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어느 분야든 한때를 풍미하는 유행이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 큰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현실과 관심사, 밀물과 썰물의 조류는 계속 바뀐다. 그것이 트렌드(trend)다.
저성장 불황의 시기에 꾸준히 팔리는 책들의 공통점은 실용성이 높다는 것이다. 없으면 안 되는, 당장 필요한 책들이다. 특히 소비자 동향을 파악하여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승부를 해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새해 사업계획을 세울 때 트렌드 분석 관련서를 많이 활용한다. 트렌드 관련서가 주목받는 것은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미래의 불안정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반증이다.
트렌드 관련서 분야에서 트렌드 주도자(트렌드 세터) 역할을 한 책은 서울대 김난도 교수(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대표 저자인 「트렌드 코리아」다. 이 책은 다양한 소비자 동향 자료를 분석해 설득력 있는 키워드를 제시하며 매년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트렌드 분석서 출판의 개척자 역할을 한 이 책의 인기에 힘입어 「대한민국 트렌드」, 「트렌드 노트」, 「대한민국 토탈 트렌드」 등 유사 도서는 물론이고 분야별로도 다양한 특화와 진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를테면 정보통신 분야의 「모바일 트렌드」, 「ICT(정보통신기술) 트렌드」, 세대별 시장 동향을 분석한 「20대 트렌드 리포트」나 「시니어 트렌드」, 라이프 스타일이나 교육 분야를 분석한 「라이프 트렌드」, 「트렌드 에듀」, 코트라가 지은 「한국이 열광할 세계 트렌드」도 2017년판을 내놨다.
그렇다면 ‘붉은 닭의 해’(정유년)인 2017년에는 어떤 트렌드가 예상될까. 김난도 교수가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 제시한 키워드는 ‘치킨 런(CHICKEN RUN)’이다. 이는 지난 2000년에 개봉하며 큰 인기를 끌었던 영국 애니메이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닭 농장에서 죽음을 앞두고 탈출하는 주인공 닭을 우화적으로 그린 재미난 작품이다. 같은 시기에 출판되어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암탉 ‘잎싹’이의 씩씩한 도전과 희망을 그린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면, 「치킨 런」은 오로지 생존하기 위해 탈주하는 암탉 ‘진저’를 그렸다. 죽지 않기 위해 날아서 탈출하려는 닭들처럼 한국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 비상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치킨 런’의 영문 대문자 10개는 2017년 10대 키워드의 머리글자들이기도 하다. 좋은 경험을 위한 아낌없는 지출, 대중 제품의 고급화, 혼자만의 삶 추구, 스스로 삶의 길을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 등이다. 지난해 2016년의 트렌드로 제시됐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약진 속에서 성능이 좋은 프리미엄 상품이 인기를 끌 것이란 예측이다. ‘나를 뽑아 달라’는 ‘픽미(pick-me) 세대’는 각종 스펙을 갖추고도 치열한 취업 경쟁을 뚫기 어려운 고단한 세대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꼽혔다.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역설적으로 트렌드 책이 유행할 것이다. 하지만 트렌드 책만으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헤아리고 예측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유행의 학습참고서’일 뿐이다. 세상살이가 팍팍해질수록 보다 다양한 책을 통해 길을 찾고 내공을 쌓아야 할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