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11월21일은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2주년이 되는 날이다. 3년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도서정가제 관련 규정의 개정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조항에 따라 앞으로 1년 안에 그 방향이 결정되어야 한다. 법 개정 절차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사실상 몇 달 안에는 개정안에 대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주무 부처는 물론이고 이해관계자인 출판계와 서점계, 소비자 등의 의견은 자기 이익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실질적인 대안 마련은 제대로 모색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면 현상 유지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도서정가제는 동일한 책이면 전국 어디서나 같은 값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일간신문의 경우 「공정거래법」상의 재판매가격유지제도를 통해 정가를 보장한다. 1부 판매 가격이든 1개월 구독료든 전국 동일 가격이다. 그러나 책은 도서정가제라는 말을 쓰면서도 직간접 할인율 15%는 기본이고, 인터넷서점이 제공하는 최고 40%의 제휴카드 할인, 각종 쿠폰, 정가의 최대 50% 이상 가격으로 책을 되사들이는 바이백(buyback) 서비스, 전자책의 무제한 할인 판매를 위한 편법적인 ‘10년 대여’ 서비스 등이 모두 허용되고 있다.
예전과 달리 구간 도서의 반값 할인 등 과당 할인 경쟁만 사라졌을 뿐 시장질서 혼란은 여전하다.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지켜지도록 행정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국에 문화체육관광부는 할인 여력이 없는 오프라인서점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15% 추가 할인이 가능한 ‘문화융성카드’ 사용을 적극 권장하며 할인판매 확대를 유도한다. 그러나 이는 할인율 제한에 따른 소비자 반발을 의식한 것일 뿐 정가제 도입 취지를 부정하는 반(反)문화정책이다.
이 정도라면 일부 소비자들이 제2의 단통법이라며 반발할 이유가 전혀 없다. 또한 우리나라 책값은 부가가치세가 면세되므로 사실상 10% 기본 할인을 추가로 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할인이 많고 가격을 믿기 어려운 제도는 할인 촉진법이지 정가제가 아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아 자본력이 있는 인터넷서점에게만 여전히 유리하다. 할인과 구색이 모두 어려운 오프라인서점과 대다수 소규모 출판사들은 완전한 도서정가제를 바라지만 쉽지 않은 현실이다.
도서정가제는 종국적으로 사업자가 아닌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보다 다양한 책을, 보다 다양한 유통 경로를 통해, 가격 거품 없이 독자가 구입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2년 전부터 다소나마 정가제가 강화됨으로써 평균 정가는 하락하고 도서 발행 종수와 서점 숫자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정가제는 기본 할인율을 15%까지 가능하도록 하여 모든 출판사가 그 만큼의 거품 가격을 붙이도록 유도하고 서점에서는 그 만큼 할인하는 시늉을 하도록 만들었다. 현재와 같은 거품 가격 제도를 조속히 시정하여 일물일가(一物一價)의 원칙에 충실한 정가제를 확립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도서 구매자들의 가격 신뢰도는 제고되고, 전국적으로 더 많은 서점들이 문을 열 것이며, 출판사들의 사정도 나아져서 독자들이 볼 만한 책을 더 많이 만드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가짜가 아닌 진짜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