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현대 예술이 끊임없이 진화해간다 해도 과연 자연보다 더한 미감을 창조할 수 있을까, 싶을 때가 많다. 특히 잘 가꿔진 정원을 보면 미술작품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조경(造景)을 ‘제7의 예술’이라 부르는 학자들 논리에 공감한다. 영국에서 특히 발전한 ‘가드닝(gardening)’은 원예 또는 조원(造園)이라 번역하는데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달 28~29일,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보길 고산 윤선도문학관’ 개관을 기념하는 학술대회에 갔다가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돼 놀라고 기뻤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의 문인이자 직신(直臣)으로만 알려졌던 고산이 알고 보니 한국 최고의 정원가(庭園家)였던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생태미학으로 읽는 고산 윤선도 원림(園林)”을 발표한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는 “고산은 탁월한 심미안으로 조선 역사상 정원을 가장 많이 만든 조경전문가”라고 소개했다.
1637년 2월, 고산은 인조대왕이 마침내 청나라에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탄에 빠진다. 50줄에 들어선 고산은 이제 치욕의 땅이 된 육지에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다며 제주도로 건너가 일생을 마칠 계획으로 뱃길에 나선다. 이때 우연히 보길도에 들른 고산은 그 빼어난 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눌러 앉게 된다. 이로부터 보길도는 어옹(漁翁) 윤선도가 현실에서 찾은 이상향이자 낙원이 되었다. 그는 자연에서 시심(詩心)을 얻었고 그 기쁨을 더 누리려 여러 원림을 조성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산이 이렇게 높은 경지의 조경을 지휘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그걸 잘 즐길 줄 아는 마음이었다는 사실이다. 성 교수는 “생태적 감각과 심미적 연출이 어우러진 고산의 원림은 좋은 땅 읽기의 결과이며 예술적 경지의 즐김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부용동 정원에 세운 세연정(洗然亭)은 그 이름 자체가 세속의 더러움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한 고산의 뜻을 알 수 있는 곳이다. 고산은 이에 더해 인공 돌다리까지 만들어 우기에 폭포가 쏟아지게 해 그 소리로 세상 소음을 막았다고 한다.
고산은 풍수지리에도 능해 그가 집을 짓고 정원을 세운 곳은 지금 봐도 명당의 기운을 강하게 뿜어낸다. 성 교수는 앎과 삶과 감을 일치시키려 했던 이런 고산의 실천적 삶을 ‘생태미학’이라 불렀다. 과학과 미학이 만나 연출하는 고산의 정원은 그 자체로 걸작이자 명품이었던 셈이다. 성 교수는 완도군이 고산의 원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계획에 대해 “재고(再考)하라”고 조언했다. 복원 작업 과정에서 고산이 이룩했던 생태미학의 원형이 훼손된 탓이다. 문명이 발전한다 해도 고산의 유(遊) 정신을 어찌 좇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