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 국은미 안무 『내밀의 무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2012.10.14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과연 춤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진다면 먼저 움직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해야겠다. 움직임은 살아있음의 기본이고, 무대에서의 움직임은 생각의 흐름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아무생각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처럼 움직임에 이유를 달 필요는 없듯, 즐겁게 그리는 춤에 이유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국은미가 무대에 올린 작품 『내밀의 무한』 속의 춤과 움직임을 보고 든 생각이다.
함께 무리지어 서로의 움직임을 느끼고 사려 깊게 관심을 갖는 것, 그 사이에 교감을 이루고 반응해 주는 것. 너무도 그리운 느낌이다. 그러나 일상의 삶에서는 흐름에 반하는 인위적인 무엇이 삶에 자꾸 개입하다 보니 불협화음이 생기고 갈등과 반목이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살아가는 것과 관계 맺기를 이루는 춤, 그 기저에는 우선적으로 자기관찰과 자기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내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 본 만큼 타인의 깊이도 배려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면 깊숙이 다다르면 자의식과 움직임은 결국 밖으로 확장하는데 국은미는 그 지점에서 무한함이 가능하다고 이야기 한다.
무대는 단순한 빛으로 영역을 만들뿐 6명의 무용수가 이루는 잔잔한 움직임이 전부다. 퍼플로 가득한 컬러 변화가 한차례 있지만 움직임만큼 담백한 공간구성이다. 서로의 움직임과 호흡을 관찰하고 서로의 상태를 살피며 내면에서 반응하는 여러 가지 기호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형태적으로는 선과 열을 이루기도 하지만 뭉침과 흩어짐, 어울림과 밀어내기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관계를 무대에 옮겨놓는다.
국은미는 내밀로 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드러내거나 주장을 펴지 않는다. 다만 약속된 최소한의 형식 안에서 발생하는 우연들을 즐겼다. 그 사이에 수없이 이루어지는 관계 맺기 속에 무용수들 간의 교감은 충분히 이루어진듯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무대 위에서 주고받는 정서가 관객의 교감을 얻진 못했다. 추는 춤과 보는 춤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생각했다.
객석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움직임에 관객은 어떤 심상으로 반응해 주고 어떤 부분에서 교감의 코드를 얻을지 배려하지 않았다. 이런 움직임이 있다고 소개하는 워크샵을 무대 위로 가져온 듯. 모든 작품이 무대에서 치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생각에 생각을 더해 메시지 하나를 던져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성찰적 내면의 탐구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는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만을 파고드는 것을 계속해서 지켜본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작품의 이해를 위해 국은미는 바슐라르의 글을 소개했다. “모든 대상에 있어서 거리성은 현존성이며 지평선은 중심에 못지않은 현존을 가지고 있는 것”이란다. 도대체 거리성, 현존성이란 말과 지평선과 현존성의 관계를 이 작품에 어떻게 비추어 생각해볼 것인가 알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내밀이 무한하다는 것은 말로서는 이해가 되나 그 이미지를 무대에서 찾을 수 없단 말이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음악들이 툭툭 이어질 때 그 음악의 정서가 흐름에 영향을 주었다. 움직임을 위한 음악이라기 보단 음악에 맞추는 움직임으로 느껴졌다. 안무자가 원하는 자기 자신의 바램과 상상을 좀 더 꺼내 보여주길 바란다. 내밀의 무한은 충분히 고민할 가치가 있는 주제임이 분명하다.

■ 손영민 안무 『들개』(2012.10.24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춤으로 책을 읽는다. 별오름극장의 박스공간에서 안무자 손영민은 한 권의 책을 춤으로 푸는 도전을 한다. 꽤 쌀쌀해진 가을, 무대에 올리는 컨텐츠는 이외수의 날 선 글이 살아있는 ‘들개’. 소셜네트워크의 멘토로 항간에 회자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꽤 구수한 입담을 벌여놓는 이외수의 젊은 날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장편소설이다. 생각의 고름을 짜서 적어놓은 삶의 스펙트럼을 춤의 형태로 무대로 옮기는 시도는 만만치 않겠다.
들개란 사람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야생의 환경에 살아남은 개들을 말한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안락함이 있지만 결국 의존적이고 질서와 체계 속에 길들여져야 한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질서에서 벗어나 날것인 상태의 세상과 마주 한다는 것은 벼랑 끝의 치열함과 마주서야 하는 일이다.
무대는 웅성거림 속에 관객을 향해 조명이 켜지며 쇠사슬에 몸이 메인 사람이 관객을 향해 뛰어들며 시작된다. 더 이상 다가설 수 없는 한계와 반대편에 서서 사슬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업스테이지 한 편에는 3사람의 연주자가 관망하듯 무대를 보며 정황을 연주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녀는 화가와 작가 지망생이다. 질서에 타협하지 않고 삶과 바꾸어도 좋을 작품을 빚어내리라 갈망한다. 예술의 꽃 하나 피우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지만 세상의 변두리에 서성이는 나약하고 외로운 존재일 뿐이다. 손영민과 함께 어울리는 두 명의 무용수는 이들의 갈망과 쓸쓸함을 춤으로 풀어 놓는다. 그리고 한 사람의 연기자는 소설 속에 나오는 말장난 혹은 진중한 논의를 무대 위로 툭툭 던져 올린다. 조금 어색하거나 원작이 갖는 울림과 비교해 불편함을 느낄 필요는 없다. 두 남녀의 쓸쓸함과 치열함, 이 정황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은 춤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영민은 이 작품의 전체 형태에 대해 꽤 고민을 한 것 같다. 춤과 텍스트가 이어지는 관계 설정에 작가적인 안목을 보였다. 움직임에 있어서도 몇 개의 박스를 바닥에 풀어놓고 옮겨가며 남여가 처한 막다른 상황과 유희를 자연스럽게 풀어 나갔다. 원작 소설의 무게가 가볍지 않고 스타일 또한 분명해서 접근 방식은 무한하다고 본다. 무용수들의 움직임 자체에 대한 연구는 타성에 젖은 듯 평이했다. ‘들개’를 위한 호흡의 결을 충분히 만들어 주지 못한 느낌이다.
지독한 외로움, 치열한 예술적 추구, 벼랑에선 마지막 움직임. 결국 이런 것들이 박스공간의 실험무대에서 회자 될 때 춤이 있는 극장은 설렘으로 가득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