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살롱

10월 초, 오래간만에 기생충 이야기가 각종 신문을 장식했다. 국군수도병원을 내원한 병사의 눈에서 ‘동양안충(Thelazia callipaeda)이라는 기생충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동양안충은 눈에 기생하는 크기 1cm 가량의 작은 기생충으로, 심각한 안과 질환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이물감이나 충혈 등을 일으킨다. 치료는 약물을 투여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핀셋으로 간단히 잡아내는 방법을 쓴다. 주로 파리 종류의 곤충이 감염된 개, 소, 말, 사슴 등의 눈물을 마시다 감염된 뒤 사람의 눈물을 핥을 때 옮기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양안충은 그렇게 흔한 기생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희귀한 기생충도 아니다. 1910년 중국에서 최초로 보고된 이래 약 250건의 사례 보고가 있었다. 보고지역도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러시아, 태국 등 유라시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주변에 소, 말, 사슴 등의 축사가 많은 지역의 안과 의원에서는 심심치 않게 동양안충을 제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국군수도병원의 사례가 특히 이슈가 된 것은 바로 세계 유수의 의학 잡지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NEJM)」에 실렸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출간되고 있는 NEJM은 1812년 처음 발간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온 가장 오래된 의학 잡지인 동시에, 가장 영향력이 큰 잡지이기도 하다. 때문에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지도 않고, 간단히 집어내는 것으로 치료가 가능한 기생충 질환인데다, 그다지 희귀한 사례라고 보기도 어려운 동양안충 제거에 대한 기사를 여기에 실을 수 있으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NEJM의 편집장은 오랫동안 기생충에 대한 호감을 보여왔다. 동양안충 사례는 NEJM 중 ‘임상의학에서의 사진들’에 실렸는데, 여기는 연간 몇 사례씩 기생충 사진들이 올라온다. 지난 8월에는 일본의 고래회충 사진이 실렸고, 2008년에는 한국 한림대에서 대장내시경 중 발견한 회충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편집장이 단순히 기생충을 애호한다는 이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학문, 그리고 연구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거나 재구성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도 그렇다. 여성 참정권의 인정, 노예제도 철폐, 인종차별 금지 같은 일들은 불과 지난 세기에 일어났다.
우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우리 사회가 그렇기 때문에, 지식이 그렇기 때문에, 권위가 말하기 때문에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을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당연함을 당연하다고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별로 위험하지도, 희귀하지도 않은 기생충이 세계 유수의 의학 잡지 한켠을 장식할 수 있는 세상이다. 연구자들이 ‘당연히 안되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새로움이란 당연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다시 돌아볼 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