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살롱

지금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닭과 오리의 수는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그 수는 약 1억 마리에 달한다. 연간으로 따지면 이 수는 약 10억 마리 이상으로 불어난다. 전 세계 단위로 생각해보면 이는 수십 배로 불어나 인구의 몇 배에 달하는 닭과 오리가 사육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소득이 낮고, 소와 돼지 같은 비교적 고가의 단백질원에 접근이 낮은 국가에서는 전체 고기 소비량의 약 80%가 닭과 오리에서 온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의 닭 사육 두수는 연간 2~3%씩 꾸준히 증가해왔다. 1인 1닭, 치맥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닭요리 사랑을 생각하면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숫자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각지에서는 이제 매년 조류독감(조류 인플루엔자, avian influenza)가 연례행사처럼 터지고 있다.
독감은 ‘독한 감기’처럼 들리지만 감기와는 전혀 다른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난다. 독감을 일으키는 것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크게 타입 A, B, C로 나뉘며, 또 여기서 외피에 붙어 있는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180여 가지로 분류된다. 이 바이러스 타입 중 하나가 조류에서 주로 발생하며 조류독감, 돼지에서 유행하면 돼지독감 등으로 불리게 된다. 닭, 돼지, 인간의 면역체계와 반응에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류에서 유행하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직접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에는 때에 따라 사람에게서도 발병하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가져다주는 우려는 바로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뛰어 넘어 인간 사이에서 유행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2009년 신종 플루 사태가 대표적이다. 돼지에서 유행하던 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킬 수 있게 되면서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가 대유행을 일으킨 사례다. 천만다행으로 사망률이 낮아 감염 규모에 비해 피해가 적었지만, 만약 병원성이 높았다면 5천만 명에서 1억 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악명 높은 1918년 스페인 독감 대유행에 버금가는 피해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대량으로 사육되고 있는 돼지, 닭 등이 인간에게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게 최적의 배양 환경을 제공해주는 동시에, 인간이 바이러스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인플루엔자 백신은 계란을 통해 생산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유정란에 접종하고, 여기서 증식한 바이러스를 분리한 다음 독성을 약화시켜 접종하는 것이 현재 독감 예방 백신이다. 한 사람이 맞을 분량의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 1~2개의 계란이 소비되기 때문에 생산이 정점에 달하는 시기 하루 평균 한 개 제약회사에서 소비하는 계란의 양이 약 30~40만개 가량이라고 한다. 이를 낳기 위해 필요한 닭 또한 막대한 숫자가 된다.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에서 퍼져나가고 있는 지속적인 독감 유행을 막기 위해 더 많은 대량 사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생태계가 전해주는 또 하나의 모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