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좌담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아낸 30주년 기념신작 “겨울숲”
정기헌 _ 오늘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30주년을 축하하면서, 무용단이 활동해온 그간의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현재 무용, 연극 등 예술단체의 운영이 쉽지 않은 현실에 무용단이 무엇을 추구하면서 가야되는지도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현대무용단사포 김화숙 예술감독과 박진경 대표, 그리고 송현주 부대표가 함께 하셨습니다.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 3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시느라 그동안 무척 바쁘셨을 텐데요. 이번 공연은 감회가 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김화숙 _ 무엇보다 전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열악한 전북 지역에서 30년을 버텨왔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동안 10주년, 20주년, 25주년을 지내면서 어떻게 하면 이 단체를 지속 시킬 수 있을지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10주년 때는 20년 할 수 있을까, 20주년 때는 30주년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지내왔어요. 어쨌든 30주년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정기헌 _ 현재 회장을 맡고 계신 박진경 대표도 남다른 감회가 있으실 텐데요. 한 말씀 해주시죠.
박진경 _ 저는 대학 시절에는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 준단원으로 활동하면서, 현대춤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고, 대학 졸업함과 동시에 사포 정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춤 속으로 더욱 빠져 들어갔습니다. 무용수로서 정점에 오르려는 순간 춤을 포기해야만했던 날들 그 열정의 무대를 기억 저편에 간직한 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며, 사포 활동을 흠모하듯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이 제게는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사포에 재입단 했을 때의 벅찬 감동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 삶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오랜 기다림 끝에 가슴속 깊게 감추어 두었던 열정을 무대에서 한껏 드러낼 수 있어서 감동스러웠습니다.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초창기 공연부터 쭉 봐왔는데, 지금은 제가 대표가 되어 30주년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제에게 참 영광이고 감동 그 자체입니다. 어느 단체든 어려움이 없는 단체는 없겠지만 솔직히 그동안 어려운 점이 많아서 30주년 기념 공연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연을 마치고 나니 참 뜻 깊은 공연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기헌 _ 제일 바쁘실 때 대표가 되셨네요?(웃음)
박진경 _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제가 대표가 되었지만 사포에 대한 애틋함과 소중함을 얻은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송현주 _ 저도 대학시절 준 단원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21년을 무용단과 함께 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김포시 그리고 지금은 대전에서 살고 있는데, 공연이 있을 때마다 계속 익산과 전주를 오가며 공연에 참여했어요. 가족들과 단원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많이 어려웠을 거예요. 그동안 힘들었던 일도 참 많았지만 김화숙 예술감독님과 박진경 대표 그리고 지금의 단원들과 30주년을 함께 맞이하게 되어 영광스럽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정기헌 _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에 현재 함께 하고 있는 단체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소개해주시죠.
박진경 _ 지금 우리 무용단에 활동을 하고 있는 단원이 전부 12명밖에 안 돼요. 그중 핵심 멤버 9명이 주축으로 활동을 하고, 큰 공연이 있을 때는 나머지 단원들이 자신들의 여건에 맞게 유동적으로 참여합니다. 이번 30주년 공연에도 거리상이나 생활상의 문제로 참여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시 순수한 춤으로 돌아가 움직임 자체로 표현해야
정기헌 _ 지난 10월15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사포의 겨울숲』이라는 타이틀로 신작 공연을 발표하셨습니다. 저는 작품을 보지 못하고 뉴스기사와 보도자료 만을 봐서 아쉬웠는데요. 작품의 내용과 작품 안에 무엇을 담고 싶으셨는지 소개해주시죠.
김화숙 _ 이번 작품은 제가 연출을 하고 박진경, 송현주, 김유진, 조다수지 네 단원이 안무를 맡았습니다. 1991년부터 2009년까지는 제가 주로 대작들을 안무 했었는데, 이후에는 제가 연출과 대본을 맡고 그리고 성장한 단원들이 안무를 담당하고 있지요.
요즈음은 무용 테크닉이 너무나 현란해지고 새로운 매커니즘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제 조금은 천천히 가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근의 무용 공연을 보면, 무용 외적인 것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시 순수한 춤으로, 움직임 자체로 표현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술은 깊이 들어가다 보면 결국은 인간과 자연으로 귀결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색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삶과 자연의 생성과 소멸을 작품 주제로 이끌어나갔죠. 관객들이 작품을 보면서 어느 한 순간만이라도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 싶었어요. 또한 관객의 마음속에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면 좋겠다는 의도를 작품 속에 넣었지요.
하지만 제가 의도한 대로 작품이 가시화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잖아요? 왜냐하면 무대장치나 영상은 연습실이 아니라 무대 리허설에야 볼 수 있으니까요. 과연 내가 원하는 대로 무대가 만들어질지 무척 걱정했어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는 잠을 거의 못 잤어요. 다행스럽게도 무대 장치가 과하지 않으면서 작품을 잘 살릴 수 있게 나왔어요. 그리고 조명, 영상이 겨울 숲 작품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훨씬 좋았습니다.

관객의 마음속에 한 편의 수채화로 남기를 소망
정기헌 _ 이번 30주년 기념공연을 준비하신 이야기를 들으니 김화숙 선생님은 앞으로도 계속 창작 활동을 하실 거라 기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뭔가를 맺을 때,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응어리 같은 것들이 나오게 되는데, 그 귀결이 아마 인간과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몸을 쓰는 춤과 인간, 자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얘기잖아요. 평소에도 그런 주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셨나요?
김화숙 _ 그렇죠. 그렇지 않으면 작품이 나올 수 없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이번 작품을 보고 사포의 춤이 굉장히 깊어졌다는 표현을 하더군요. 이게 바로 사포의 30년 연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현주 _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는 지금까지 원광대 연습실을 사용했었는데요. 원광대 무용학과가 없어지고, 김화숙 교수님께서 정년을 하시고 나니 사포 연습실도 같이 없어졌어요. 학교 무용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니까 연습할 곳이 없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원광대 졸업생이 운영하는 무용학원이나 사포 단원의 학원, 아니면 다른 연습실을 빌려서 연습을 했지요. 그러다 보니 남원, 익산, 전주 이렇게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단원들이 모두 개인적인 일들을 하고 있어서 연습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녁 9시 이후에나 모여서 연습을 했지요. 그러다보니 연습실 사정과 일정잡기, 그리고 누적되는 피곤감 때문에 준비과정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김화숙 _ 사포 단원 모두가 개인 직업을 갖고 있어서 연습은 주말을 제외하고는, 밤 9시 이후 혹은 새벽에 만나서 연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포가 어언 30년이 지났고, 사실 사포의 작품은 이제 우리 단체의 것이 아니라 전라북도의 예술적 자산이며 동시에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경우는 서울무용센터도 생기고, 문래동 공장을 예술가들에게 사용하게 해주잖아요? 하지만 전라북도는 그런 지원이 너무나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제가 원광대에 있었으니 사포가 원광대 연습실을 사용했었는데, 정년퇴직을 하고 나니 연습실 사용이 곤란해진거죠. 그게 가장 아쉬워요. 전북지역에서 사포가 연습할 수 있는 공간만 무상 지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빈 공간도 많을텐데…. 30년을 지속적으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정기공연을 해왔고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고 있는데. 지금쯤은 전라북도에서 혹은 전주시에서 연습실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 정도는 마련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관계자들을 만나 제안을 해보려고 합니다.
정기헌 _ 지금 서울에 많은 건 아니지만, 예술극장에 상주 예술단체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전북이나 전주에는 상주단체가 없나요?
김화숙 _ 네. 이 지역에는 좋은 극장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비롯하여 지역마다 좋은 극장들이 있는데 아직 상주 단체를 두지 않고 있네요. 아마도 운영 자체가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원, 익산, 전주의 연습실을 오가는 절박함이 오히려 춤예술에의 애정을 끌어올려
정기헌 _ 제가 항상 무용가들을 만나면 얘기하는 게, ‘일사일예술단체’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인근에 ‘빙그레공장’이 있어요. 그런데 공장에 큰 트럭이 드나들면서 주민들에게 폐를 끼치니까 회사에서 주민들을 위한 지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장 안에는 엄청 큰 강당이 있구요. 그런데 그 큰 강당이 일주일 내내 비어있거나 일주일에 한 번 직원 조회할 때 쓰이는 거겠죠. 그래서 그때 제가 한 생각이 예술 단체에게 강당을 연습실로 빌려주고, 예술단체 단원들이 그 지역 주민들과 아이들, 회사직원에게 무용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런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김화숙 _ 전라북도도 빈 건물이나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많이 있을 거예요. 매일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잘 활용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문화예술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든 전주시를 이끌어가는 사람이든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예산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거든요. 마인드만 바꾸면 가능한 일인데 그게 좀 안 되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정기헌 _ 김화숙 선생님이 해내실 것 같습니다. 하나의 좋은 선례가 만들어지면 다른 단체로 긍정적인 파장이 일겠죠.
김화숙 _ 한번 시도해봐야겠어요. 이번에 단원들이 너무 고생했거든요.
박진경 _ 이번 작품을 하면서 연습 공간 때문에 힘들었고, 또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연습 하다보니 단원들이 많이 지쳤어요. 특히 올 여름에 무척 더웠잖아요? 그래서 단원들이 팔이나 다리, 허리가 아프거나 부상을 많이 당했어요. 연습을 진행하면서 과연 이번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 연습 과정이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힘든 과정을 같이 겪으면서 오히려 결속력은 더 생겼던 것 같아요.
김화숙 _ 그냥 단순히 팔이 아픈 게 아니라 팔이 아예 안 올라가고, 목이나 허리를 못 쓰는 정도였어요. 그만큼 연습량이 많기도 했지만…. 그래서 연습 기간 내내 잠자리에 누우면 누군가 부상이 심해져서 춤을 출 수 없다면, 난 관객들에게 무엇이라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만약의 경우에는 마이크를 잡고 관객들에게 눈을 감고 무용수가 춤을 춘다고 생각해 달라고 해야 할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웃음) 공연 전날까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가 공연 당일 무용수 전원이 극장에 나타나서야 안심을 한 거죠. 특히 단원들이 남원, 대전, 익산 등 먼 곳에서 다니다보니 교통사고에 대한 염려도 떠나지 않았죠. 공연 당일까지 별 생각을 다 했어요.
사실 단원이 많으면 예비 무용수들을 연습시켜서 만약에 경우 공연에 투입할 수 있는데, 이렇게 무용수 자체 숫자기 적다보니 불안감이 더했던 것 같습니다. 무용수 한 명은 공연 며칠 전에 목 수술을 했는데, 그 목을 붙들고 무대 연습을 했어요. 그러면서 ‘선생님, 공연하는 날에는 진통제를 먹고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공연 날 진통제를 먹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지원금 선정탈락의 석연치않은 이유
정기헌 _ 공연을 마치고 나니 좋은 소문도 들리고, 성황리에 잘 끝났을 것 같습니다.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가 익산, 전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활동하셨겠지만, 그래도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해왔는데 그동안 무용 관객의 폭은 어땠나요? 또 지자체나 미디어 등에서 지원을 좀 해주는 분위기가 있었는지요? 아니면 지원제도가 환경에 따라 계속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박진경 _ 우리 무용단은 지역에서 30년이나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단체인데, 올해 지원금 선정에서 떨어졌어요. 30주년 기념 신작임에도 말이지요! 선정이 안 될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그랬습니다. 공식적으로 문의해도 심사 기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 없습니다. 아직도 많이 섭섭해요. 도대체 탈락의 근거가 뭘까 싶어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무용수 5명을 지원해주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포를 사랑하는 오래된 지인들과 원광대 선,후배들이 조금씩 후원을 해주어 이번 신작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김화숙 _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사포의 힘든 상황을 아시는 지인이나 선후배들이 후원금을 보내주셨다는 사실이에요. 후원자 수가 거의 90여 명에 달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사포의 고정 관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포 10주년 공연 이후부터는 사포의 고정 팬이 생겼구나! 라고 느껴졌어요. 저는 늘 객석에 앉아 연출자로서 인사를 하는데, 덕분에 관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지요. “사포 공연은 볼 때마다 늘 감동적이야”라던가 부산에서부터 3년 째 와서 사포 공연을 본다던가 등 사포 공연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포 공연에 학생 단체 동원을 시키는 일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일반 관객들이 객석을 꽉 메우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지요. 이는 다 30년 세월의 힘이겠지요?

『그해 오월』을 시작으로 『편애의 땅』, 『그들의 결혼』에 이르는 광주3부작의 완성
정기헌 _ 예술단체가 가져야 할 기본이기도 하면서 참 어려운 일인데 묵묵하게 해내고 계신 듯 합니다. 김화숙 선생 예전 작품에 광주민중항쟁을 주제로 연작을 발표하셨고, 동학을 주제로 한 작품도 발표하셨습니다. 1995년에 『그해 오월』, 1997년에 『편애의 땅』, 1998년에 『그들의 결혼』을 연작처럼 발표하셨죠. 그 작품을 구상하신 계기와 어떻게 3편으로 나눠서 하게 되었나 궁금합니다.
김화숙 _ 1980년 오월 광주를 무용작품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머릿속에 있었지요. 광주에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광주가 고향인 셈이지요. 사실은 1980년 오월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때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접했지요. 광주항쟁 이후 일반인 출입이 가능 한 첫 날, 광주에 들어갔었습니다. 죽음의 도시같은 회색빛 시가지! 사람들의 눈빛은 모두 허공에 떠 있고…. 그날 본 광주 시가지의 모습과 사람들의 눈빛은 제 마음에 각인된 상처처럼 마음속에 늘 남아 있었지요.
제가 「춤」지에 연속수상 글을 연재했을 때, 광주를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선생님! 겁도 없이 광주 이야기를 쓰셨네요. 「춤」 지라서 안 잡혀 갔지 아니면 잡혀갔을 거예요’라고 하더군요. 정말 그때는 그 정도로 광주 이야기를 꺼내는 게 금기시 되었지요. 그러나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제자인 한혜리 교수에게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에서 무용 대본을 써달라고 제안을 했었지요. 한혜리 교수는 1980년대에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대본 쓰기에 더욱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은 더욱 깊어져서 작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93년 혹은 1994년으로 기억하는데 서울에서 무대지원금을 신청했는데 떨어졌어요(아마도 주제 때문인 듯). 이 후 우연한 기회에 광주 금호문화재단 좌담에 참여하게 되었고, 광주를 무용작품 해보고 싶은데 지원금이 없다는 발언을 했는데 연락이 왔더군요. 어느 정도면 작품을 할 수 있겠느냐고! 그리고 3천만 원을 후원해주셨습니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인데 3천만 원이면 대단한 금액이지요. 후원이 결정되고 그때 문화재단 이사장님의 첫 마디가 잊혀지지 않아요.‘그 징한 5월은 뭐 할라고 춤으로 할라 그라요. 그래도 그 기간 동안은 참 좋은 세상이었어!’ 이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제 안무에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후 사포가 「상해예술제」에 참가(1994년 5월) 했을 때 상해음악원 윤명오 교수를 소개 받았고, 바로 『그해 오월』 작곡을 의뢰했었지요. 80분짜리 대작이라서 시간도 많이 필요했지만, 제 조건은 상해오케스트라 최고의 연주자들로 녹음까지 해서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심포니 한 곡이 30분 정도인데, 120분을 의뢰했으니 악보가 방 한가득 쌓였다고 하더군요. 상해음악원에서는 윤 교수에게 작곡에 몰두하라고 수업까지 빼주었답니다. 대단하지요?
사실 처음에는 3부작으로 계획하지 않았었습니다. 『그해 오월』공연을 끝내고 나니 그래도 못 다 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삼부작을 계획했지요. 그래서 작품 구상부터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삼부작을 완성하게 되었지요. 그때야 갈증이 풀렸어요. 그래도 못내 아쉬워 1999년에는 이 삼부작을 엮은 무용 CD-Rom 『오월의 눈물』을 출시했습니다.
정기헌 _ 3부인 『그들의 결혼』에서는 응어리들이 좀 더 씻겨졌겠군요.
김화숙 _ 마지막 『그들의 결혼』에서는 화합의 의미를 담았죠. 1부 『그해 오월』은 1995년 광주문예회관에서 초연되고, 1998년 1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재공연되었습니다. 아마도 현대무용가 개인에게 오페라하우스를 빌려준 건 처음이었을 거예요.
정기헌 _ 3부작을 대극장, 중극장, 소극장으로 이어가면서 작품을 올린 것도 특이합니다.
김화숙 _ 2부 『편애의 땅』 작품 평이 좋았기 때문에, 토월극장도, 오페라하우스도 대관이 쉬웠던 것 같아요. 덕분에 이 3부작은 대극장, 중극장, 소극장을 고루 사용할 수 있었지요.
이 세 작품은 내용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안무 방법 측면에서도 극장의 크기와 조건에 따라 안무 방법을 달리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작품이죠.
정기헌 _ 지금이야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1995년에 춤으로 광주를 담기가 쉬운 게 아니었을 거예요. 소설가나 시인이라면 글로 한 줄 쓰면 될 텐데, 무용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 위해 많은 사람을 설득하면서 해야 했던 과정이 눈에 선합니다.
김화숙 _ 송현주 부대표가 대학 4년 동안 이 3부작 모두에 출연했고요. 박진경 대표는 1부와 3부에 출연했습니다. 2부 『편애의 땅』은 출산 때문에 출연을 못했지요.
송현주 _ 학교 다닐 당시에는 철도 없고 놀고 싶은 생각도 많았는데, 광주민중항쟁 무용 3부작을 다 출연하느라고 많이 바빴어요.(웃음) 1학년 때부터 대학 4년 동안 광주에서 1부 『그해 오월』을 시작으로 2부 『편애의 땅』, 3부 『그들의 결혼』, 다시 1부 『그해 오월』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토월극장,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했어요.
5월 대학가는 축제기간이잖아요? 모교인 원광대학교는 벚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우리가 4층 연습실에서 바(bar) 연습을 하며 밖을 바라보면, 다른 학생들은 다들 축제에 참여해 신나게 즐기는 거예요. 특히 대학 1학년 때는 첫 축제에 대한 기대에 차 있는데 참여하지 못하고 연습실에 있는 제 모습이 어린 마음에 어찌나 슬프던지…, 물론 연습하는 것도 좋았지만요.(웃음)
지금도 그러시지만 그 당시의 교수님의 열정이 대단하셔서 정말 저희를 엄격하게 훈련시키셨어요. 쉬는 날 하루 없이 평일 밤늦게까지 그리고 주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말 강행군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시절에 광주3부작 공연 덕분에 춤은 정말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는 광주민중항쟁에 대해서 잘 몰랐던 세대인데, 공연을 통해 한국현대사의 비극인 1980년 광주 오월에 대해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 당시 그 공연에 참여했다는 것에 항상 자부심을 갖고 있답니다.
정기헌 _ 그렇죠. 이런 작품을 지금 다시 무대에 올라야 하는데 그것을 준비하는 여건을 만들기가 어려운 시대가 됐죠.
김화숙 _ 많은 분들이 그 작품을 다시 무대 올렸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예산이 너무 많이 필요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동학이야기 『다시 핀 그대에게』로 전북지역 춤 나눔을 실천중인 무용단
정기헌 _ 당시에 작곡을 의뢰해서 음악을 만들어 놓으신 건 정말 잘 한 것 같습니다. 작품을 위한 곡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 있다고 생각되네요. 제가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자료를 보니까, 1995년에 『그해 오월』을 하셨는데, 1996년에 동학 이야기 『다시 핀 그대에게』를 하셨어요. 그 와중에 동학관련 작품을 발표하시다니 김화숙 선생님 정말 대단한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김화숙 _ 사실은 제가 전북지역에서‘선생님은 여기 계시면서 광주 얘기만 하시느냐, 동학 얘기 좀 해 달라’는 얘기를 계속 들었는데, 작품을 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의무적으로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광주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동학은 아직은 떠오르는 게 없다, 떠오를 때 하겠다’고 했어요. 어느 날 모 신문사 문화부장으로부터‘선생님, 지금 일본 북해도에 있는 대학에서 동학농민군 유해가 발굴이 됐답니다. MBC 방송국에서 발굴 현장에서 그 유해를 모시고 와서 서울과 전주에서 행사를 합니다. 무대에 유해를 모셔놓고 행사를 하는데, 선생님께서 작품을 좀 만들어주셔야겠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전화로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머릿속에 첫 장면이 떠오르는 거예요. 동학농민군 유골이 백 년 이상을 타국에서 떠돌다가 이제 조국 땅으로 오게 되는 거잖아요. 그 생각을 하니까 첫 장면부터 작품이 술술…. 그래서‘걱정 마라. 이 작품 내가 하겠다’고 장담을 했어요.
작품 『그해 오월』은 워낙 오랜 시간동안 생각했기 때문에 80분짜리 안무를 단숨에 해 치웠고, 동학이 주제가 된 『다시 핀 그대에게』도 전화 받으면서 영감이 떠올라 정말 짧은 시간에 안무를 끝냈어요. 『다시 핀 그대에게』는 동학 관련 행사 때마다 공연을 했습니다. 사포가 전북지역에 춤으로 나눔을 실천한 셈이지요. 무상으로 언제든지 요청하면 공연을 해주었으니까요.
정기헌 _ 동학혁명도 정말 우리 역사에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동학과 관련된 예술행사나 기념사업도 계속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춤을 통해서 개인적 감성과 정서의 표현도 충분히 하지만, 그 시대를 대변해서 대신 노래하고, 같이 얘기해주는 역할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원광대 무용과는 언제 폐지가 된 건가요? 몇 년 됐죠?
김화숙 _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아마도 2012년에 학과 폐지 공고가 났을 거예요. 지금은 무용과가 완전히 없어진 거죠. 전라북도에서는 원광대학교 무용과가 처음 생겼어요. 우리 무용학과 졸업생 중에 중등교사만 30여 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대학 강사 및 초,중등 예술(무용)강사로 활동한 졸업생들의 수도 아주 많습니다. 원광대 무용학과 교수 및 졸업생들은 전북 무용계를 주도해 나갈정도로 활동을 하며 뿌리를 단단히 내렸지요.
사실 원광대 무용학과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너무나도 아깝습니다. 학부, 대학원(박사과정까지), 교육대학원, 특수대학원에 무용연극치료학과까지! 그리고 무용교사자격증까지 나오는데. 이렇게 다 갖추고 있는 대학 무용과는 원광대학교 밖에 없었지요. 적어도 지역에 미치는 영향, 무용학과의 역사성 등은 고려되었어야 했는데, 대학이 너무 경제논리로만 치우쳐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사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무용학과 단독 졸업생 1,000명이 강사로 활동중
정기헌 _ 그럼 지금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에 새로운 신입단원들이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군요.
박진경 _ 지금 새로 들어오는 단원은 없는 상황이에요. 저희가 공연을 해야 한다면 객원 무용수를 불러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어요. 신입단원을 선발하지 못하고 3년이 지나갔네요. 그동안 원광대 졸업생들이 의무적으로 입단한 것이 아니라, 그냥 쭉 사포 공연을 봐왔고 대학 4년 동안 준 단원으로 공연에 참여하기 때문에‘졸업하면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에 들어가야겠다, 예술활동을 계속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되는 것이지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계기가 없어진 거죠.
김화숙 _ 이제부터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서 원광대 출신이 아니더라도 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오픈할 생각입니다.
정기헌 _ 그리고 앞으로 활동하실 거점 지역은 어디인가요? 아무래도 전북에서는 전주가 예술활동의 거점이 되겠죠.
박진경 _ 네 전주가 중심이 될 것 같습니다. 단원들이 전주, 남원, 익산 등 흩어져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전주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정기헌 _ 이전 정부에서 2011년 이었던 것 같은데 대학평가 발표를 한 걸 보니까 4대 보험을 받는 취업자를 위주로 평가했어요. 그러니까 예술전공 학생들의 취업지수가 당연히 낮을 수 밖에 없었지요. 추계예술대 같은 경우는 당연히 낮은 점수로 나왔을 것이고. 학과별 특성이 있는데 말도 부적절한 기준들이 적용된 거죠.
지금까지 ‘무용교육 혁신위원회’에서 김화숙 선생님이 많은 활동을 하셨고, 무용교사자격증제도도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는 예술 교과에 무용을 포함하는 일에 매진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선생님 말씀 들어보니까, 원광대 무용과 출신의 졸업생이 30명 이상 현직 교사를 하고 있다는 게 정말 놀랍고,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김화숙 _ 왜냐하면 원광대학교 무용과는 처음에 사범대 무용교육과로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초창기 졸업생들은 100% 다 교사자격증이 나왔어요. 그런데 교원대학이 생기면서 일반 대학에서 교사자격증 숫자를 줄이기 시작했고, 표기 과목이 아닌 학과를 없애버렸어요. 그러니까 청주대와 서원대, 원광대에 세 대학에 무용교육과가 있었는데, 교육부 공문 하나로 무용교육과는 사라져버린 셈이지요. 다행스럽게도 원광대학은 인문대학으로 옮기는 쪽으로 결정이 되어 교사자격증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정기헌 _ 교육대, 사범대 안에 무용교육과가 있으면 4년 동안 공부하는 목적이 분명하잖아요. 예술적인 교육을 받은 교사가 배출되는 것이죠.
김화숙 _ 지금은 9개 대학 10% 밖에 교사자격증이 안 나옵니다. 1984년 이후에는 교육부에서 아예 교사자격증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1984년 이전에 생긴 무용과만 교사자격증이 나오고 있습니다. 11개 대학이었는데, 원광대, 우석대 학부에 무용과가 없어지면서 줄어든 거죠. 그러니까 현재 무용과를 졸업하고 정식 교사로 취업할 수 있는 사람은 1년에 평균 30여 명도 밖에 안 나오는 거죠. 그래서 대안으로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이 만들어진 거죠. 그러나 이건 정식 교사가 아니라 강사 자격증인 셈이에요. 우리 사포 단원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거의 예술(무용)강사를 하기 때문에 놀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서울은 무용 인구는 많고 무용 수업을 원하는 학교가 적어서 경쟁이 세지만, 지방은 무용과 졸업생들이 놀고 있는 경우는 대단히 드뭅니다. 전국에서 무용학과 단독 졸업생 1,000명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니까 사실 어마어마한 거죠.
정기헌 _ 지금 일반 무용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4년간 예술가가 되는 수업을 받고 있죠. 현재 40년이 넘는 무용과의 역사를 보면 10명 중 1~2명만 그 길을 걷고 있는데 이 교육 목표가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같은 예술학교에 비교하면 무용 교육의 양이 훨씬 적고 반면 교양수업을 두루두루 꽤 많이 듣고 있는데 이 상황이 애매한 것이지요. 가끔 대학교수 임용을 준비하는 무용가들과 토론을 하는데 대체 대학에서 뭘 어떻게 가르치고 이끌고 싶어서 지원을 하는가 물으면 똑 부러지는 대안은 없습니다.

대학은 무용교육자, 이론가 등 무용 주변 관련 전공자를 길러낼 교육과정을 갖추고 교수들은 교육에 전념해야
김화숙 _ 과거에는 대학 무용과가 우리나라 무용예술을 주도했어요.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그 동안 무용 전문학교인 한예종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정말 직업 무용가가 될 사람은 처음부터 한예종으로 가야지요. 그리고 일반 대학에서는 무용교육자, 이론가 등 무용 주변 관련 전공자를 길러낼 교육과정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제는 대학교수들이 교육에 전념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무용지도자를 배출해야 하는 것이 대학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사회와 주변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대학 무용과도 이에 따라 변화해야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정기헌 _ 선생님께서 평생 교직에 계셨고, 학생들 지도하면서 작품 활동도 하셨는데요. 제가 궁금한 것은, 일반 대학의 무용과가 4년간의 교육 과정으로 뭘 지향해야 될까요?
김화숙 _ 제가“고등무용교육의 개혁 방안”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 1997년입니다. 20년 전부터 대학 무용학과는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지요. 대학별 특성화가 이루어져야만하고, 그에 따른 교육목표가 세워져야 하고 교육과정도 개편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토대로 이를 실천할 대학 교수의 의식이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 했지요. 제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초대 무용교육위원장을 했는데, 일반대학 무용과 졸업생들 모두 재교육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어떤 목표를 세워 어떤 내용을 교육해야 하는지 거의 모르고 있었고, 학교무용교육 이외에 사회무용교육도 어떻게 해야 할지 교육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솔직하게 대학 4년 동안 어설픈 예술가 교육만 받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대학 무용과 교육과정이 증명해주고 있지요. 이제는 일반 대학 무용과에서는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무용지도자들을 배출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이론 중심의 대학인지, 실기 중심의 대학인지, 교육 중심의 대학인지, 혹은 커뮤니티댄스 전문가 중심인지…. 이렇게 대학의 특성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혁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 변화하는 시점에 대학 사회에서 무용과는 자연 도퇴되고 말 것입니다.
정기헌 _ 맞습니다. 말씀 하신대로 대학마다 특색이 있고, 방향성이 선명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대학 무용과별로 목표를 분명히, 대학의 특성화가 향후 성공의 관건
김화숙 _ 예를 들면 K대학 같은 경우에는 예전부터 한국무용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그러니까 한국전통무용, 신무용, 창작무용까지 한국 춤의 모든 것을 섭렵 할 수 있는 한국무용 전문가를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그리고 S대학의 경우, 발레의 전통을 살려 유아 발레, 어린이 발레, 청소년 발레, 주부를 위한 발레, 임산부 발레, 직장인 발레 등 발레 지도자를 전문적으로 배출할 수 있다면? 이론 중심의 대학에서는 무용사학자, 무용비평가, 무용 인류학자 등을 배출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갖추고 있다면… 졸업 후 직업 연계성도 좋아지고 무용계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는지! 또한 커뮤니티댄스 전문가 즉 DA(Dance Animatuer)를 배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된다면? 무용 장르는 보다 넓어지고 동시에 전문화,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기헌 _ 현대 사회는 일반 직장인, 학생, 주부 등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자신을 위해서 비용을 지불하고 뭔가를 직접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특히 몸을 움직이는 춤예술은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기가 가능하니까 무용의 사회교육은 정말 가능성이 있는 장르입니다.
김화숙 _ 앞으로 그 시장이 어마어마할 거예요.
정기헌 _ 맞습니다. 무용단 얘기로 다시 돌아올게요. 옛날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1971년에 김복희 선생과 같이 첫 번째 이름을 알리는 공연을 하셨지요. 이후 20년 정도 함께 활동을 하셨는데 1년에 한 번씩 함께 작업을 하셨나요?
김화숙 _ ‘김복희김화숙현대무용단’은 사실 대학 졸업하던 1971년에 첫 발표회를 했습니다. 대학 시절 워낙 음악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순전히 작품 만들고 싶은 욕심에 발표회를 했어요. 그리고 1970년 80년대를 거치며 20년 동안 무용단을 유지시켰지요. 그동안 공동 안무로 36편의 작품을 만들고, 파리, 암스테르담, LA, 동경, 멕시코 5개 지역 등의 해외공연과 「86 아시안 게임」 축하공연, 「88 서울 올림픽」 축전 참가 등 참으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100여 회의 공연을 치룬 것 같네요.
1981년 원광대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그리고 원광대학 졸업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1985년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를 창단 했지요. 1980년대는 주로 김복희김화숙현대무용단을 통해서 작품 발표를 했었고. 두 사람의 활동 20년을 마무리하고 그리고 1991년도부터는 사포 단원들을 데리고 집중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죠. 1991년도부터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본격적으로 서울에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을 알린 건 『편애의 땅』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예요.
한 5~6년 동안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는 어디 내놓아도 괜찮을 만큼 정말 많은 훈련을 시켰죠. 1995년도에는 광주에서 『편애의 땅』 공연을 하고, 서울에도 가서 공연을 했어요. 그때 자유소극장을 5일간 빌려서 무대를 준비했어요. 우리 졸업생들이 와서 여기가 서울인지, 부산인지, 광주인지 모르고 편하게 연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3일간 무대를 세팅하고 연습해서 이틀 공연을 한 거죠. 그 공연이 굉장히 성공적으로 서울에 사포를 알리는 계기가 된 거죠.
정기헌 _ ‘사포’의 뜻이 그리스 여신의 이름도 있고 ‘갈고 닦다’의 의미가 있는데요. 그 말씀이 뼈저리게 느껴지네요.
박진경 _ 고 김영태 선생께서‘사포’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30년이 된 지금도 사포라는 단체 이름이 대단히 세련되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단체명 중에 사포라는 이름이 ‘보석처럼 빛난다’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그리고 사포의 갈고 닦는다는 의미가 저절로 우리 안에 스며들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지금도 김영태 선생께 감사하는 마음이에요.

성실함으로 한 해 한 해 지금처럼 최선을 다하면 40주년, 50주년도 가능하지 않을까
정기헌 _ 30년의 시간이 한 예술가에게나 예술단체에 굉장히 긴 시간인데, 그 시간을 무용단이 지켜온 것이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이제 앞으로의 계획을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40년에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웃음) 무용단 계획이나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계시는 것도 말씀해주시죠.
박진경 _ 제 슬로건은 항상 ‘성실함’이에요. 그래서 저는 30년 뒤에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보다는 지금처럼 성실하게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그러면 40년은 30년보다 더 멋진 공연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번 『김화숙&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 30주년 공연』은 재정적 문제 때문에 저희가 계획했던 것보다 축소된 부분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30년에 못했던 것들을 40주년 공연 때는 하고 싶습니다. 저희 무용단이 그동안 해왔던 의상, 영상 같은 걸 전시하면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송현주 _ 지금 미리 40주년을 생각하는 건 너무 숨 가쁜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31주년, 32주년… 한 해 한 해 지금처럼 버텨나가다 보면 40주년, 50주년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화숙 _ 사실은 이번 30주년 행사를 위한 원대한 구상이 있었어요. 극장 로비에 그동안의 공연 포스터와 정성스럽게 보관해온 무용 의상을 전시할 생각이었지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쪽에서는 사포의 작품 『편애의 땅』을 감상하게 하고, 정해진 시간에 극장 안에 들어와서 신작을 감상(!), 또한 근사한 파티도 하고 싶었는데, 재정문제로 다 생략하고 꼭 필요한 것만 진행했습니다.
사실은 사포가 정말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비가 있었습니다. 2007년 신용숙 대표를 떠나보내고…. 잘 아시겠지만 신용숙 대표는 사포가 본인의 삶이었고, 본인의 삶 자체가 사포 그 자체였습니다. 사포 창단부터 세상 떠날 때까지 사포를 지켜온 유일한 단 한 명 신용숙! 제가 이번에 30주년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슴 깊게 감추어 둔 아픈 기억을 떠올려야만 했고, 동시에 제 눈빛만 봐도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큰 제자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사포를 지속시킬 수 있을지…. 그러나 놀라운 것은 단원들의 가슴 속에 신용숙은 살아 있었고, 또한 단원들의 춤 속에서 신용숙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조건이 열악한 전북지역에서 유일하게 나를 붙드는 건 언제나 제자들의 눈빛이었습니다. 사포를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떠오르는 건 역시 단원들의 눈빛이었지요. 제자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이들에게 내 모든 것을 내어 놓으리라 생각하며 견디었지요. 그리고 역사는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덧 성숙해진 제자들.
사포는 창단 이후 한 번도 정기공연을 거른 해가 없는데 유일하게 2007년은 비어 있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그 다음 해 단원들 스스로 2007년 몫까지 두 번의 정기공연을 치루면서 그 공백을 메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제가 포기할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2008년부터 꾸준히 매년 신작을 발표 해왔습니다. 2008년 『길을 가다』, 2009년 『지나가리라』, 『눈물어릴 나의 사랑』, 2010년 『우리는 사랑했을까…』, 2011년 『우리는 사랑했을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초청공연, 2012년 『사포, 말을 걸다 5부작』, 『검은 태양』, 2013년 『사포 말을 걸다-3』, 2014년 『시선이 머물다), 2015년 『사포, 말을 걸다 6-8』그리고 2016년 『사포의 겨울 숲』 까지!
사포 40년? 과연 해낼 수 있을지…. 그러나 누구보다도 성실한 박진경 대표와 송현주 부대표, 모든 것들을 정확하게 꼼꼼이 챙겨주는 강현진 사무국장, 든든하게 버티어주고 있는 김남선 상임단원, 그리고 사포 단원들이 춤의 참 맛을 알아가는 것 같아 희망이 보입니다.
정기헌 _ 오늘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더 깊게 뿌리 내리는 큰 나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