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관무기

■ 임학선 안무의 『공자』(1월18~1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한 모퉁이 보여주었다.
먹방이 대세다. SNS는 ‘나 뭐 먹었다’는 알리미. 음식이 나오면 숟가락 들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게다가 서울판 미쉐린 가이드도 나왔다며 난리다. 별점이 세 개면 이곳에서 밥먹기 위해 여행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라던데, 과연 그럴 일인가.
이런 글이 있다. “먹지 않는 자는 없다. 그러나 그 맛을 아는 자 드물다.” 중용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중용의 저자가 미식을 위해서 쓴 글은 아니다. 중용이 소중하고 좋은 것임을 알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이는 거의 없다는 뜻을 비유한 것이다. 2천 년 전에 쓰인 이 글이 유효하다면 이런 말도 가능할까. ‘춤을 추는 자 많다. 그러나 그 맛을 아는 자 드물다’. 혹은 ‘춤을 보는 자 많다. 그러나 그 맛을 아는 자 드물다.’ 중용의 저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십분 깨달았고 한발 더 나가 중용을 썼다. ‘그 맛을 아는 자 드물다’는 말 속에는 ‘나는 그 드문 사람’ 이라는 자긍이 보인다. 공자가 알았다면 정말 흐뭇했을거다.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책들에 직접 출연하는 주인공이라는 점, 그러나 정작 이분들은 그 책을 한 줄도 직접 쓴 적이 없다는 점! 언젠가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고 피식 웃음이 났었다. 이분들은 머리로 글을 쓴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살아버린 사람들인 것이다.
여기 공자에게 바치는 춤이 있다. 평생을 수고하며 이 나라 저 나라를 헤매 다닌 공자에겐 옛날 주나라 문왕 무왕의 태평성대가 이상향이었다. 그의 세계관은 위계에 의한 질서가 엄연하고 조화를 이루는 세상인바 그에게 춤과 음악 역시 질서 정연한 조화가 핵심이겠다. 공자는 엄격한 스승이었다. 찾아오는 자 누구라도 가르쳤지만 배움의 열정이 없는 자, 어리석은 자는 가르치지 않았다.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애태우지 않으면 가르치지 않는다. 안타까워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한 모퉁이를 보여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지 못하면 다시 일러주지 않는다.” 그의 세계는 높고 조밀하며 후손과 제자들에 의해 금강석처럼 닦여져 왔다.
안무가가 오랫동안 공들여 공자의 세계를 탐구해왔음을 안다. 과연 그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이 춤 속에서 구현 될 것인가. 관객은 과연 흩어지는 춤사위 속에서 한모퉁이를 보고 다음 모퉁이를 찾아 낼 것인가. 춤추는 맛을 아는 자와 춤보는 맛을 아는 자가 드물게 만나는 현장이 될 것인가.

연대기
무용극이다. 공자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는 연대기. 장면을 따라 대략 간추린다.
#1. 시작은 무대 좌측 뒤에 9명, 우측 앞에 9명이 나무와 물이 되어 자연적인 질서를 이루고 있다. 한 여인이 슬쩍 나타났다 사라지고 산천초목은 성인의 탄생을 기다린다.
#2. 여인이 무대 우측에서 붉은 치마를 크게 펼쳐들고 성인이 탄생한다. (관객을 등지고 있다.) 탯줄같은 붉은 줄은 무대를 가로 지르며 길게 늘어져 사라진다.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인상적인 장면. 길고 긴 붉은 탯줄은 태어나는 아이가 강렬하고 긴 생명을 얻게 될 것을 암시한다.
#3. 논어의 몇몇 글이 내레이션 되면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베푼다. 모두 책(죽간)을 높이 들고 활기차게 움직인다. 공자는 말만하는 스승이 아니다. 자신이 말한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저 엄숙한 공자가 아니라, 젊고 힘있는 캐릭터로 묘사된 것이 인상적이다. 공자의 춤은 경쾌하다.
#4. 무대 위에 거문고 줄이 놓여있다. 좌측 앞에는 무용수들이 음표처럼 도열해 있고 줄 사이를 오가는 공자의 연주에 따라 차례대로 조화롭게 움직인다. 클래식 발레 『백조의 호수』의 백조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양. 이것은 #1의 자연스러운 질서가 아니라 공자의 인위적인 위계질서다. 공자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5 공자와 제자들이 동분서주한다. 허나 고되기만 할 뿐 그들의 세계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씀(죽간)이 바닥에 버려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주워 모으기도 한다.
#6공자가 무대 뒤로 사라진다.(죽음)
#7붉은 옷을 갖춰입고 공자에게 제를 올린다.

내가 생각했던 공자가 아니네
공자라는 이름과 문묘제례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지루함을 걱정했던 관객들은 놀랐을지도 모른다. 공연은 간결하고 재미있다. 가수 이상은의 「공무도하」는 10년 전에도 놀라움이었고 지금도 조금 당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굳이 공자의 삶을 연대기로 풀어낸 것이나 노래를 삽입한 것 등은 보다 공자의 세계와 가르침을 쉽고 간결하게 그러나 빼먹지 않고 풀어내려는 작가의 고심의 흔적이다. 각 장면들은 조밀하게 짜여져 있고, 공연전체를 끌고 나가는 완급의 조절에서 여유마저 느껴진다. 이번 작품은 첫 공연 이후 10년 넘게 발전을 거듭한 완성작이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내가 알고 있는 공자와 다르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지고지순
죽은 공자가 한국에서 다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지금 겪는 한국병의 근원이 그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한국의 장점이 그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공자’를 무용극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분도 많겠다. 무엇이 바른 것인가. 여기 퇴계의 「도산십이곡」 중 한 편을 소개한다.

순풍(淳風)이 죽었다는 건 진실(眞實)로 거짓말
인성(人性)이 어질다는 건 진실(眞實)로 옳은말
천하(天下)에 허다영재(許多英才)를 속여 말씀 하실까

성현은 거짓을 말하지 않으셨다. 그저 현세의 우리가 짓고 까부는 것일 뿐. 다시 한 번 무용극 『공자』를 통해 공자의 세계가 지고지순함을 확인한다. 계속 발전해서 밝게 빛나길 기대한다.

공유가 훨씬 멋질 테니!
한국에 사는 공씨들은 대부분 공자의 후손이다. 곡부 공씨. Y염색체가 남성의 자손에게 특질적으로 유전되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론적으로 모든 공씨 남성들은 같은 Y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2000여 년 전 공자와 현재 한국의 배우 공유는 같은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 공유는 공자의 80세손쯤 될 것이다. 게다가 유전자는 단순 신체정보뿐 아니라 기억 감정까지도 담고있다는 것이 최신 연구결과이다(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 배우 공유의 모습이나 태도에서 공자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까. 허나 누군가 공자 모습을 찾으려 공유 얼굴을 들여다 보다간 먼저 그의 사생팬이 되고 말 것이다. 공유가 훨씬 멋질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