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7일 인쇄
2012년 1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2년 11월호 통권 441호 |2025년 4월 3일 목요일|
 

공연평

 

국가대표 발레무용수와 우리 음악이 빚어내는 춤풍경
- 박 일·정혜진·니콜라 폴




유인화(劉仁華)(춤평론)

*국립발레단의 [아름다운 조우]
국립발레단이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국립발레단과 황병기 음악과의 만남 - 아름다운 조우]는 500년 이상의 역사가 담긴 서양의 발레와 1600여년전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든 가야금의 만남이라는 설정부터 신선했다.
우리 악기와의 만남을 통해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 작업이 폭넓어지고 국립단체로서 한국창작발레작품 제작을 업그레이드시킨 대목은 올해의 주목할만한 문화예술계 뉴스였다. 더구나 황병기의 음악이 한국춤이나 현대춤의 음악으로 사용된 활용도에 비해 발레작품에 가세한 사례는 극히 드물어서 이번 국립발레단의 시도는 창작발레 제작이라는 의미와 함께 매우 과감하고 실험적인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시도를 높이 살만 하다. 그만큼 황병기의 음악은 발레동작에 맞추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창작발레 작업하는 무용인들이 의욕적으로 음악사용을 시도해보다가 욕심을 접는 예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조우]는 9월27~28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마련됐다.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의 공연일정임에도 객석은 만석이었다. “황병기”라는 문화코드와 작업에 참여한 안무가 3명의 특색있는 안무가 앙상블의 묘미를 주었다. 또한 황병기 명인이 직업 출연해 작품을 해설하는 등 자신의 음악이 국립발레단과 만나는 의미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세 작품은 박 일(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 안무의 『미친 나비 날아가다』, 정혜진(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의 『달』, 니콜라 폴(파리오페라발레단 단원)의 『노바디 온 더 로드(Nobody on the road)』였다.
박 일은 황병기의 「아이보개」, 「전설」, 「차향이제」 등 3곡을 편집해 사용했다. 정혜진은 「침향무」와 「밤의 소리」를, 니콜라 폴은 「비단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사용했다. 특히 「침향무」는 일반 연주자부터 유치원 어린이까지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다. 가야금산조가 선보였던 조선시대 전통음악의 틀을 깨고 가야금 초창기인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음표의 흔적들이 「침향무」라는 이름으로 탄생됐다.
박 일의 『미친 나비 날아가다』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김삿갓 자신이 백일장에서 비판하며 쓴 글의 대상이 자신의 조부임을 뒤늦게 알고 조부를 매도한 자신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작품에서 그다지 많이 부각되지 않았다. 대신 삿갓 형상의 무대장치를 활용한 센스있는 구성이 극의 흐름을 부드럽게 이어주었다.
김삿갓 역의 이동훈과 상대역인 김리회는 안정감 있고 다양한 테크닉의 움직임으로 작품을 풍요롭게 빚어냈다. 백색처리된 조명의 단순함과 차가움도 춤의 소재를 강조해주었다. 그러나 음악과 동작의 겉도는 부분이 보였고 기생들의 연기와 춤은 단순했다. 김삿갓이 잔치집을 떠돌며 끼니를 동정하는 대목에선 극적인 춤동작이 보충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생들이 입고 나온 국적불명의 의상(모자를 포함)은 깊은 맛을 전하지 못했다.
정혜진의 『달』은 미니멀리즘이라는 화두로 그려낸 삶의 이중적 감정들이 충돌하는 정거장이었다. 무대 천장에 걸린 8개의 달 모양에 조명을 처리해 달의 각 면마다 인생의 표정과 스토리가 담겨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여성성과 달을 짝짓기다. 소녀에서 젊은 여성으로 변모하는 성숙과정을 초생달에서 보름달로 생성되는 월력으로 해석하면서 한국적 정서를 내비친다.
김지영과 8명의 여성군무는 강강술래의 동선을 변형한 일사분란함으로 미니멀리즘적 요소를 강조했다. 무대 뒤 컴퓨터 영상으로 처리된 물방울의 파장과 빗소리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은근함을 비유하며 무대 위 여성무용수들의 청초한 마음들을 보여준다. 물에 빠지는 듯 “풍덩”소리는 순수한 소녀가 사랑에 빠지면서 성숙의 옷을 입는 소리로도 다가왔다.
한국무용가인 안무가는 자신의 춤특징을 살려 상번신의 동작들을 화려하게 구성했다. 상투차림에 상반신을 알몸으로 드러낸 5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펼치는 달빛아래 러브신은 여성무용수들의 치마 속에서 찰랑이는 하얀 색 속치마와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한다. 달의 여인 김지영이 윗옷을 벗는 장면이 달 속의 그림자로 처리되면서 이 작품의 에로틱한 환상은 정점을 향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성과 달의 자연친화적인 방정식에 치중하고 여성과 남성의 정서적 이끌림과 즐거움을 잔잔하게 이어가느라 ‘결정적인 한 순간’의 고조되는 부분이 살아나지 못했다. 서로에게 반한 남녀의 싱숭생숭한 감정이나 갈등이 없이 ‘착한’ 장면으로만 이어졌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얌전한’ 이 작품이 밀도있는 짜임새로 전달된 배경으로는 김지영, 김기완, 이은원, 박슬기, 박나리, 유난히, 고혜주 등 무용수들의 테크닉을 최우선 꼽아야겠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압권은 달이 주는 정서를 온 몸으로 표현한 김지영이었다. 소녀의 수줍음과 사랑의 들뜸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그의 연기와 테크닉은 말릴 수가 없다, 한국무용가가 안무한 발레의 특징은 딱히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성을 동반한다. 토슈즈 앞코부분에 장식된 꽃무늬가 이 작품의 주소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니콜라 폴의 『노바디 온 더 로드』는 「비단길」 음악을 오롯이 살리고 중간에 음악을 끊어 무음으로 처리한 부분만이 있는 한 편의 보는 ‘음악’이었다.
시각적 긴장감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무가는 둥근 도자항아리를 설정하고 이 도자기를 출연무용수들이 번갈아가며 들게 하는 구성으로 작품의 진행을 시종일관 주시하도록 장치했다. 생각이 담긴 철학과 사상의 발원지인 항아리는 무용수들의 손과 손을 옮겨다니면서 사상의 전파를 이루고, 무용수들이 의미하는 존재, 즉 인간들은 하나의 사상에 뜻을 같이 하거나 반대하는 몸짓을 이어가면서 옷을 벗었다 입었다 반복하고 한 사람씩 또는 두세 사람의 앙상블로 사고의 공유와 반대적 시각을 보여준다. 어떤 때는 누워있는 사람을 건너가거나 지나치며 사상적 투쟁의 진통과정을 암시하기도 한다.
의상도 시각적으로 자극적이다. 그렇다고 비치거나 파진 것이 아니다. 남녀모두 상의와 하의가 하나로 연결된 한복치마의상이다. 앞여밈으로 처리된 의상은 입었다 벗기 쉽게 디자인됐다. 남녀 각각 4명씩 총 8명의 무용수들은 2명씩 짝을 이루거나 한 명씩 옷을 벗고 살색 팬티나 브래지어차림으로 몸의 만유인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옷을 입는다. 벗은 옷을 차곡차곡 개어 자신의 앞에 놓는 동작은 성찰에 대한 운을 남겼다. 음악은 한국적이지만 움직임은 한국적이지 않다. 그런데 동양사상에 입각한 여백의 미학이 담겨있다.
무대에는 황병기의 음악과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있을 뿐인데 이 작품이 인상적인 춤으로 다가온 배경은 무엇일까. 안무가의 강요없이 찬찬히 파고드는 호소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떠한 무대장치 없이 무용수와 의상, 항아리 하나와 조명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보는 이를 생각에 젖어들게 하는 움직임의 비밀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니콜라 폴의 자산이다. 안무가가 보여주는 삶의 여정은 반복적인 질문과 답을 찾기 위한 고난의 연속이었고, 생각하는 춤을 보여주기 위한 안무가의 노력은 처절했다.
올해 국립발레단은 황병기 음악과의 만남으로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 작업을 알차게 이루어냈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K-컬쳐의 대표작을 확보했다. 내년에는 국립발레단 51년, 또 다른 100년을 향한 첫 해를 맞아 우리 음악과의 특별한 만남을 지속적으로 시도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