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료

영국에서였던가? 몇 해 된 일이어서 명확치는 않으나 어떻든 무용가에게 줄 지원금 예산이 깎였다고 하여 그곳 무용가들이 의사당 앞에서 나체(裸體) 데모를 하는 광경을 신문에서 본 일이 있다.
무대 위에서 벗는 것은 혹 춤의 본령(本領)일 수 있다. 그러나 아닌 장소에서 벗는 행위가 호소력을 갖고 적절한 항변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곳 춤의 지도자들의 머리가 그리도 놀랍던 것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어제 오늘 우리 무용계에는 필경 벗고 달려들어도 힘들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체육 속에 무용을 묶어둔 모순된 학제와 상관있는 대학입시제도 주변까지의 문제가 그것이다.
그래서 뜻있는 대학의 무용교수와 무용가들은 이것에 대처하기 위하여 건의서(建議書)를 만들어 당국에 제출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스스로 힘없음을 아는 교수들의 건의서가 문교부에 받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내적으로는 이 다급한 무용의 위기를 대다수의 무용가들이 실감 않고 방관하고 있다는 데 문제는 더 큰 것 같다.
어떻든 일체감이 없는 무용계라는 말이 이런 효과로써 나타나는 사실에 그저 막막한 생각만 든다.
재미(在美)의 안낙영이라는 교수가 한국 민주주의를 비판한 미국인의 글을 반박한 편지에서 “국가의 최우선적인 가치는 생존(生存)”이라고 말하였다고 보도된다. 이 표현을 그대로 우리 무용계에도 적용하여 좋을 것 같다. 무용의 최우선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생존이라고.
전체가 살아남느냐 않느냐 하는 이 마당에서 ‘뜻 있는’ 몇 사람의 그 건의서, 그것은 하나의 용기의 상징이고 신호(信號)일 수는 있어도 방패는 될 수 없다.
마침내는 우리도 저들처럼 모두가 벗어 제치고 춤 특유의 언어로서밖에 건의할 도리가 없는 날이 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결의도 없이 여기서 살아남겠다는 생각부터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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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춤」 1976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