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사포의 공연은 언제나 ‘몸으로 쓰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월 15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사포가 창단 30주년 기념으로 발표한 신작, ‘겨울 숲’은 그 시적정서가 한층 깊어졌음을 느끼게 한다. 모든 예술표현은 상상력이 모태이며 상상력은 이미지로 표현된다. 몸짓언어가 표현해내는 이미지는 언어로 창조한 시적이미지와는 다른 환기력을 갖는다. 무용언어는 보다 감각적이면서도 추상적이다. 그러기에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무용작품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보다 자극하며 다양한 이야기와 의미를 풀어낼 수 있게 한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이번 공연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자유롭게 접근해보고자 한다.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이번 공연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은 프롤로그다. 어둠 속에서 카운터 테너(Andreas Scholl)가 부르는 우수에 찬 첫 음악(English folksong ‘I sow my lady weep’)의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면 무대 한복판에 조명이 들어오고 거기 한 여자무용수(송현주)가 객석에 등을 돌린 채 엎드려있다. 그녀의 등 뒤론 그림자처럼 길고 넓게 검은 천이 드리워져있고 이 첫 장면의 이미지만으로도 이 작품은 관객에게 이미 큰 울림을 일으킨다. 무용수가 서서히 고개를 들어 무대 안쪽 겨울 숲의 영상을 향해 간절한 몸짓을 보일 때 왠지 그녀가 숲의 사원을 향해 경건하게 기원을 올리는 여사제같은 느낌이 든다. 그녀 등 뒤로 넓게 펼쳐진 검은 천의 특이한 그림자효과 때문일까? 한편 그 그림자가 마치 거대한 숲의 그림자처럼 느껴지며 그녀 자신이 어쩌면 숲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한 그루 생명의 나무의 화신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그려지기 시작한 사포의 겨울 숲은 사라질 운명에 처한 개체적 생명들의 소멸과 새로운 생명의 배태가 맞물려있는 근원적 시공간, 근원적 생명의 사원처럼 느껴진다. 하나하나의 무용수들은 그 사원에서 개체적 생명체로서의 하나하나의 나무이거나 혹은 또 다른 생명체를 화신하면서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존재들의 아픔과 절망, 절규, 고독, 광기, 체념을 단계적으로 말하는 듯하다. 그것이 이미지1(‘새벽강가에서’)부터 이미지 2(‘흔들리다’), 이미지 3(‘나목 너에게 가려고)’의 제2시퀀스(‘침묵에 든 겨울 숲’)에 이르기까지 저들이 풀어내는 이야기인 듯하다.

이미지1 ‘새벽강가에서’는 소멸의 조짐을 느끼는 자들의 안타까운 행보를 보여준다. 바하의 푸가(‘Contrapunctus 14’)의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여섯 명의 여자무용수가 무대 전경에 하나씩 등장하여 안개 속에 소리 없이 흐르는 강을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 조심스레 건넌다. 무대 전경에서부터 안쪽으로 조명이 차례차례 내주는 물길을 따라 여섯 무용수는 마치 사라져버린 누군가의 그림자를 찾는 사람처럼, 뭔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찾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그들이 건너는 강은 아마도 그들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추억의 강 혹은 이미 죽음의 강일지도 모르겠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흐릿한 강물 속을 들여다보며 마치 그 속에 각자 내려놓은 추억의 침전물을 건져내려 애쓰는 듯 더듬더듬 강을 건너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애잔한 울림을 일으킨다. 그 몸짓이 전달하는 안타까운 물음들이 다음과 같이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여긴 어딜까? 다들 어디로 간 걸까? 내 곁에 있던 사람들, 내가 살았던 삶의 흔적들. 다들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그러나 이곳에도 저곳에도 그들이 찾는 건 보이지 않는다. 기웃거리면 기웃거릴수록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나는 무엇을 찾는 걸까? 내가 살아온 시간들, 내 기억의 강바닥에 갈앉아있는 건 대체 뭘까? 나는 과연 살긴 살았던 걸까? 의구심조차 든다. 내가 살아왔음을,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입증해보려 애면글면해 봐도 손끝에 확실히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더 이상 내가 무엇을 찾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렇게 내가 살아온 시간의 강은 영원히 안개 속에 갇히고 나는 어떻게 해도 내가 떠나온 저 기억의 강 건너편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어떻게 해도 그 강을 온전히 건널 수가 없다.

이미지 2 ‘흔들리다’는 두 공간에 서로 떨어진 채 서로를 그리워하는 듯한 남녀의 몸짓을 보여준다. 그들은 마치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 숲에서 칼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내적 흔들림을 보여준다. 자신이 뿌리내린 땅을 벗어나지 못한 채 헐벗은 모습으로 바람과 드잡이하는 두 그루 나무처럼 대책 없이 상체만 빙그르르 움직이는 무용수들(이재현, 조다수지)의 동작은 서로 인연의 줄을 놓쳐버린 연인들의 고통을 안타깝게 표현하는 듯하다. 저들이 아무리 제 자리에서 몸을 비틀고 빙글빙글 돌아봐도 아무리 서로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려고 몸을 앞뒤로 흔들고 서로를 향해 손을 뻗어 봐도 이미 삶의 사이클을 달리한 두 존재는 각자 다른 반경 안에서 맴돌 듯 움직일 뿐 결코 서로 만나지지 않는다. 그들의 인연은 죽음에 의해서건 혹은 그에 버금가는 운명적인 이별에 의해서건 이미 회복할 수 없게 어긋나버린 것이다. 그처럼 깊은 상실감을 애처로운 몸짓으로 표현하는 두 무용수의 표현은 인상 깊다. 그들의 움직임은 때론 삶의 흔적이 사라져버린 자리에서 아직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맴도는 영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어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하는 배경음악(Jhon Lurie, ‘Bella by barlight’)에 몸을 실으며 등장한 두 여자무용수(김유진, 김슬기)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사로잡혀 갑자기 사신의 포로가 된 존재처럼 내적 불안, 긴장, 갈등을 인상적으로 표현해낸다. 저들이 얇고 짧은 흰색 상의만 걸친 채 반라의 이미지로 무엇엔가 사지를 묶인 채 그 질곡에서 벗어나려고 제 자리에서 아등바등 안간힘을 쓸 때 그 몸짓은 왠지 탈피하는 매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삶의 껍질을 벗어던질 때 매미가 느낄 육탈의 고통 같은 것도 상상된다. 그러나 두 무용수가 시종일관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몸에 번져가는 것이 죽음의 기운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의 심리인 것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생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 채 어떻게든 제 안에서 삶의 불씨를 되살려보려 애면글면해하는 존재의 심리와 이미 말을 듣지 않는 몸의 이미지를 두 사람은 꽤 설득력 있게 표현해낸다. 그러한 그들의 몸짓에서 느껴지는 내면의 외침들은 가령 이런 것들이다.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내 몸이 말을 안 듣지? 뭔가 날 옭아매고 있는 것 같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해. 이 답답함은 뭐지? 왜 이렇게 기운이 없지? 왜 이렇게 자꾸 세상이 빙글빙글 돌지? 왜 자꾸 내 몸이 검불처럼 쓰러지지?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두 무용수가 마치 군데군데 생의 관절이 꺾인 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움직이며 그와 같은 갈등을 표현하는 동안 어둠 속에선 몹시 신경을 자극하는 현의 파열음이 마치 그들의 혼란과 불안을 대변하듯 불안정하고 괴기스럽게 울려 퍼지고 그와 동시에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들의 심장박동소리처럼 첼로가 단속적으로 퉁퉁 소리를 낸다. 예술감독의 절묘한 음악적 선택이 새삼 돋보이는 대목이다.

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생의 마지막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절망과 두려움과 혼란에 빠져 절규할 수밖에 없다. 이미지3 ‘나목 너에게 가려고’에서 남자무용수(이춘명)의 춤에서 그 절규는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이미지 3(‘나목 너에게 가려고’)의 첫 시퀀스에는 ‘두 겹의 고독’이라는 소제가 붙어있는데 여기서 무용수가 표현하고자 하는 건 아마도 죽음 앞에 선 존재의 절대고독 속 절망인 것 같다. 대번에 듣는 이의 가슴을 톱질하듯 쑤시고 들어오는 배경음악(Piazzolla, ‘Four for Tango’)의 효과는 매우 강렬하다. 날카롭고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하고 괴기스러운 현의 소리가 듣는 이의 영혼을 발기발기 찢어놓을 듯 파열하는데 그 소리이미지를 남자무용수 이춘명은 자신의 몸짓 하나하나로 탁월하게 체현해낸다. 그가 춤을 추는 동안 마치 그의 몸에서 음악이 나오는 것처럼 음악과 그의 몸짓은 혼연일체다. 그의 표현에서 느껴지는 건 죽음의 기습에 발작적으로 반응하는 생명체의 움직임 같다. 요컨대 갑작스런 죽음의 기습에 당황한 존재의 이미지를 그는 단계적으로 섬세하게 그려간다. 첫 이미지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다가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날개 꺾여 추락하는 새의 이미지다. 공중으로 날다가 바닥에 쓰러져 뒹굴고 다시 일어나 비상해보려 하나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 몸의 느낌을 그는 점층적으로 고조시켜나간다. 내가 왜?! 누가 날 좀 여기서 꺼내줘! 그가 절규하듯 구원을 호소해 봐도 악귀처럼 달라붙은 사신은 그 몸을 점점 더 옭아매 갈뿐 아무도 그의 절망적 외침에 답하지 않는다. 그의 주변엔 죽음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리고 그는 점점 더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혀 마침내 광기상태에 빠진 듯 발작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나뒹군다. 결국 쓰러진 그는 그처럼 분열 상태에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고 무용수 이춘명은 끝까지 호흡을 놓치지 않고 그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표현해낸다.

이어 ‘침묵에 든 겨울 숲’에서 콘트랄토(Sara Mingardo)가 조용히 탄식하듯 부르는 비발디(‘Cujus animam gementem’)를 배경음악으로 무용수 박진경이 표현하는 것은 아마도 죽음 앞에 선 자의 마지막 반응,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체념, 허무감인 듯하다. 그녀는 이미 죽음의 포로가 된 사람처럼 검은 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해 앞선 시퀀스의 표현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죽음과의 맞대면을 그려낸다. 그것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맞이하는 어린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이나 한참 혈기왕성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죽음의 기습을 당한 자의 혼란스러운 절규가 아니다. 뭐랄까. 생의 연륜이 쌓여 자신의 삶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시간이 목전에 다가와 있음을 알고 죽음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의 태도라고나 할까. 그런 그녀의 움직임에선 깊이와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죽음이라고 해서 고통이나 슬픔, 안타까움이 없으랴. 누구나 죽음의 문턱에서는 삶에 대한 미련과 집착, 회한의 감정을 쉽게 내려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박진경이 절제된 몸짓으로 표현하는 내면의 말들은 가령 이런 것이 아닐까. 이제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핏기 빠져나간 내 모습 이미 유령처럼 느껴져. 이런 순간이 언젠가는 올 줄 알았지. 하지만 막상 닥치니 두려워. 나는 아직도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 순간을 받아들여야 하나? 내게 조금만이라도 더 삶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신이시어, 부디 내 안에 이 생명의 불씨가 조금만이라도 더 타오를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그러나 다 부질없는 일. 아무 반향도 없는 이 완벽한 침묵. 난 그만 그 감옥 속에 홀로 갇히고 말았네. 그러나 박진경의 춤이 표현하는 것은 끝까지 그렇게 무력한 슬픔과 체념만은 아닌 듯하다. 그녀는 마침내 뭔가를 결심한 듯 목에 두르고 있던 붉은 머플러를 격정적으로 휘두르며 힘 있게 마지막 춤을 춘다. 마치 눈앞의 어둠과 공포를 떨쳐내려는 듯, 마치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삶의 불꽃까지 남김없이 다 사르고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뜨리라는 듯.

한 생명이 가도 또 다른 생명은 온다. 겨울 숲에 다시 서서히 새 생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고 시퀀스 3-c ‘봄은 쌓이고’가 보여주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배경음악 바하(Contrapunctus 15 ‘Canon per Augmentationem in Contrario Motu’)와 함께 무대 안쪽 어둠 속에서 빛의 움직임이 하얀 드레스를 입은 무용수(송현주)의 등장과 함께 마치 겨울 숲 언 땅 속에서 움트기 시작한 새 생명의 기운처럼 떠오른다. 송현주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간절함이 담긴 몸짓으로 봄의 기운을 준비하듯 춤추고 이어 남자무용수 이재현이 등장해 둘은 서로 헤어진 연인을 찾아 헤매듯, 혹은 새로운 인연을 찾아 헤매듯 애절하게 듀엣을 춘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 아마도 죽음의 화신인 듯한 검은 드레스 차림의 무용수 박진경이 등장해 그들 사이에 끼어든다. 마치 이 새로운 만남도 머지않아 곧 이별의 순간을 맞게 될 거라는 걸 불길하게 예고하듯, 혹은 삶은 언제나 죽음과 맞물려있다는 사실을 새삼 연민 어린 어조로 강조하듯 말이다. 결국 이 트리오의 춤은 변함없는 생과 사의 사이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미지4(‘그들은 속삭이기 시작했다’)는 비발디(‘Concerto in G minor for two cellos, RV531’)에 실어 그 동일 메시지를 군무로 이어간다.

자연이 보여주는 생명의 순환성, 그 사이클 속에서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개체의 생사를 뛰어넘어 공동운명체다. 이미지4에 이어 에필로그까지의 군무는 그 공동운명체의 춤을 보여주며 영원한 생명력을 찬미한다. 그 속엔 더 이상 그 어떤 슬픔도 절망과 좌절도 고독과 광기도 없다. 오직 매 순간 새로운 탄생에 대한 설렘과 희망과 환희가 있을 뿐이다. 무용수들은 그것을 부단한 도약과 발돋움의 몸짓으로 활기차게 표현해낸다. 때론 새 나뭇가지들이 긴 동면에서 기지개를 켜며 빠져나오듯. 혹은 새순들이 얼어있던 땅 굳은 뿌리의 무게를 털어내고 힘차게 땅위로 고개를 쳐들듯. 혹은 그 모든 시간이 무르익을 때까지 다들 참을성 있게 숨을 고르듯. 그리고 마침내 개화의 순간이 온다. 이제 봄꽃들이 저마다 눈을 뜨고 겨우내 한껏 참고 있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제각각 향을 뿜어내며 세상이 온통 환해진다. 이제 쏟아지는 햇살 사이로 모든 숲의 생명들이 다시 한 번 거리낌 없이 제 소리를 내며 차츰 제 색깔로 물들어 갈 것이다. 사포가 그려낸 이 영원한 생명의 사원으로서의 겨울 숲에서 ‘그들은 지금 다시 피어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몸짓으로 가장 아름다운 몸짓으로.

2016년 저물어가는 10월 어느 날. 전주에서 정옥상이 사포의 몸짓에 화답하다 -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에 제대로 공연 지원조차 할 줄 모르는 안타까운 문화정책 불모지에서 30년 이상 꾸준히 새로운 몸짓언어로 경이로운 창작의 꽃을 피워내 우리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안겨준 사포에게 깊은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