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발레와 농악의 만남을 기획한 의도는 무엇인가?
*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2주년을 기념하며 기획공연 『아리랑별곡』을 기획했다. 농악과 발레의 만남, 근육질로 구동한 순백의 질풍노도, 그 파란을 화무지란(花舞之亂)이라 이름 붙인 역사상 최초의 시도다.

─ 여담이지만 발레를 그만두고 연예계에서 성공한 이들이 적지 않다?
*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2005년 초연 후 지금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롱런하는 공연 중 하나다. 하지만 클래식 발레계는 이 자체로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가 프리마돈나의 꿈을 접고 거리의 댄서가 된다’는 설정 때문이다. 어째든 발레 안무와 지도를 위해 현직 무용교수가 참여하고 있으니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서 브레이크댄스와 발레의 협업이며 성공이다. 또 중간에 발레를 그만뒀지만 발레를 했었다는 스팩(?)이 대중예술계에서 당당히 대우받는 경우도 여럿 있다. 구체적 예는 생략하겠다.

─ 왜 농악과 발레의 만남인가?
*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며 노여워하는 순혈주의자들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만남은 서울발레시어터가 토슈즈를 벗어던지고 대중을 향해 한걸음 내디뎠던 그 순간부터 예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발레 대중화의 기치가 올랐을 때 한쪽에서 농악으로 한국무용의 기본기를 다진 춤꾼 김운태가 때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지금이야 ‘제임스 전’이나 ‘김운태’를 이야기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꽤 된다지만, 서울발레시어터나 대학로 서울두레극장이 설립되던 1995년만 하더라도 이들은 그저 무명씨였다. 지금 제임스 전은 자신만의 발레세계를 구축한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김운태는 ‘김운태류 채상소고춤’이란 명칭이 사용될 정도를 명성을 얻었고, 국립현대무용단과 『춤이 말하다』란 레퍼토리로 함께 무대에 오른 경험도 있다.

─ 제임스 전과 김운태가 이미 인연이 있었다는 말인가?
*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이들은 서울발레시어터와 서울두레극장이 설립되던 1995년에 이미 만난 적이 있다. 서울발레시어터가 단막 레퍼토리 『상하이의 별』을 40일간 서울두레극장에서 장기공연하면서다. 한 사람은 안무가로 한 사람은 극장장으로 그렇게 만났다. 나는 당시 두레극장 기획을 맡았었는데 발레리나들이 대학로 곳곳을 누비며 포스터도 붙이고 전단지도 돌리고 했다. 그것이 정말 인상 깊기도 했다. 벌써 20년도 더 전에 엄숙주의를 벗어던졌던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의 용기가 가상키만 하다.

─ 발레와 농악의 예술적 협업 가능성을 어디에서 보았나?
* 배 나온 발레리나는 없다. 발레는 대충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반복과 훈련을 통해 몸이 기술(테크닉)을 기억하고, 단련된 근육이 그 기술을 훌륭히 시행할 근력을 갖추었을 때에야만 가능하다. 폄훼할 의도는 없지만 한국무용이나 현대무용은 의상이나 안무를 통해 몸이 가진 단점을 보완할 수도 있다. 반면 발레 의상은 발레리노의 근육질과 발레리나의 곡선미를 더욱 강조한다.
그리고 농악을 음악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전통적 농경문화가 많이 사라졌고, 그에 기반했던 농악도 사라졌거나 변했다. 지금 한국의 대표 문화상품이 된 ‘사물놀이’는 농악이 그 기원이다. 그런데 자세히 지켜보라. 가만히 앉아서 하는 사물놀이와 군무와 길놀이가 곁들여진 사물놀이 중 어떤 것이 더 신명나는가? 당연히 후자다. 음악과 춤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농악의 절반이 춤이란 말과 같다. 춤추면서 연주하고, 춤을 추어야 연주가 되는 것이 농악이다. 때문에 농악과 발레는 음악과 무용이라는 점에서 가장 먼 경계에 있으면서도, 근육에 의존해 춤춘다는 점에서 가장 가깝다할 수 있다.

─ 이번 협업으로 구체적으로 원하는 예술적 성취가 있나?
* 여러 지역의 농악들이 국가무형문화재나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사실이다. 또 작년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도 등재됐다. 하지만 들녘이나 너른 공터에서 공연되던 특성상 무대화의 한계가 있다. 그러나 탈춤이나 사물놀이의 무대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장르 세분화를 통한 무대화가 분명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착안해 서울발레시어터와 제임스 전, 연희단 팔산대와 김운태의 콜라보 무대 『아리랑별곡※』을 기획하게 됐다. 다시 말하면 농악의 예술적 무대화와 세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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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전의 초기 안무 작품 『Hope(각설이타령)』와 『도시의 불빛』, 서울발레시어터와 연희단 팔산대의 협업으로 초연되는 『아리랑별곡』과 『당산벌림』, 김운태의 『채상소고춤』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이 공연은 11월 26일 오후 5시와 27일 오후 3시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서도식)이 주최하고 문화재청이 후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