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인연의 시작
2007년 베트남의 호치민 국립무용학교에 게스트 아티스트로 초청되었다.
현지의 현대무용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내가 만든 수업과 창작과정을 공유 하는 것,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면 한국의 현대무용을 소개하고 새로운 수업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그곳에 2주 동안 머물면서 해야 할 임무였다.
혼자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무용 수업들을 찾아 배우고 무용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 나가던 때였기에 나름 다듬어진 나만의 수업이 자신 있었지만 그곳의 현대무용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또, 미숙한 영어로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에 많이 긴장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처음 발을 디딘 호치민 공항, 직원들의 유니폼은 군복 같아서 위축 되었고 낯선 곳에 혼자 막 떨어진 듯하여 당황스러웠다.
문을 열고 공항 밖으로 나가는 순간 동남아의 덥고 습한 날씨 그리고, 수많은 낯선 얼굴들 사이에 영어로 내 이름을 써서 보드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한 친구를 만났다. 능숙한 영어로 내게 인사를 건넨 그 친구는 학교에서 보낸 차로 숙소까지 같이 이동하며 앞으로 2주간의 스케줄 등을 알려줬고, 지내는 동안 통역을 하게 될 것이며 자신도 이번 프로그램에 함께 할 무용수라고 소개했다. 서글서글한 웃음과 유쾌해 보이는 그 친구의 첫인상에 안도하며 국립무용학교 앞에 위치한 숙소인 작은 호텔 (한국에서는 잘 찾아 볼 수도 없는 구식 모텔같은 곳)에 도착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잠자리에 예민하지 않은 편인데 이번 숙소는 너무 시끄러운 에어컨에 삐걱대는 침대 그리고, 방의 주인인 수많은 벌레들이 날 편히 쉴 수 있게 두질 않았다.
다음날 잠을 설치고 일어나니 어제 안내 해줬던 친구가 오토바이로 픽업왔고 나는 뒷 자석에 어색하게 올라앉았다. 학교에 도착한 우리는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고 그 후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함께 마지막날 문화부에서 나온 관계자들과 방송국을 비롯한 여러 기자들 앞에서 2주 과정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쇼케이스를 가져야 한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무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의 방을 나오며 나도 모르게 통역을 도와주던 그 친구에게 “오 마이 갓!(Oh My God)” 이라고 말하고 둘이 함께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날씨는 무더웠고 에어컨 없는 태양과 맞닿은 꼭대기층 무용실에서 하루 6시간을 실력 차이가 서로 다른 15명의 무용수들과의 수업 진행은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모두가 무용수이면서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현대무용을 가르치는 교사들이기도 했기에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달리 많이 조심스러웠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날 쇼케이스의 스트레스는 밤잠을 설치기에 충분했다.
순수하게 열심히 따라와준 그들이 고마웠지만 불편한 숙소에서의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1주일이 지난 후, 통역을 도와주던 친구가 은밀하게 제안을 하였다. 매주 무용수들이 모여 같이 연습하는 곳이 있는데 수업을 해줄 수 있겠냐고….
늘 무용수들이 모이는 곳은 내겐 너무 궁금하고 가고 싶은 곳이었기에 당연히 승낙을 했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골목골목을 빠져 한참을 달려 어느 골목안 어둡고 허름한 곳에 내렸다.
건물 안 이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창고처럼 보이는 곳이 나왔다. 내가 상상하던 무용실과는 거리가 먼, 창문도 없고 시멘트로 대충 마감을 한 그곳은 물이 새어 들어와 얼룩진 곰팡이가 보이기도 했다. 댄스 플로어가 아닌 어두운색 장판이 깔려져있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연습을 하고 있는 20여명의 무용수들이 모여 박수쳐주며 연습하는 광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어리둥절해진 나는 친구의 소개로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이어 수업을 시작했다. 그들의 열정과 집중하는 모습에 국립무용학교에서 가진 무거운 마음을 잊을 수 있었고 티셔츠가 땀에 흠뻑 젖는지도 모르고 소리를 지르고 춤추며 잊지 못할 2시간을 함께 보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그들의 연습은 멈추지 않았고 끝없는 질문에 내가 뭐라 말을 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최대한 진실 되게 느낀 것들을 답했다. 그들의 열정과 꿈에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2016년 지금 그 창고에서 만났던 무용수들은 베트남을 비롯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프로페셔널이 되었고 그때 통역을 도와주고 창고 같은 무용실로 나를 데려갔던 그 친구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를 소재로 한 태양의서커스의 신작 「첫 번째 비행」의 안무가가 되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