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공연평

* 김윤규 안무 『회귀선』(10월21~23일 게릴라극장)
김윤규의 안무작 『회귀선』은 조금 독특한 형식의 공연이었다. 먼저 공연이 펼쳐진, 대학로의 한 소극장은 보통의 춤공연에도 비좁은 무대공간인 만큼, 공간적 협소함이 작품의 규모에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공연의 형식은 이해가능했는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점은 소극장의 장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한눈에 담길 수 있는 무대는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으며, 무대와 객석의 거리감 없음은 전체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몸의 세밀한 변화까지 감지할 수 있는 작은 무대는 움직임의 밀도를 높여주어 흡입력을 배가시킨다는 장점도 소극장의 특징이다.
또 하나는 무용수 외에 연기자(연극배우)들이 주요 출연진이라는 점이 공연의 특이성을 드러낸다. 이들은 대사를 하고 춤을 추는 데 어색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배경으로 인해 표현적 연기성이 강한 움직임들이 이 공연의 형식이 춤인지 연극인지를 모호하게 하는 것이다. 안무자를 포함해 총 6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출연자들은 관객이 자신들의 대사를 듣길 바라며 움직임 또한 관객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항상 관객을 향하고 있다. 그처럼 공연 내내 객석과 소통하고 있는 듯한 행위는 보는 이들을 구경꾼에서 참여자로 끌어들이려는 성질을 띠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안무자의 의도대로 이 같은 공연형식은 한국 전통의 연희양식과 그것의 재구성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제목 ‘회귀선’이 가리키는 바, 생명이 부재한 공간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회귀선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이기도 한, 안무자는 이 선을 오히려 삶을 시작하는 근원지로 설정한다. ‘회귀선’의 사전적 뜻은 적도를 중심으로 남위와 북위 각각의 23도 27분을 지나는 위선이며, 북쪽을 북회귀선, 남쪽을 남회귀선이라고 한다. 두 개의 회귀선 사이가 태양이 머리 위에서 비춘다는 열대지역이다. 이곳은 사람이 살기 힘든 장소다.
출연자들이 이 공간에 도달하면서 작품이 시작된다. 그들은 아마도 죽음의 순간에 직면한, 그 경계를 경험한 자들일 것이다. 조명이 뜨거운 태양의 빛처럼 내리쬐어 무용수들은 힘겹게 꿈틀거리고 무대에 널브러진 양동이는 ‘물’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양동이들은 하얀색 줄에 매어져 있기도 한데, 이 줄들은 생사에 몸부림치는 이들의 몸과 움직임을 제약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삶의 긴장감을 표현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작품의 내용은 뚜렷하지 않고 이야기는 모호하다. 장면들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서사적 구조를 갖지 않는다 할지라도 혼재된 모티프들이 하나의 주제로 쉽게 모아지지 않는다. 이는 안무적 요소와 연출적 구성의 부조화에서 비롯된 듯하다. 특히 춤의 부분은 좁은 무대의 공간적 한계가 주는 제약이 크고 삽입된 대사 장면들이 춤추는 몸/움직임의 이야기와 이질적으로 전개되는 성향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결과적으로 작품의 길이가 늘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고, 80분의 공연시간은 작품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물론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몇 가지 장면으로 전달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메마른 땅에서의 숨막힘과 힘겨움은 오늘 이 사회의 현실에서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성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작품 『회귀선』은 희망과 절망이라는 양극을 안무자 특유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얼핏 원초적 움직임처럼 보이는 집단적 춤은 한국 민속춤의 유희성을 연상시킴으로써 삶에 대한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바람을 메시지로 남겼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다시 길을 떠나는 유랑민의 모습이 발견된다.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을 이고지고 떠나면서도 그 발걸음이 결코 무겁지 않은 까닭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꿈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주제적 메시지가 강렬한 힘으로 드러나기보다 넘쳐나는 여러 장면들 사이로 소진되듯 희미해져 아쉬움을 주었다. 무대미학적 측면에서 춤추는 몸의 움직임과 상호작용하는 공간성에 대한 관점이 좀 더 뚜렷해질 때 주제와 관련된 춤의 잠재력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무자 김윤규는 오랫동안 상임안무자로 활동했던 트러스트무용단을 떠나 현재 새로운 그룹인 ‘댄스씨어터 틱’(2014년 창단)을 이끌며 연극과 춤에서 새로운 실험들을 기획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이러한 면모가 정확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공연적 요소들의 조합이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