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관무기

정승희, 윤시향, 유옥재, 정상박, 이근수, 이상일 등 문화예술맨토포럼 회원들이 10월15일 오후 용산역에서 만나 전주행 기차를 탔다. 이들 일행 중에는 육완순, 김인식 무용가의 얼굴도 보였다. 그날 오후 5시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공연되는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 30주년 기념 “사포의 겨울 숲”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극장은 만원이었다. 박진경 사포대표를 위시해서 원광대 무용학과 김화숙 교수 제자들 - 송현주, 김유진, 조다수지, 김남선, 문지수, 김슬기, 김용희, 박주희, 이춘명, 강현진, 문희태, 박은주 등과 객원 출연한 이재현 등의 무대는 아름답고, 자연스럽고, 고귀한 무용동작 때문에 관객들의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막을 내렸다. 놀랍고 씁쓸한 일은 프로그램에서 전주시장이 “전주시는 문화관광체육부가 발표한 지역문화지수 순위에서 당당히 1위의 영광을 차지했다”고 자랑했음에도 사포의 기념공연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아이러니였다. 전라북도 문화에서 현대무용은 아직도 고투(苦鬪)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 공연을 위한 재원은 단체 예산, 김화숙 총연출의 개인 출연(出捐), 안무자 4인 박진경, 송현주, 김유진, 조다수지의 찬조, 졸업생들을 포함해서 90여명의 후원자들과 16개의 기관단체의 성원에 의해 확보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30년 공적에 대한 순수 열정이 느껴지고, 우렁찬 찬가(讚歌)가 들리는 듯하다.

“사포의 겨울 숲”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네 개의 이미지로 구성된 작품이었다. 프롤로그는 영국의 포크송이 근엄하게 울리는 가운데 시작되어 4분 14초 계속되었다. 첫 장면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압권(壓卷)이었다. 안개 낀 겨울 숲을 배경으로 무대 중앙에 서서 뒤로 긴 장막을 늘어뜨리고 서 있는 여인의 침묵과 정지된 자태(姿態)는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도달한 초탈(超脫)의 경지였다. 관객은 순식간에 자연의 신비로움에 빠져들면서 그 여인과 함께 겨울 숲으로 끌려간다. 잠든 숲은 수많은 싹을 품고 있다. 나무는 쉬지 않고 백년, 천년을 간다. 나무는 비바람과 재해(災害)를 겪으며 낙엽을 뿌리고 쇠퇴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강하다. 겨울 숲은 부활의 봄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1에서 송현주와 여자군무는 8분 56초 동안 바흐의 푸가(Fuga) 속에서 사랑과 죽음을 음미(吟味)하고 있다. 이미지 2에서는 조 다수지와 3인의 무용수들이 마노스 하치티키스의 음악에 따라 젊은 우체부의 죽음을 춤으로 전하고 있다. 이어서 김유진과 또 한 명의 무용수는 존 유리의 크로노스연주에 따라 내적 불안과 긴장, 갈등을 보여주는 12분 59초의 단순하고 강렬한 무용을 펼친다. 이미지 3은 이춘명의 남자 솔로가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에 따라 고독의 춤을 시작하고, 박진경이 비발디 음악에 따라 겨울 숲의 ‘숨겨진 내면의 진실’을 유연한 춤으로 전달하고 있다. 바흐의 푸가(Fuga)로 송현주의 무상(無常)의 춤이 시작되면, 그 뒤로 재현, 진경으로 이어지는 박진감 넘친 춤이 계속되어 전체 16분 47초의 꿈같은 시간이 마무리된다. 이미지 4는 첼로 협주곡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비발디 음악에 따라 박진경과 6인, 7인, 8인의 군무가 화려하고 정감 넘치는 무대를 수(繡)놓는다. 순간, 잠자는 겨울 숲은 꿈틀대고, 희망과 환희에 넘치는 10분 47초의 춤이 전개된다. 인간의 무한한 생명력을 약동시키는 ‘사포’의 춤에서 “무용가의 몸에서 관객은 ‘우리 자신’을 보고 싶고, 인간의 기적을 보고 싶어 한다”는 마사 그래이엄의 미학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에필로그는 비발디 음악이 흐르는 봄이요, 부활의 예고였다. 53분 46초 동안 빈틈없이 짜여진 ‘사포’ 공연은 자못 특이했다. 김화숙이 그 동안 보여줬던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분노와 격정 보다는 시련과 고난을 넘어 자연의 순리에 귀의(歸依)하며 용서와 화해를 기원하는 한(恨)의 정화(淨化)가 넘치는 무대였다. 나는 육완순 회장에게 김화숙 무용의 소감을 물었다. “19세 때 내 앞에 나타났어요......김화숙 생각하면 눈물이 앞섭니다.” 그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김화숙도 무용은 눈물의 세월이었다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울다가 지쳐서 5년간 다 버리고 결혼 생활하다가 다시 무용으로 돌아왔다고 실토했다.

우리 일행은 전주에서 일박한 다음, 16일 하동으로 이근수 교수의 차 밭으로 갔다. 지리산 산기슭에 자리 잡은 차 밭은 쏟아지는 빗줄기로 안개가 자욱한 선경(仙境)이었다. 장작으로 군불을 땐 온돌에서 차를 마시고 환담을 나눴다. 그 자리에는 대본을 쓰면서 김화숙 무용에 오랫동안 참여한 평론가 한혜리 교수가 있어서 반가웠다. 남원으로 와서, 기차로 상경한 다음, 나는 김화숙 책 “춤이 있어 외롭지 않았네”를 시작으로 여타 그에 관련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오월의 눈물” 과 “편애의 땅” 영상물도 계속 보았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김화숙은 40여 년 동안 90여 편의 작품을 안무하면서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역사성과 사회성이 강한 작품으로 명성을 떨쳤다. 극장 공간의 특성을 살린 무용 공연을 통해 안무의 영역을 확대하는 등 무용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그는 15개의 무용 관련 상을 수상했다. 무용관련 저서 22권, 논문 38편을 발표해서 무용교육에 헌신하는 연구 활동에도 큰 업적을 세웠다. 이 모든 일이 나에게는 충격이요 감동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잊고, 제외하고도 나는 그의 작품 광주삼부작 만으로서도, 그의 인생과 예술을 높이 평가하고 찬양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광주항쟁이 소재가 된 김화숙 무용3부작은 1994년 구상되어 1부 “그해 오월”은 1995년 광주문예대극장에서 초연되고, 1998년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재공연 되었다. 2부 “편애의 땅”은 1997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고, 3부 “그들의 결혼”은 1998년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 연작은 1999년 3부작으로 정리되어 「5월의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CD-Rom으로 출시되었다.

“그해 오월”은 1980년 5월 광주의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설정한 작품이다. 김화숙은 이 작품에서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했다. 객관적 시각에서 역사를 관찰하고, 그 의미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제자 한혜리 교수는 대본으로 협조했다. 음악은 상해음악원 작곡과 교수 윤명오에게 의뢰했다. 슬라이드 이상일, 영상 김형수, 조명 공준택, 무대감독 최우진, 의상 민순미였다. 재공연시 출연은 강형숙, 신용숙, 최두혁, 박준우, 박순옥, 김자영 외 25명이었다. 4 장면과 7개의 이미지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본 관점이 특이했다. 평론가 이상일은 이 작품에 대해서 “비극의 순화를 그린 춤의 총체극”(전남일보, 1995,6,2)이라고 격찬했다. 김재은 교수는 관극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 날의 처절했던 거리, 사람, 갈등, 아픔, 절망, 갈망 그리고 자유의 개념, 이 모두가 숨길 수 없는 노래로써 펼쳐져 호소하고 있었다.”(금호문화, 1995.7.)

“편애의 땅”은 비극의 “땅”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이미지 1. 생명의 땅이다. 모두 떠났지만, 아무도 떠날 수 없는 땅이다. 그날의 일은 모두들 가슴 속에 각인되어 있다. 모두들 비극이 없는 땅을 몽상한다. 어둠 속, 비통한 음악이 연주된다. 한줄기 빛이 내려 비춘다. 핏빛으로 물든 장막이 깔리고, 그 속에 사람들이 꿈틀댄다. 하나, 둘, 이들은 일어나서 장막 위에 쓸어졌다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몸부림친다. 격한 현악기의 마찰음은 이들의 동작을 심화시킨다. 15명가량의 남녀 군무가 시작된다. 두 줄로 서서 안고, 상반신을 연속적으로 앞으로 젖히고 일으키는 동작을 계속한다. 누워서 몸을 흔들고, 굴리고, 둘이서 마주보며 서서히 일어난다. 군무와 3인무는 수직으로 뛰고, 횡적으로 연결되고, 원으로 돌고, 돈다. 동작과 정지의 반복은 긴박감과 공포감을 조장하고, 무대에 긴장감을 감돌게 한다. 군무와 2인무, 3인무는 어머니 땅에서 살아가는 기쁨으로 넘치다가 순식간에 좌절과 절망의 순간으로 바뀌면서 계속되는 파란이 예상된다. 푸른 조명 속에서 무용은 비통한 꿈의 장면으로 변했다.
이미지 2. 불멸의 땅이다. 그 때 그 광경은 악몽이 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고통은 게속된다. 그러나 어머니 땅 사랑은 남아있는데, 땅은 슬픔을 노래한다. 마음은 정처 없이 유랑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겨레는 침묵하지만, 어머니 땅은 생명의 노래를 구가(謳歌)한다. 8명의 여자 무용수가 등장한다. 의상이 바뀌었다. 반마지가 긴 치마로 바뀌는 여성스러움이 눈에 띈다. 손에 긴 살풀이춤 수건을 들고 있다. 이들 무용수들은 돌고 돌아서 원을 이루고 뒹굴면서, 일어나서 회전하고, 수건을 깃발처럼 흔들며 뛰고 하늘로 내던지면서 승천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소설가 으라지미르 나보코보는 “원(圓)은 정신화(精神化)되면 나선(螺線)이 된다. 원이 흐트러지면 나선이 되고, 이윽고 악순환에서 해방된다”고 말했다. 원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벗어나고, 등을 돌리고 있는 무용수들은 푸른 조명 아래 누워 두발을 들어 올리면서 가볍게 흔들고 영원한 어머니 땅을 몽상하는 안식과 행복을 맛본다.
이미지 3. 춤추는 편애의 땅이다. 외면의 땅이다. 이 장면은 클라이맥스로 고조된다. 어머니의 노래로도 다하지 못한 분노의 외침이 이 땅을 춤으로 덮었었다. 겨레는 방관하고, 세상은 무관심의 늪에 빠졌다. 증오심은 증폭되고, 혼란은 가중된다. 편애의 의상을 입고, 포옹의 축제를 연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평화는 아득하지만 편애의 포옹은 거듭되는 마음의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1인무가 시작된다. 붉은 치마를 걸친 무용수가 홀로 앉아서 몸을 비틀고, 돌리고 있다. 그의 몸은 고통, 비애, 분노로 달구어지고, 격앙된 몸은 광적인 회전 동작을 계속하면서 쓰러진다. 그는 일어나서 격정적인 춤을 연발한다. 종소리 같은, 징소리 같은 신비스런 소리에 이끌려 가는데, 갑자기 진혼(鎭魂)의 노래가 어두운 공간으로 퍼져나간다. 그는 누웠다 몸을 일으키고, 한 줄기 빛을 향해 긴 치마를 끌고 간다. 긴 머리칼, 검은 머리칼을 여신인양 뒤로 늘어뜨리고 서 있다가 격정의 춤, 공포의 춤, 억압의 춤을 연발하면서 의상을 벗고 가슴팍에 움켜쥐고 진혼의 노래를 따라 서서히 움직이다 사라진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렬하게 관객을 휘어잡고 도취시키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오랫동안 뇌리에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았다.
편애의 땅에 서 있다(이미지 4). 기다림의 땅이다(이미지 5). 남녀 세 쌍이 등장해서 화합과 사랑의 2인무를 펼친다. 현악기의 멜로디는 이들 쌍쌍의 만남을 축복하고 있다. 하늘로 상승하는 기쁨 속에서 이들 젊은이들은 서로 얼싸안고 돌고 돌며, 뛰고 달리는 활기와 용기를 자랑하고 있다. 갑자기 들리는 솔베이지의 구슬픈 노래 때문에 군무는 정지되고, 홀리존트 중앙에서 상복을 걸친 여인이 꽃다발 들고 구슬픈 표정으로 등장한다. 군무를 추던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흩어져서 자리에 앉아 묵묵히 그 여인울 바라보고 있다. 무대 앞 정면에서 여자 무용수 한 사람이 비통한 몸짓으로 그 여인을 마주보고 서 있다. 여인은 들고 있는 꽃다발을 한 줌씩 집어 들고 땅에 뿌리면서 서서히 앞으로 걸어 오고 있다. 나는 이 작품에서 가장 숨막히는 비통한 장면이 이 여인을 상봉하는 순간이다. 그 여인의 얼굴은 만감이 교차하는 슬픔이다. 여인은 5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여인은 손에 든 꽃을 다 뿌리고 탈진된 몸으로 간신히 앞으로 오고 있다. 그 순간 무대는 어두워지면서 막이 내린다.

에르세이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는 1933년 폴란드 제시에프에서 태어났다. 1959년 폴란드 도시 오포레에서 연극실험실을 설립하고, 독창적인 연기훈련을 받은 배우들과 함께 1967년 파리세계연극제에서 “불굴의 왕자”를 무대에 올려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그는 무대상의 모든 심리적인 동작은 생물적이며 신비로운 근원의 힘과 연결되어있다고 믿었다. 그는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할 당시 여섯 살이었는데, 그 때 체험했던 유태인 600만 학살 현장을 목격한 것이 연극의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평화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의 연극은 평화를 위한 기도요, 그의 극장은 평화를 기원하는 신전이었다. 그의 연극에는 비극적 고통, 인간의 고뇌, 탄식, 발작, 매질, 경련, 죽음이 가득하다. 그의 연극 배경은 아우슈비츠 유태인 집단수용소이며, 화장터이며, 작중 인물은 학대와 고문을 받고 총살당하는 수인(囚人)들이다. 인간의 잔혹성이 극도에 도달한 극한상황이 항상 그의 무대가 되었다. 나치의 잔인성만이 아니라 폴란드의 비참한 역사도 그의 연극의 주제가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작품의 창작은 자유에 대한 인간의 끈질긴 신뢰감의 회복이며, 비인도적 잔인성에 대한 항거이며, 사랑의 행동을 갈망하는 구도(求道)의 행각(行脚)이었다. 집단적인 무의식을 노출시키는 방법의 일환으로서 그는 민족적이며 종교적이며, 전통적인 고전 작품을 활용하는 길을 모색했다. 그 결과, 그는 스페인 작가 칼테론의 “불굴의 왕자”를 발견하고 폴란드 작가 슬로바키에게 각색을 위촉했다.
“불굴의 왕자”는 순교자의 고난을 다룬 순교자극이다. 그의 관심은 순교의 찬양이 아니라 원작 3막 2장 왕자의 고문장면이었다. 원작의 3막 2장은 붉은 장막을 깔고 무대 사방에 벽을 세우고, 관객은 투우장의 관람객처럼, 법정의 내빈처럼, 의사의 수술대를 지켜보는 의과대학생처럼 무대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도록 했다. 무대와 관객의 배치는 원형극장과 수술교실의 중간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다보는 관경은 흡사 고대 로마 투기장의 잔혹한 경기를 보는 것과 흡사했다. 결국 그 자리는 인간 수난에 대한 증인석이 되었다. 그의 무대는 고문 받는 폴란드의 상징이 되었다. 객석에는 국가 수난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증인들이 앉도록 했다. 그로토프스키의 철학적 미학적 무대 탐구는 이후 서구의 모든 전위연극에 영향을 주어 새로운 연극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특히 육체를 통한 고난(苦難)의 연기술은 그가 이룩한 놀라운 성과였다.

김화숙 무용의 실험적 무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편애의 땅” 무대는 그로토프스키가 연극에서 시도한 일을 무용에서 한 결과가 되었다. 김화숙은 독창적이었다. “불굴의 왕자”도 그로토프스키도 모르고 있었지만, 무대 바닥에 붉은 장막을 깔고, 무대 사방에 벽을 세운 다음, 관객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연출을 시도했다. 이렇게 하게 된 것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객관적 관찰이 그의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김화숙은 그로토프스키나, 브레히트와 같은 길을 갔다. 고통, 절망, 억압, 학대, 공포의 무용적 표현은 그로토프스키의 기법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다만, 그로토프스키는 남성다운 사나움과 극도의 무자비성을 시원스레 발휘하고 있지만, 김화숙의 경우는 여성적인 온화함과, 완곡함, 그리고 추상적 표현 속에 숨어있다. 그것은 무용적 특성이기도 하다.
김화숙은 이화여자대학에서 육완순 교수의 지도를 받고 성장했다. 육완순 교수는 마사 그레이엄 유파에 속한다. 그 미학적 혈통은 김화숙에게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 영향이 그의 무대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상당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더욱이나, 미국 혈맥이 김화숙한테 흘러갔을 때 그 속에 빠졌다가 한국적 무용과 어떻게 접목이 되었는지, 그리고, 다시 역사적이며 사회적 공연과 어떻게 융화되었는지, 다시, 그것은 숲과 자연으로 발길을 옮기는 그의 근황과는 어떻게 접점을 찾고 있는지, 미학적인 측면에서의 학술적인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화숙은 무용 연출론에 있어서 국제무대에 한 발작 크게 내디딘 상황에 있다. 그 것을 깨닫게 해주고, 일러주는 것이 평론가와 학자들이 해야 되는 일이요 임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