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살롱

올해엔 연극계의 연륜을 알리는 공연과 단체가 눈에 띠게 연극계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연희단거리패’의 30주년기념공연과 극단 ‘작은신화’의 30주년 기념공연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견디고 버텨오며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참 장한 일이다. 극단 ‘작은신화’는 30주년기념공연으로 「싸지르는 것들」(막스 프리쉬의 「비더만과 방화범들」 1953년 방송극, 1958년 쮜리히극장 공연)을 서강대 메리홀(10월18일~11월6일)에 올린다.
최용훈 감독은 아마도 우리 사회 속에 만연해 있는 소시민적 폐쇄성과 개인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비열한 사회구조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나보다. 이 작품이 쓰여진 1950년대는 독일이 패전 후 600만 유태인학살의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독일사회는 전화의 폐허 속에서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피폐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모든 독일 국민들은 “Politick ohne mich!”(정치라면 나를 제외하고!) 라고 외치며 전쟁의 폐허더미에서 오로지 생존을 위해 안으로, 안으로 움츠러들며 달팽이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나만 배부르고 등따스면 밖은 아랑곳없다는 생각으로 사회가 각박하고 여유가 없던 시대였다. 그러한 사회상황을 보며 독일어권 문화계의 작가들은 사람들의 생각을 달팽이집 속에서 끄집어내어 인간으로서 사회와 정치를 바라보며 어떻게 구실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일깨우는데 앞장을 선다.
그중 두 거목은 스위스출신 작가 막스 프리쉬(1917~1991)와 프리드릿히 뒤렌맛트(1921~1990)였다. 그들은 전후 독일의 경제상황과 사회여건이 안되어 작품을 써도 우선은 방송극으로 대중과 만나고, 성공 하면 몇 년 후 극장에 올리는 수순으로 공연을 올리곤 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49년전, 독일유학을 마치고 이화여대 독문과 희곡담당교수로 부임하면서 매년 독일작품을 한 번씩 무대 위에 올리는 조건으로 그 첫 작품을 1967년 9월29일 「비더만과 방화범들」을 이대 문리대 414홀 위에 올렸다. 성공적이었고 2년 후 서강대에서도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근 50년이 지나 한국사회가 세계의 유례없는 산업국으로 도약,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국민들의 소시민적 근성과 ‘나’만의 부를 축적하는 물욕주의는 불을 싸지르는 범죄자들의 타겟이 되어 결국은 모두가 다 함께 화염에 쌓여 방치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 비더만(원래 뜻은 출중한, 훌륭한의 뜻이지만, 반어적으로 쓰면 역겨운 놈이 된다) 연극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중소기업사장 비더만이 어떻게든 자기집으로 스며들어 불을 지르려는 범죄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다른 집이야 어찌되었던 자기집만을 지키기위해 비열하게 아부하는 그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코러스를 동원하여 극 진행과 결과에 대한 예견을 암시함으로 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비더만 부부의 비열함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연출이며 극단대표 최용훈은 우리연극계의 귀한 존재로 극단 외에도 한국연극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 왔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 숨겨진 반어적 기능을 놓치는 바람에 아쉽게도 공연을 올린 그의 목적을 관객에게 전달하는데는 조금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