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병신년(丙申年) 세밑에 한국 사회를 돌아보니 단 한 단어, ‘광장’이 떠오른다.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오늘 우리의 광화문 광장을 ‘하나의 거대한 미디어’라 풀었다. “그 미디어를 통해 우리 군중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고 있다. 군중은 집회를 축제로 승화시켰다”고 김 교수는 광장의 힘을 평가했다.
그 광장에서 벌어진 토요 집회를 ‘마음의 사회학’이라는 렌즈로 들여다 본 이는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다. 사람들의 사회적 행동 아래 깔린 감정 흐름에 주목하는 김 교수는 “150만 명 인파가 광장에 운집한 까닭은 ‘주권적 우울 현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2008년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민주시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주권적 우울’을 마음에 쌓아두고 있다가 이번에 국가가 망가졌다는 위기 인식과 결합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는 설명이다.
많은 이들이 나름 광장을 이야기한다. 1987년 광장과 비교한 얘기들도 흥미롭다. 1987년이 ‘뜨거운 광장’이었다면 2016년은 ‘차갑고 자제하는 광장’이라는 것이다. 그 광장에서 사람들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앞으로 수십, 수백 년을 먹고 살 새로운 집합적 꿈을 제시할 누군가를 열망하고 있다.
촛불을 켜들고 절망을 내치면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사람들을 두 선인이 지켜보고 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다. 오랜 세월 광장을 지켜온 두 분 동상은 하나의 상징이다. 나라를 일으킨 성군(聖君)과 나라를 구한 영웅(英雄)이 광장의 두 축이 되고 있다.
광장과 동상은 밀접하다. 세계 주요 도시와 마을에는 그들의 역사와 민심을 품은 인물들의 동상이나 석상이 서 있다. 광장이 때로 혁명의 마당이 되고, 주요 사건의 무대가 되는 배경에 이들 미술품이 아이콘처럼 우뚝 솟는다. 도시를 방문하는 여행객은 그 초상 조각 앞에서 한 나라나 도시의 과거를 읽는다.
2016년 광화문 광장의 영웅은 소수 선민이 아니라 너도나도 똑같은 시민이다. 아이들 손을 잡고 울분을 삼키며 오로지 평화 시위로 자신들의 묵은 분노를 표출한 평범한 남녀노소다. 그들이 쏟아내는 자유 발언을 들으면 이 나라의 소위 지도자라는 이들은 땅에 엎드려 자신의 가슴을 치며 속죄해야 하지 않을까, 먹먹해진다.
이 황망한 정국이 수습되고 새 시절이 열리면 광화문 광장에 새 동상을 세웠으면 좋겠다. 위대한 연대(連帶)의 힘, 역사적 솔리대리티(Solidarity)를 일궜던 시민들의 빛나는 모습을 담은 진정한 광장의 동상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