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여느 오페라 작품들과 견주어 볼 때, 음악적으로는 손색이 없지만 이야기 부분에서는 전개상 작위적이고 억지스런 부분이 많다. 「투란도트」는 18세기 작가 카를로 고치가 쓴 「투란도테」라는 희곡을 원작으로 탄탄한 구성이 받쳐주고 있다. 「투란도트」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의 주요 인물들을 다양한 부류의 정치인들의 캐릭터들로도 해석할 수 있다.

우선, 「투란도트」에서 희극적인 요소를 담당하는 인물인 핑, 팡, 퐁은 중국 상급 관리인들이다. 그들은 투란도트의 이해 못할 행동들 때문에 은퇴도 못하고,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왕자들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공주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신세다. 5음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선율로 표현된 그들의 캐릭터는 그럼에도 무척 경쾌하고 이국적이면서도 고급지지만,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역시 공무원이다 싶을 정도로 「투란도트」가 결말로 치달을수록 그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전의 유쾌하고 희극적인 이미지는 어디로 가고 왕자의 이름을 알고 있는 류에게 고문을 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공주가 고문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알아내지 못한 것에 대해 수치심까지 느끼며 더욱 더 가혹한 고문을 가한다. 전반부와 판이하게 다른 후반부의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처음엔 당혹스럽다 싶다가도 그러한 인간 부류의 상징이라 생각해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칼라프 왕자는 왕자이기 하지만 캐릭터상으로는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정치인과 같다. 첫 막부터 그는 투란도트 공주 때문에 괴로워하는 북경의 백성들을 목격한다. 공주의 얼굴을 몰랐을 때는 이렇게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투란도트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만 그러나 이것도 잠시, 공주의 자태를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한 공주를 쟁취하기 위해 물불 안 가리며 여느 왕자들과 마찬가지로 공주가 낸 수수께끼에 도전을 한다. 여기까지는 여느 로맨틱 오페라에나 있을 법한 인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나라가 망해 오갈 데 없어진 전직 왕인 아버지가 있는 처지다.
투란도트의 사랑을 차지할 사람은 자신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이 죽거든 아버지를 잘 돌봐달라고 그의 아버지인 티무르 황제를 노예출신인 류에게 부탁하며 저 유명한 아리아 ‘울지 마라 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좋게 보면 돈키호테와 같은 성격이지만 정의감 하나로 정치에 입문했다가 시간이 갈수록 개인적 관심사로 초심을 잃은 정치인으로 비춰진다.
그런가 하면 투란도트의 수수께끼를 푼 칼라프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투란토트 공주에게 역으로 수수께끼를 낸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결혼하기 싫은 투란도트 공주는 자신의 힘으로 이를 풀 능력이 안 되니 북경의 백성들을 인질로 삼는다. 군주로서 백성을 보호하지는 못 할 망정 비겁하게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하면 자신들이 죽임을 받게 될 테니 제발 북경을 떠나달라고 북경 시민들은 그에게 애원과 협박을 되풀이 한다. 하지만 칼라프는 칼라프 대로 아랑곳하지 않고 공주의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그들의 애원을 무시하는 것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인 투란도트 공주를 보자면, 그녀는 결혼을 기피하는 여자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엘리자베스 I세처럼 대의를 위한 독신주의자도 아닌 남자 혐오증 때문이다. 왕족이라면 자신이 싫던 좋던 강제적으로 결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왕족으로서의 의무이지만 이를 피해가기 위해 몇 백 년 전도 아닌 무려 몇 천 년 전에 일어났던 로우링 공주가 적군의 손에 죽은 일을 어제 벌어진 일인 냥 핑계를 대며 이런 이유로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습기도 하지만 청혼하러 온 외국의 왕자들에게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내어 풀지 못하면 죽여버린다1)는 것은 웃음으로 넘어 갈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정당화시켜버린다. 게다가 공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자신이 보살펴야 할 백성들까지 괴롭힌다. 그냥 살려 보낼 수도 있는 왕자들을 기어코 죽여 버리고, 그 때문에 북경의 분위기는 공포스럽다. 죽어가는 외국의 왕자들의 신원을 탄원하는 백성의 간청도 무시하기 위해 스스로 눈과 귀를 막고 구중궁궐에서 시녀들의 시중만 받고 민생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오직 사적인 복수에만 온 정신을 쏟는 인물이 투란도트 공주다. 이렇듯 나라를 공포 분위기로 만든 결과 백성들의 생활은 힘들어졌고, 마음은 황폐해졌으며, 생존을 위해 비겁해졌다. 오늘날의 세태의 주역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극에서 보는 듯하다.

그럼에도 「투란도트」는 고대시절 왕정시대의 이야기다. 「투란도트」가 실화였다 하더라도 그땐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세상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왕족을 유지하는 나라라 해도 공주가 자신의 배경을 가지고 전횡을 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국민이라도 이런 작태에 대해 용납하지 못 할 것이다. 기업은 오너의 마인드에 좌지우지되며, 국민은 지도자의 마인드를 따라가게 돼있음을 볼 때, 지금의 민심을 보며 리더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믿을 수 없는 일을 겪고 있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겨야 하는 수장에서부터 그 각료까지 자신이 나라를 전세 낸 듯 거칠 것 없이 독주해오며 국민의 혈세까지 남용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투란도트 공주인 냥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후안무치의 극치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러한 사람이리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던 사람도 적지 않았고 또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를 간과한 것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 시간을 2012년 12월19일로 되돌릴 수는 없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서 나라의 일꾼을 정치적으로 미화시킨 이미지에 너무 의존한 것과 돌이켜서는 안 될 과거에 대한 삐뚤어진 향수에 대한 대가가 아닌지도 자성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여태껏 지도자들의 체력만 봤지만 이제는 건강한 정신 역시 지도자의 필수 요건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아리아 선율에 빠져 정작 삐뚤어지고 비상식적인 행동의 공주마저 차갑고도 우아한 자태의 소유자로 착각하고 있는 우리에게 오페라 「투란도트」는 인물에 대해 정확히 직시하며 감상 할 것을 미리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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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왕자들을 살려 보내지 않았던 이유는 수수께끼의 문제가 유출됨을 막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