해 물음을 던진다. “도시란 무엇일까요?”
그러면 한 무용수가 문을 열고 무대에 등장하며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한다. “내 갤럭시(스마트폰) 봤어?”, “아니, 나 운전중이야. 세탁소 근처에서 만나”, “응”, “안녕” 식이다. 대화가 끝나면 무용수들이 여럿 등장해 (마치 자동차가 대도시의 도로를 달리듯) 격자로 놓여 있는 소품들 사이로 오고간다. 그러다 셋이 만나면 “쾅”, 이 충돌은 되돌리기(rewind) 버튼이라도 되는 듯 빠르게 시간을 돌려놓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똑같은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나중에는 “갤럭시”, “안녕”만 들릴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조명과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이용해 시간을 되돌리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장면이 바뀌고, 여행자는 무대 위 남자에게 춤이 뭐냐고 묻는다. 그러자 남자는 접시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그 뒤를 이어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 놓여 있던 소품들(일상용품)을 가져와 일렬로 연결시킨다. 물건들을 (물건을 이용해) 어떤 식으로든 연속해서 줄지어 놓자 그 위로 접시들이 하나씩 올려진다.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그것은 어느 한 곳이 끊어지자 곧 무너져 버린다. 물건들은 쓰레기처럼 치워진다. 물건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단절된다면, 혹은 물건들을 연결시키는 매개가 없다면 일상의 사물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일까.
계속해서 장면이 바뀌고, 여행객은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이 춤을 찾고 있다고 말을 건넨다. 서로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은 단음절의 단어로 말을 주고받지만, 그것은 의미있는 ‘말’이 아니라 발음된 ‘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주거니 받거니 서로 따라하는 단음절의 소리들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지고 비트가 가미되면서 저절로 율동(움직임)을 유도하는데, 이것은 점차 전문적인 춤으로 발전된다.
그렇게 여행객은 계속 춤을 찾아 도시들을 돌아다닌다. 그러는 중 우리가 춤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흔히 떠올리기 쉬운 생각을 계속해서 무용수의 몸짓을 통해 보여준다. 길을 걷거나 부딪치는 것, 접시를 놓거나 물건들을 치우는 것, 팔을 올리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것,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것, 사람을 모습을 한 인형이 움직이는 것 혹은 가요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 영상(화면)에서 글자들이 리드미컬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두 사람이 밀치며 싸우는 것 혹은 폭력적인 행동처럼 신체를 학대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춤일까 아닐까.
여기에 이 작품의 주제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춤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내리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제스처와 포즈를 비롯해 수많은 신체의 동작(움직임)과 몸에 대한 탐구가 ‘춤(dance)’이라는 제명 하에 무대에서 각양각색으로 선보였다. 댄스시어터4p가 공연한 『도시의 부재』는 관객을 대변하는 듯한 여행객(연출자인 네이 하세가와)과 안무자(이주형)의 대화 같은 작품이다. 가령 우리들은 “뭐가 춤이야”라고 묻고 안무자는 “이거!”라며 보여주고, 다시 “모르겠어. 그게 춤이야?” “그럼 이거!” 하는 식이다.
결국 춤을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 여행객은 혼자 생각한다. 도쿄에서도 한국 제품의 라면을 먹고 한국 제품의 TV에서 한국 드라마나 한국 제품 CF를 보는 등, 도대체 서울이란 도시와 도쿄라는 도시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들은 구분이 되는가? 그런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지구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것만은 분명한데, 그것으로는 서울과 도쿄, 두 도시가 다르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못한다.
춤도 마찬가지다. 무용수들이 앞서 보여준 신체의 모든 움직임이 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전문댄서가 극장 무대 위에서 움직이면 춤이고 일상에서 움직이면 춤이 아닌가? 보통사람이 무대 위에서 움직여도 왜 춤이 되지 못하는가? 이처럼 춤공연을 접하는 일반인들이 흔히 부딪히곤 하는 의문에 대해, 이 작품은 ‘도시’에 비유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듯하다.
이제 우주라는 공간(장소)으로 이동한다. 우주에서 보면 도시란 차이를 알 수 없는, 너무도 작은 하나의 입자들에 불과하다. 크게 봤을 때 춤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춤을 정의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춤은 춤이다. 일상의 물건이 도시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것들(사람이나 사물)이 무언가로 관계를 맺고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느냐가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춤 역시 무엇이 춤이라고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왜 움직이느냐에 따라 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움직임, 신체, 리듬, 부딪힘 같은 요소들의 집합이 춤은 아니다. 춤을 춤답게 하는 것, 춤을 정의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물질을 구성하는 모든 입자와 상호작용하는 ‘힉스입자’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60여분간 다양한 장면의 장치들을 동원해 이야기를 한다. 특히 낯선 도시에서 ‘춤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라는 발상이 만화처럼 재미있다. 춤을 찾아 우주까지 다녀온 듯한 무대구성과 조명과 소품 등을 이용한 공간감, 움직임과 음악 등을 이용한 시간감을 느끼게 한다. 마치 영화의 장면을 무대에서 펼치는 것처럼 시각적이고 서술적인데,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되어 있는 여러 장면이 일관된 주제와 이야기구조를 따라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연결된다. 연기적인 면에서 코미디 같은 요소가 얼핏 콩트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위트가 있는 (더불어 풍자적 요소도 엿보인) 유쾌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춤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춤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 공연에서 춤은 부차적이며 기교적이지 않고 간단하다. 아직 춤공연에 익숙지 않은 초보(입문) 관객을 위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