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한국 연극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년을 기념하는 일로 분주하다. 한 해가 셰익스피어로 시작해서 셰익스피어로 끝나가고 있다. 셰익스피어 공연이 너무 많아서 그 숫자는 연말결산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무용극, 발레, 창극, 아동극 등 모든 장르의 셰익스피어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고 하면 틀릴 것이 없다. 영국과 유럽의 공연단은 물론이고 가깝게 중국의 국가화극원과 싱가폴의 옹 켕 센(Ong Keng Sen)이 매우 문화상호적인 셰익스피어 공연을 했는데 모두 격찬을 받았다. 어떤 평론가는 이제 영국 사람들의 셰익스피어는 싱거워서 보지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국과 유럽의 셰익스피어 공연은 많이 보았고 그것이 그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셰익스피어 공연이 범람하는 중에 특이한 행사가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과 동양공연예술연구소가 공동개최하는 「아시아의 셰익스피어」 자료전시회와 학술 세미나가 그것이다.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학술 세미나는 한국 셰익스피어 학회가 매년 한 두 번씩 정기적으로 개최하기 때문에 특별할 것은 없지만 아시아의 셰익스피어를 주제로 한 학술 세미나는 열린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의 학술 세미나는 외국의 학자가 아닌 한국의 아시아 연극 전공학자들이 모여 한국적 시각에서 한국과 아시아의 셰익스피어 수용과 관련한 학술 세미나를 한다는 점에서 초유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세미나보다 특이한 것은 자료전시회이다. 보다 차원 높은 공연문화가 성립하려면 이따금 자료전시회도 열려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과 달리 연극박물관이 한 두 곳에 불과한 한국에서는 특별한 주제의 자료전시회를 본다는 것은 정말로 희귀한 일이다. 「아시아의 셰익스피어」 자료전시회는 아시아의 셰익스피어 수용사를 소개, 번안, 번역, 연구, 공연, 무대미술, 모방희곡으로 세분하고 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희곡집, 연출대본, 연구서, 무대미술 스케치, 팸플릿, 포스터, 사진, 녹음자료, 영상자료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다.
전시자료 중에는 시각자료보다 문헌이 많는데 이것은 최근에 와서야 공연의 기록화가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인도의 경우처럼 셰익스피어 수용의 역사가 250여년에 이른다고 하면 이것을 영상자료에 담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아시아 셰익스피어 수용에서 소개, 번안, 번역, 연구, 모방희곡의 과정은 문헌자료를 통해서, 그리고 공연과 무대미술은 시각자료와 영상자료를 통해 기본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하겠는데 이번의 자료전시회에서는 다양한 실물자료를 통해 이러한 수용의 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가 있다.
셰익스피어는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이다. 어차피 넘어야 하는 산이라면 피할 필요는 없다. 예술적으로 물론, 학문적으로도 그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 내지는 아시아의 시각에서 셰익스피어를 올바로 보려는 주체적 자세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번의 「아시아의 셰익스피어」 자료전시회는 ‘한국에서 셰익스피어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