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의 서울유레카

나는 이미 우동, 오뎅, 초밥, 라면 등 ‘일식 아닌 일본식 한국음식’을 이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다. 말하자면 일본음식이 한국에 토착화한 경우를 소개한 코너였는데, 이건 약간 형평에 어긋난다는 생각도 든다. 해서 이번엔 ‘한식 아닌 한국식 일본음식’을 소개할까 한다. 그런 음식들이 꽤 있지만 그 기원까지 아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모리오카 냉면
함흥냉면이 일본 모리오카 지방에 흔한 음식이라고 하면 믿으실까요? 사실 일본 동북지방에 위치한 이와테 현(岩手縣) 모리오카 시(盛岡市)에선 냉면이 한국만큼이나 흔한 음식이다.
모리오카 냉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54년에 재일교포 양용철 씨가 테이블 4개를 놓고 시작한 작은 식당 ‘식도원(食道園)’을 원조로 보고 있다. 양용철 씨는 요즘말로 하면 일명 ‘셰프’ 소리를 듣는 전문 요리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향인 함흥의 냉면 맛을 재연하려고 독자적으로 조리법을 연구했다.
시작이 그리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일본인들은 우골 육수를 그리 선호하지 않았고, 면의 쫄깃함과 검은색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이 식욕을 느끼지 못했단다. 게다가 김치의 매운맛은 손님을 떨어져나가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했다. 고심하던 양 씨는 동경의 한국음식점에서 먹었던 하얀 냉면을 참고해 면에서 메밀을 제거했다. 그렇지만 녹말이 들어간 면의 쫄깃한 식감, 사리 위에 얹은 김치, 무엇보다 기본인 우골 육수 이 세 가지 전통만은 고수했다.
어디나 그렇듯 음식에 관한한 실험정신은 젊은이들의 몫, 언제부턴가 모리오카의 젊은이들 사이에선 ‘식도원의 함흥냉면은 꼭 먹어봐야 하는 것’이란 붐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세대를 초월해 인기를 얻게 됐고, 양용철표 함흥냉면인 모리오카 냉면의 기본 스타일이 완성됐다. 흥미로운 것은 양용철 씨가 ‘모리오카 냉면’도 ‘함흥냉면’도 아닌 ‘평양냉면’이란 간판을 달고 장사를 했다는 점이다. “함흥보다 평양이 유명했기 때문”이었단다.
그렇게 모리오카 냉면 붐이 이어오다 1979년에 개업한 ‘불고기가든 페코페코(肉ガ─デン ペコペコ)’가 TV와 라디오 광고를 통해 냉면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 광고 때문에 모리오카 시내뿐만 아니라 이와테 현 전역에 ‘냉면’이라는 음식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주목할 것은 이 광고에 사용된 명칭이 ‘모리오카 냉면’도 ‘평양냉면’도 아닌 그냥 ‘냉면’이었다는 점이다.
그럼 ‘모리오카 냉면’이라는 명칭은 언제 탄생했을까? ‘모리오카 냉면’이란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곳은 1982년에 모리오카 시내에서 개업한 ‘뿅뿅사(ぴょんぴょん舍)’다. 1981년 10월 모리오카 시에서는 ‘면 요리 서미트(Noodle Summit)’를 개최하고 개업을 준비 중이던 변영웅 씨에게도 참가를 권했다. 그때 변영웅 씨는 자신의 부스 간판을 ‘모리오카 냉면’이라고 달았다. 그것을 본 모리오카 시 공무원인 타구치 요시마사(田口善政) 씨가 “이와테 현 밖에서는 냉면을 모두 ‘모리오카 냉면’이란 부른다. 그러니 앞으로 당신도 지금처럼 계속 모리오카 냉면이라고 쓰면 좋겠다”고 했단다.
그러나 ‘모리오카 냉면’이란 명칭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재일 한국인 사회에서 “고향의 식문화를 일본에 팔아먹는 행위”라는 반발이 일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논쟁 때문에 모리오카 냉면이 모리오카 명물로 알려지며 전국구를 얻는 계기가 됐다. 2000년에는 모리오카 냉면의 생면이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모리오카 명물로 공인되기도 했다. 지금은 모리오카 시민뿐만 아니라 이와테 현을 찾는 관광객들도 꼭 한 번 맛보는 식도락 코스가 됐다고.

모리오카 짜장면
짜장면 또한 모리오카의 명물이다. 엄밀히 말하면 모리오카 짜장면은 한국 또는 한국인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짜장면은 한국인의 쏘~울 푸드(?) 아닌가? 하여 당연히 여기에 지분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 생각된다. 물론 모리오카에서는 짜장면이라 부르지 않고 자자멘(じゃじゃ麵)이라고 한다.
한국의 짜장면은 산동성 등에서 건너온 화교들에 의한 것이지만 모리오카 짜장면은 좀 다르다.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이주했던 ‘파이롱(白龍)’의 초대 주인인 다카시나 칸쇼우(高階貫勝)가 만주에서 맛본 짜장면을 기반으로 패전 후 모리오카 시내의 길거리에서 자자멘을 팔기 시작했다. 파이롱은 원래 교자(야끼만두) 전문이었다. 다카시나 씨는 만두피를 만들다 남은 밀가루를 사용해 자자멘 면발을 만들었다. 중국 동북지방의 짜장면은 대두가루를 이용해 면발을 뽑았지만 당시 일본에선 대두가루를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짜장도 춘장이 아닌 일본된장을 사용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오늘날의 모리오카 짜장면이 완성됐다.
모리오카 짜장면은 중국식 면발과 달리 납작하거나 우동과 같은 굵은 면발을 사용한 독특한 면발이다. 면 위에 짜장을 얹고, 양파와 파를 뿌리고, 기호에 따라 간 생강이나 마늘, 고추기름을 가미해 먹는다. 면을 다 먹은 후에 그릇에 뜨거운 물과 날계란을 풀어서 스프로 마시는 스타일도 독특하다. 이것을 ‘치탕탕(鷄蛋湯)’이라고 부른다. 대부분 주문을 받은 후에 면을 삶기 때문에 조리시간이 긴 편이다.
모리오카 냉면만큼 큰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모리오카에는 한입 사이즈인 완코소바(豌子そば)란 메밀국수가 있는데 모리오카 냉면, 모리오카 짜장면과 더불어 ‘모리오카 3대 면 음식’이란 애칭으로 지역 홍보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

명란젓의 국적은 한국? 일본?
일본의 아침상 차림에서 특히 후쿠오카 지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명란젓이다. 일본말로 멘타이코(明太子)인 명란젓을 후쿠오카에서 맛본 어떤 한국인 친구가 내게 일본 명란젓 맛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내가 “그 명란젓은 아마 한국산일 텐데?”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깜짝 놀라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명란젓이 일본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의외로 많았다. 명란젓의 본고장 강원도 사람들이 섭섭해 할 거 같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먹는 명란젓과 멘타이코는 조금 다르다. 멘타이코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어 확실치는 않으나, 현재 일본에서 팔리고 있는 멘타이코의 기초를 만든 사람은 후쿠야(ふくや)의 카와하라 도시오(川原俊夫)다. 일본인들이 처음 먹던 멘타이코는 명란에 고추와 마늘을 뿌려서 만든 김치에 가까운 것이었다. 카와하라는 여기에 조미료를 더해서 오늘날의 멘타이코 원형을 만들었다. 멘타이코는 김치처럼 유산균이 발효되며 독특한 맛을 낸다. 부산에 일본 멘타이코 공장이 있는데, 지금은 한국인들도 이 멘타이코를 즐겨먹는다고. 어째든 일본의 명란젓 멘타이코는 한일합작으로 개량한 식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정착된 고기음식들
일본의 대표적인 육식조리법은 야키니쿠(燒き肉)다. 보통은 불고기라 번역하는데 한국의 불고기완 차별되는 점이 많다. 구워먹는다는 점에선 같지만 내장 부위도 포함된 불고기란 점이 한국의 불고기와 큰 차별이 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의 야키니쿠에 내장 부위들이 포함됐을까? 일본의 전통적 식습관을 보면 곱창과 간 등 내장 부위를 먹지 않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당시 본국으로 귀국하지 못한 재일 한국인들은 값비싼 고기를 대신해 내장 부위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것을 혐오스럽게 바라보던 일본인들도 자신들의 넉넉지 못한 경제 사정으로 재일 한국인들의 음식에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됐다.
이런 내장 부위의 음식을 일본에선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그 어원에 대해선 우선, 오사카 지역의 사투리란 설이 유력하다. 오사카 사투리로 호르몬(ホルモン)은 ‘버리는 음식’을 뜻한다. 즉, 일본인들에게 내장은 버리는 부위였던 것이다. 그렇게 버리는 음식이었던 내장 부위가 지금은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바뀌었다. 또 하나는 자양강장음식이란 의미의 호르몬이다. 라틴어 호르몬을 뜻하는데 스태미나가 넘치는 음식이란 뜻이다. 이때 호르몬 음식은 자라 등 고단백 음식을 포함해서 지칭하기도 한다.
또한 호르몬 음식이 대중화된 계기는 상대적으로 취업이 어려웠던 재일 한국인들이 도축장 등에서 많이 일했고, 그때 버려지던 내장 부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데서 기인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여 대부분의 호르몬 음식점에선 김치 등 한국식 밑반찬이 함께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호르몬 음식은 서민층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음식이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일본인들이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곱창은 물론 간과 육회 등이 유통되고 있는데, 일본의 의식품안전법이 강화되면서 육회나 간, 곱창 등은 더욱 비싼 음식이 되고 있다. 지금도 한국으로 관광 온 일본인들은 한국의 값싼 호르몬 음식을 보면 우선 젓가락을 들고 달려들기도 한다.
호르몬의 다른 호칭으로 ‘돈짱’이 있다. 돈은 돼지를 의미하며 짱은 내장을 의미한다. 어원은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야마구치 현 시모노세키 시에는 돈짱 나베(곱창전골)가 명물이며, 후쿠오카 현 치쿠호 지방에서는 호르몬 구이를 돈짱 야키라고 부른다.

음식의 국적이 뭐 중요하겠나
일본은 카레와 라면을 비롯해 많은 외국음식을 자기화시켰다. 그것이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도 마찬가지다. 카레와 라면은 물론 짜장면, 우동, 김밥 등이 모두 한국화됐고, 일부는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되기도 했다.
함흥냉면이 모리오카 냉면이 되고, 명란젓이 멘타이코가 돼 한국에 역상륙도 했다. 음식으로 보는 문화의 삼투압작용이 놀랍기만 하다. 한동안 내가 한국에 와서 김밥을 먹고 받았던 문화적 충격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