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 트러스트무용단의 『자유에 대하여(About Liberty)』(10월25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반데키부츠 대극장 공연날 그거 안보고 소극장 공연 봤니? 표를 못 구했구나.
* 난 반데키부츠 하는 줄도 몰랐어. 처음 소극장 계단을 내려갈 때 기대한건 작은 소품이었어. 공연이 시작되고 나의 예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어. 불편했지. 이렇게 복잡한 건 줄 알았으면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할 걸! 『리버티(자유에 대하여)』는 소품이 아니라 안무가가 오래 연구하고 출연자와 엄청 연습을 한 대작이었어. 무대세팅만 다시하면 바로 대극장 공연이 가능한 작품이었어. 출연자는 남자5. 여자2, 음악3. 러닝타임 60분.
─ 라이브 연주도 한 거야? 공간이 나오디?
* 그러더라고…. 라이브 연주의 장점은 댄서들과의 즉흥적인 호흡인데, 연주자들이 계속 무대를 주시하면서 템포를 조절하더라. 첼로가 호흡 조절을 잘하더라고. 근데 음악 자체를 중요시 한 거 같지는 않아. 음악 자체가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어. 철저한 반주 또는 효과음으로 취급. 독자적 역할을 안준거지. 좀 아쉬워.
─ 그랬구나, 음악이 좋으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건데….
* 연애할 때 밀당이라는 걸 하자나. 모든 예술 작품이 관객과 밀당이라 할 수 있는데….
─ 그렇지, 낚시 할 때도 감았다가 댕겼다가 하며 올리지. 계속 감아대면 줄 끊어져.
* 그런데 『리버티』는 관객을 조금 계속 감아댄다고 할까 그런 면이 있는거 같아. 일반적으로 한 작품을 ‘제시 - 긴장고조 - 변주 - 지속 - 반전 - 클라이막스 - 해소’ 이런 구조로 얘기해본다면 이 작품은 ‘변주’와 ‘반전’이 약하게 작동하는 것같더라고. 주제가 심화 되는 느낌? 그러니 ‘지속’이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러다 보니 클라이막스와 마무리가 ‘쨍’하게 오지 않더라고. 마지막에 무대 중간에 장대를 세우고 남자댄서가 타고 돌리면서 공연자 전체가 탁구공을 쏘고 뿌리고 하는데, 왠지 공연에서 쌓인 긴장감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 느낌이 들더라.
난 요즘 한국 현대춤 보면서 젤 안타까운건 유머감각이 잘 보이지 않는거야. 다들 너무 진지하고 너무 심각하고…. 요즘 공연장에서 제대로 춤추는 걸 잘 보지 못했어. 물론 제대로라는 게 어폐가 있지만, 내 말은 팔 다리를 기분좋게 힘차게 뻗는 걸 본적이 없다는 거야. 한마디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는 얘기. 거의 다 움츠리고 비비꼬고 뒹굴고 기어다니고 표정도 침울하고! 웃는 얼굴을 본적이 없네. 다들 힘들고 괴로워하는 모습만 보게 되니까. 보는 것도 힘들어.
─ 그게 ‘시대정신’ 인가! 고통, 억압, 소통부재, 부자유 등등으로 상징되는 무엇? 얼마전 신문 인터뷰에 ‘시대정신’을 말씀 하시는 안무가가 있던데! ‘현대춤은 시대정신을 구현해야 한다’고 그러시더라.
* 나도 봤는데 ‘시대정신’ 이라는 말은 조심해야는데. ‘시대적 고민을 함께해야하니 시대와 소통해야한다’는 말씀까지 하시던데. 이런 의문이 들지 않니.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작가의 내면이 아닌 외부에 객관적으로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공통된 시대적 고민이 있기는 한 것인가.
─ 작품이 작가의 산물이고 작가가 시대의 산물인 이상 안무가가 뭘 상상하더라도 그건 시대정신! 따로 시대정신을 고민 할 필요 없는 거 아니니. 잘못하면 ‘시대정신’은 정치적 사회적 편향성을 얘기 하는 것일 수 있어.
* 하핫, 그 얘기 그만해. 끝도 없는 얘기야.
─ 『리버티』에 인상적인 장면은 없었어?
* 주요 출연자를 키 큰 여성댄서A, 키 작은 여성댄서B, 안경남자댄서C, 말총머리남자댄서D 로 나누면 A-C, B-D가 상대역 인건데, A가 환복을 두 번 해. 처음 와인색 원피스에 금빛 하이힐을 신고 나왔다가 살색 원피스에 맨발로 춤을 추다가 다시 와인색 원피스로 갈아입어. 그런데 앞의 두 번은 원피스 안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와인원피스를 다시 입을 때 반바지 대신 망사느낌의 검정팬티로 갈아입었어. 그건 왜일까. 검정팬티가 리버티의 상징인걸까. B는 D가 끌고 온 가죽가방에서 나와서 가방에 저주를 퍼부으며 ‘Ich bin ein Mensch(이히 빈 아인 멘쉬)’어쩌구 하며 독일어 대사를 한참 하던데, 연기를 잘하더라. 발음도 좋고, 연습 많이 했던걸.
─ 한 줄 감상평은?
* 수준있는 좋은 작품! 대극장 로비에서 반데키부츠 작품을 모니터로 봤는데 『리버티』가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느꼈어(노래 잘하는 가수 등장 부분만 빼고…흠). 러닝타임 늘리고 스테이지를 넓게 쓰면서 다듬으면 반데키부츠를 소극장으로 보내버릴 수 있어! 그저 조금 힘을 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유머러스를 가미해서!
─ 이게 한 줄이냐? 말이 많구나.

■ 김윤수무용단의 『네 명의 무용수를 위한 거문고산조』(10월7일 서강대메리홀 대극장)
─ 어제 공연보러 갔다며 어땠니?
* 어, 재밌었어, 4작품이나 하더라고, 첫 공연으로『bokko(복고)』라는걸 했어. 復古(복고)라는 말이래. 조슈아 비미시라고 들어 봤니? 두 번째 작품이 비미시의 『콘체르토』였어. 음.우리끼리 얘긴데, 요즘 본 것 중에 좋았어. 일단 최고의 음악을 선택했고. 이 친구 춤에는 클래식, 유머러스, 캐주얼, 충동, 어슬렁거리기, 그런 것들까지 보이고! 움직임 자체가 즐겁고 아름다워. 팔꿈치를 뒤로 둥글게 말아올리는데 관능적이야. 이런 말이 생각나더라고. ‘결코 그 몸짓이 그 사람을 보여준 게 아니라, 차라리 그 사람이 한 몸짓의 매력을 드러내 보인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불멸」, 밀란 쿤데라)’ 왜 이 말이 생각났을까.
─ 좋았나봐.
* 세번째 춤은 거문고 산조에 남녀 두 커플이 추는 거였어.
─ 나 그런 거 보고싶다. 발바닥이 붙어있디?
* 그럼그럼. 기본 한국춤에다 동작이나 만들어낸 그림들은 발레나 현대춤에서 온 것도 있고 리프트도 번쩍번쩍 하더라고. 여성댄서들이 어려서부터 한국춤을 추면서 리프트 될 거라는 생각을 해봤을까? 올라갈 때 살짝 어색해 하는게 느껴지던데… 하핫. 근데, 거문고 산조에 춤은 혼자 추는게 맞는거 아닐까 싶었어. 아니면 둘만.
─ 왜 그렇게 생각해?
* 다들 잘 추는데 네 명 포착하기가 어렵더라. 집중도가 떨어지는거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쪽으로 시선을 옮기니까 호흡이 안 맞더라고. 왠지 한국춤을 볼 때 그런 거 같아. 음악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서 한 사람 춤만 주로 봤어.
─ 저런. 전체적인 그림은 어땠는데?
* 안무가가 아름다운 화면을 잘 만들어. 멋진 스틸 컷이 많이 나오는 작품. 그리고 댄서들의 의상이 세련됐어. 여성댄서의 의상은 딱 한복을 한꺼풀 벗겨 논 거 같았어. 팔이 허공을 탁 치고 움직일 때 머릿속으로 한복을 입혀보기도 했는데, 한복 속에서 저렇게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게 느껴져서 재미있더라고.

■ 리케이댄스의 『마음도깨비』(10월7일 서강대메리홀 대극장)
*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가들이 자기자신의 마음속을 후벼 파는 때가 있자나. 소설가들이 자기 내면에서 한 단어씩 길어 올리며 괴로워하고 무용가는 몸짓 하나씩 끌어 올리며 괴로워 하는 그런 거.
─ 마지막 춤이 그랬니?
* 그런 거 같더라. 무대 바닥을 꿈틀꿈틀 기어다니고 쭉쭉 팔다리를 뻗는 것 같더니 다시 주저앉고 뛰어다니고 입에서 시커먼게 나와 흐르고 계속 입으로 쉭쉭거리고, 손가락이 뱀 혓바닥처럼 달달 떨리고, 음향은 계속 노이즈를 틀어대고.
─ 엥, 말만 들어도 무섭다. 근데 난 그런 마음 알 것도 같아
* 어! 그게 뭔데?
─ 음. 우리끼리 얘긴데, 그 안무가 혹시 실연(失戀)한 것 아닐까. 여자가 자기 마음 바닥공사 할 때는 애인하고 헤어졌을 때지. 안 그래? 어떻게 마무리 됐어?
* 허공 같은 벽을 흔들며 끝났어.
─ 에고. 힘들겠다. 근데 공사는 그 쯤 해야 돼. 괴로운 게 리얼 같지만 그것도 판타지. 다시 환상으로 돌아와야지.
* 근데, 난 이번 춤이 지난번 공연인 『조용한 수다』와 달라서 좋더라구. 비슷하지 않다는 거 중요하잖아. 셰익스피어에 관한 해설 중에 가장 결정적이고 마음에 드는 건 ‘결코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스탠리 웰스)’라는 말인데, 스스로에게 항상 새로운 걸 주문했기 때문에 상상력이 발휘 될 수 있었다는 얘기. 리케이댄스는 다음에도 새로운 걸 보여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