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좌담

안성수(安晟洙) 이정희(李丁姬) 정기헌(鄭基憲)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전 중앙대 무용과 교수 춤평론·사진 작가

한국 포스트모던 댄스의 개척자 이정희의 50년
정기헌 _ 오늘 현대무용가 이정희 선생의 50주년 기념공연과 현대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지난해 12월 국립현대무용단 신임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안성수 선생과 국립현대무용단이 나아갈 방향과 위상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이정희 선생은 지난 12월 50주년 기념공연을 재미난 공간에서 하셨습니다. 서울역 바깥에 있는 RTO였는데, 거기가 예전에 군인장병들이 대기하던 장소였다고 들었습니다. 50주년 기념공연을 준비하시게 된 계기나 그때의 소감을 말씀해주시죠.
이정희 _ 제가 현대춤에 입문한 50년의 세월과 어느덧 제 나이가 벌써, 말하기는 싫지만 (웃음) 70세 생일을 맞이하게 되어 생일을 축하한다는 의미를 갖고 싶었고, 마치 생일파티 같은 공연을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공연 시작할 때 케이크를 들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으면 하는 그런 생각도 있었어요.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것과 지금도 춤을 추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의 공연이었는데 프로시니엄의 무대가 아닌 큰 창고형 공연장이 맘에 들어 전시와 공연을 한 공간에서 할 수 있었죠. 공연은 늘 긴장되고 힘든 것이지만 좀 즐기고 싶었던 것이 이번 공연의 취지였어요. 그래서 사진과 영상 기록물들과 대표작품 『살푸리』 연작 중에서 『살푸리 80』과 『살푸리 9』에서 좋은 씬만 발췌해서 오래 전부터 함께 한 제자들과 같이 옛날의 작품들을 다시 기억해내고, 만나서 춤추고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는 것이 안타까웠으니까요.
이번에 춤지에서 화보로 한 페이지를 꾸며주시고, 댄스포럼서 「‘한국 포스트모던 댄스의 개척자’이정희의 50주년」이라고 큰 타이틀로 기사를 써주셔서 저로서는 선물 같은 그런 공연이었죠.
정기헌 _ 이정희 선생은 현대무용가의 1세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술사회에 현대춤이라는 말이 알려진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활동을 해오신 분이지요. 모던 댄스의 시작점에 서신 분이고, 또 1980년대에 포스트모던 댄스라는 용어가 나오면서 그 개척자라는 말을 들으셨죠. 그런데 춤에 있어서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구분될 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정희 _ 포스트모던은 후기 현대무용(Post modern dance)이란 용어로 1962년에 ‘머스 커닝햄’의 제자들이 뉴욕의 ‘저드슨 처치’라는 교회에서 공연을 시작하면서 태동된 말이에요. 그때 공연한 무용수가 루신다 차일드, 트리샤 브라운, 즉흥춤의 테이빗 고든 등 이 공연을 기점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시자들이 됐죠. 20세기 현대 예술의 사조로 봐야죠. 그래서 극장이 아니라 교회를 택하고 새로운 형태의 공연으로 관객과 가까이 만나게 된 거죠.
루신다 차일즈는 『벽을 걷는 사람』 등의 공연에서 운동화를 신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춤을 췄어요. 춤의 역사는 토슈즈에서 맨발로 그리고 운동화를 신었죠. 20세기 중반 현대예술은 새로운 흐름을 찾고 있었고 그러니까 모든 기존 현대춤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우리 삶 속에 춤이 가까워지는게 포스트모던의 취지와 의의라 생각합니다. 우선 공간의 확대로 극장에서만이 아닌 어디서든지 춤추었고 운동화를 신고 우리 곁에서 다른 장르와 만나면서 지금의 융합이라는 장르의 태동으로 봐야 하겠죠. 현대 예술을 태동한 20세기는 위대했다고 하지만 또 새로운 시대 21세기는 다른 창조를 태동하고 있어요. 우리 예술가들은 이 시대적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저의 춤을 포스트모던의 개척자라고 칭해주신 건 1980년부터 시작한 일련의 작품 중에 ‘거리의 춤’『봄날 문밖에서 춤』이 있습니다. 춤을 문밖으로 끌어낸 1호라서 그런 의미도 있겠고 영상이나 여러 시도들로 작품의 영역을 넓힌 의미라 여겨집니다.

영상과 춤 작업을 같이 하며 한국 현대춤 1세대로서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어 행운
정기헌 _ 이정희 선생은 영상을 활용한 작품들을 꽤 오랫동안 발표하셨습니다. 남편이신 이동현 선생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작품을 준비했겠구나 짐작되는데요. 어떤 안무가 보다 작품에 대한 이해와 밀도 높은 영상이 접목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무용계에서 영상을 많이 쓰기는 하지만 단편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아서 더욱 그렇게 생각됩니다.
이정희 _ 춤은 무대에서 표현하는 예술인데 영상이 무대 위에 도입이 되면서 표현의 확대이지요. 외부의 자연물이 들어온다든지, 아니면 우리가 무용 속에서 보기 어려운 클로즈업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영상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데 그런 것들이 춤과 만났을 때 사람들을 시각적인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죠. 영상과 춤 작업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 현대춤 1세대로서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이번 50주년 공연을 준비하면서 보니까 그동안의 공연 기록이 무척 많더라고요. 남편이 공연을 할 때마다 늘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니까요. 그래서 영상물을 편집하고 줄이는 데에 많이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런 기록들이 있었기에 이번 50주년 공연에서 전시와 공연을 한 공간에서 할 수 있었고요. 서울역RTO는 관객들과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좋은 공연장이었어요.
정기헌 _ 안성수 예술감독께서는 지난 12월1일부터 출근을 하셨지요? 국립현대무용단에 대한 구상을 전부터 가지고 계셨겠지만 국립현대무용단의 조직구성원들과 조율하면서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실 것 같습니다. 예술감독을 맡은 소감을 말씀해주시고, 앞으로 3년간 어떻게 해나가실지 구상한 부분도 궁금합니다.
안성수 _ 3년은 굉장히 짧은 기간이에요. 2017년 계획을 2016년 12월에 잡는 건 좀 말이 안 되지만, 어쨌든 그때 계획을 잡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2018년 계획을 하고 있고, 2018년 계획의 연장선상에서 2019년 계획을 또 잡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3년이 금방 지나갑니다. 열심히 하다보면 더 빨리 가겠죠? 지금으로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 안에서 열심히 하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정희 _ 3대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부임을 축하드려요. 우리 모두가 기대합니다. 국립은 전년도에 그 다음해를 기획해놓고 있는데, 그럼 그 계획을 그대로 이행해야 하는 건가요? 예를 들자면 전 예술감독이 2017년 그 전에 공연이나 예산 등 계획을 쭉 세워놓았을 텐데, 그대로 이행하는 건가요?
안성수 _ 안애순 예술감독이 원래는 6월에 임기가 끝났는데 그동안 계속 공석이다 보니 아마 일부러 계획을 안 해놓으신 것 같아요. 다음 사람이 와서 해야 되는데 본인이 미리 계획을 세워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신 듯합니다. 물론 2017년 기본적인 대관 때문에 행사는 잡혀있었어요. 안무가 초청 기획, 해외 안무가 초청 기획 등은 계획되어 있었고, 다만 그걸 누가 하는지는 정해놓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런 점에 대해서는 제가 부담이 좀 덜했었어요. 하지만 공연 기획 자체를 빨리 해야 되니까, 시간이 좀 촉박하긴 하더라고요.
정기헌 _ 지난해 6월 파리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이 공연할 때 안성수 선생이 안무한 작품과, 안애순 당시 예술감독의 작품이 함께 무대에 오른 건가요?
안성수 _ 안애순 예술감독은 『이미 아직』이라는 작품을 국립현대무용단 레파토리로 해서 가셨고, 저는 『혼합』이라는 작품을 초연했죠. 또 그때 국립무용단은 호세 몽딸보의 작품 『시간의 나이』를 공연했고, 김판선 씨는 솔로, 이인수 씨는 듀엣 공연을 하는 등 다섯 팀이 공연을 했어요. 한 무대는 아니고요. 안애순 감독과 김판선 씨, 이인수 씨가 우리 공연보다 일주일 전에 하셨고, 국립무용단과 저는 같은 주에 공연했어요.
정기헌 _ 지금 연간 계획이 나와 있고, 다음달 3월 공연할 『혼합(Immixture)』(3월24~26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계실 텐데요. 그러면 지금 단원의 인선이나 오디션 이런 것들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요? 지금까지의 전례를 보면, 국립현대무용단은 오디션 중심으로 단원을 운용하고 있는데, 작품의 준비 기간을 정해서 무용수들 선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안성수 _ 여태까지 진행된 상황을 보면 프로젝트마다 오디션을 통해 무용수를 뽑아서 진행되어 왔어요. 그래서 저도 7월에 『제전악 - 장미의 잔상』(7월28~3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이라는 신작을 하는데, 그 작품을 위해서 오디션을 길게 했어요. 12월부터 1월까지 해서 지금 14명이 뽑힌 상태입니다. 『혼합』 작품을 했던 무용수들도 오디션을 통해서 들어왔죠.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우리 삶 속에 춤이 가까워지는게 포스트모던의 취지와 의의일 것
정기헌 _ 우리 무용계에 오랜 숙원이던 국립현대무용단이 만들어진 것도 대단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많은 현대무용가들이 하나된 목소리로 주장했었지요. 이정희 선생은 그때 초대 이사를 하셨는데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이정희 _ 국립현대무용단은 타 단체에 비해서 늦게 국립단체에 속하게 되었는데 현대춤을 하는 사람들의 오랜 숙원이었어요. 그동안 현대무용가들이 국립무용단 설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유인촌 씨가 문화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성사가 되었습니다. 유인촌 장관은 연극인이면서 사실은 현대춤도 하신 분이라 춤에 대한 이해가 많으셨습니다. 오랜 숙원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이 창단되었고 그만큼 기쁨과 기대도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초대 예술감독은 홍승엽 씨가 임명되었고 그리고 2대 예술감독에 안애순 씨가 맡아 왔죠. 제가 초대 이사회를 하면서 한 말은 예술감독과 행정의 분리였어요. 예술감독이 안무에만 전념해주기를 늘 주장하고 요구했어요. 예술감독은 안무에만 전념해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에 주력해주기를 바랐는데 국립 시스템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젊은 안무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물론 국립단체에서 지원해서 젊은 예술가들이 기회를 얻고 좋은 점도 있지요. 하지만 협회나 다른 단체들에서 비슷한 행사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국립단체만큼은 관객들을 위한 좋은 작품을 올려주는 일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제작비 걱정도 안 해도 되고, 좋은 스태프들을 쓸 수 있고, 무용수들도 수준이 높으니까 정말 좋은 작품을 올려서 관객들한테 보여주고, 관객을 넓혀가고, 공연예술에 기여하는 일에 전념해주기를 요청했던 거죠. 그러한 것이 우리 국립현대무용단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안성수 _ 이정희 선생께서 지금 굉장히 좋은 말씀을 해주셨고, 저도 선생의 말씀에 100% 동의를 합니다. 일단 관객과 가까이 해야 되는데, 그동안 제 작품 하느라 바쁘다 보니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 그 부분이 가장 아쉽고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레퍼토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제 작품뿐만 아니라 외부 예술가의 레퍼토리도 국립현대무용단의 레퍼토리로 삼아서 많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또 지방과 해외의 많은 관객을 만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정희 _ 지금 안성수 씨가 3대 예술감독인데, 1대, 2대를 거쳐 3대까지 왔으니 국립단체의 변모를 기대합니다.
정기헌 _ 많은 사람들이 국립현대무용단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 나와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는 예술감독은 3년이란 임기의 제한이 있고, 무용수들은 계속해서 바뀔 수밖에 없으니 예술감독과 무용수가 소통하면서 명작을 만들어 내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좋은 작품이 나와도 예술감독과 무용수가 달라졌으니 수정을 하면서 더 좋은 작품으로 다듬을 수가 없지요.
안성수 _ 지금껏 만들어온 룰이 많이 있고, 거기에는 제가 동의하지 않은 룰도 많아요. 예를 들면 무용수 같은 경우에, 아마도 저는 제가 뽑은 14명의 무용수들과 3년 간 쭉 할 것 같아요. 1년에 두 개 정도 신작을 할 예정인데,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지거든요. 물론 무용수들의 사정도 있겠죠. 지금 있는 14명의 무용수 중에 2명 정도는 상당히 잘 알려진 무용수라서 그들이 3년간 저와 계속 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단지 한 번 같이 해보자고 만난 사람들인데, 3년간 계속 할 수는 없고 인원을 채우면서 해야 하겠지요.

문화대중들이 안무가 누구누구의 신작을 기대하면서 공연장을 찾게되길
이정희 _ 국립현대무용단에 새로운 감독이 오셨으니 정말 새롭게 현대춤을 부흥시켜주시기를 기대합니다. 현대무용단은 무용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안무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안무자의 철학과 안무자가 끌고 가는 방향에서 작품이 이루어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그 무용단의 생명력을 갖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저는 국립현대무용단이라는 이름이 유명한 게 아니라 안무가 안성수가 유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무자를 보고 현대춤을 보러 가는 거죠. 독일의 ‘피나 바우쉬’ 라는 분이 ‘부퍼탈’보다 더 유명했던 것처럼, 그 안무가의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신뢰하고 공연을 보러 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안무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관객수준은 높습니다. 좋은 작품을 통해 관객이 감동하고 위로 받을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예술이겠죠. 그럼 관객도 늘어날 것이고 침체되어 있는 무용계도 다시 살아나지 않을 까요? 너무 부담을 드려 죄송하군요. 굉장히 어깨가 무거우실 것 같습니다.
정기헌 _ 문화대중들이 안무가 누구누구의 신작을 기대하면서 공연장을 찾게 된다면 정말 좋겠지요. 안성수 예술감독과 지난 1, 2대 예술감독 두 분은 실제로 지난 10여 년 전부터 우리 현대춤의 대표적인 안무가로 활동해왔었죠. 국립현대무용단이 만들어지고 7년이 되어 갑니다. 그러나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국립현대무용단이 충분히 노출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국립발레단과 국립무용단은 그 기간이 오래된 만큼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국립현대무용단은 어떤 위상이나 포지션을 가져야 할까요? 국립현대무용단이 10년 정도 후에 어떤 기대를 가지면 좋을까 그런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안성수 _ 제 소망은 국립현대무용단이 공연한다고 하면 보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 거예요.
독일에는 도시마다 극장이 있고, 정말 극장이 많아요. 제가 ‘슈바인푸르트’라는 도시에 누굴 만나러 갔었는데, 굉장히 조그만 도시에요. ‘슈바인’이 돼지고기인데, ‘슈바인푸르트’는 돼지를 많이 기르는 시골 도시에요. 거기에 극장이 하나 있는데 무척 좋더라고요. 공연을 보러 갔는데 아무 데에서도 안 보이던 멋진 시민들이 잘 차려입고 공연장에 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분들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건지 극장 관계자와 얘기를 해봤더니, 이 극장에서 하는 공연은 주민들이 무조건 신뢰하고 보러 온대요. 그래서 매번 백퍼센트 예매율을 기록하고, 그 수익을 가지고 극장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관객들이 무조건 신임해서 온다는 거예요. 그런 시스템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꿈도 그거죠. 국립현대무용단이 하면 무조건 신임해서 일단 가고 보는 거예요. 공연이 재미있든 아니든 관객과의 신뢰가 쌓였기 때문에 보러 간다는 거죠. 제가 멀리 보고 3년 동안 노력해서 그렇게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겠죠.

젊은 사람들이 예술적인 것, 문화적인 것들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데 우리 무용만 유독 왜 이렇게 저변 확대가 안 되고 있는지 의아스러워
이정희 _ 우리는 무용 관객의 저변이 많이 얕아요. 무용 인구가 차차 줄어들고 있고, 따라서 그 얕은 저변마저 줄어들고 있어요. 제가 최근에 취미로 그림을 시작했는데, 미술 분야를 보면 선호층이 굉장히 두터워요. 요즘 갤러리에 전시를 보러 많이 다니는데 젊은 사람들이 참 많이 눈에 띄거든요. 그리고 ‘나 요즘에 이런 전시회에 갔어’하고 SNS에 자랑 삼아 올리고 즐기는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대림미술관 등의 사진작가전에 가보면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보면서 부러웠어요. 물론 외국의 유명한 작가를 초청한 거죠. 또 음악 분야도 보면 인구도 많고 저변이 두터워서 좋은 음악회에는 사람들이 꽉꽉 차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예술적인 것, 문화적인 것들에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무용은 왜 이렇게 저변 확대가 안 되고 있는지? 무용 인구도 점점 줄어들고 저성장 시대에 무용 역시 굉장히 침체기에 빠져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새로운 예술감독에게 기대를 갖고 싶습니다.
정기헌 _ 안성수 예술감독에게 모든 기대를 건다고 부담을 주시네요.(웃음)
이정희 _ 완전 부담을 드렸네요. 어깨가 무거우실 것 같아요.(웃음)
정기헌 _ 무용은 말이 아닌 춤으로 주제를 풀어가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어렵지요. 무용계에 관객층이 많지도 않은데 새로운 관객 보다 늘 보는 사람들이 극장에 앉아 있으니 현대춤 속에 들어있는 약간의 은유를 두 번, 세 번 꼬게 되고, 일반인들은 전해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요. 이게 바둑인지 오목인지조차 모르고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은 즐길 거리가 많은 시대인데,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고 싶지 않겠죠.
이정희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괜찮은 사진작가의 전시나 미술전시가 있으면 그걸 많은 사람들이 보러갑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 속에서 굉장한 에너지를 느낀단 말이죠. 그것들을 친구들에게 알리려고 SNS에 올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알리게 되죠. 그런데 현재 우리 현대무용계에서 나오는 좋은 작품들이라고 하는 것들은 누가 봐도 에너지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리고 굉장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 많은데, 그 문턱까지 오게 하는 과정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나라 국민 중 3천만 명 이상이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뭐든지 볼 수 있는데, 그 사람들을 위한 1분, 2분짜리 영상을 제공하는 무용가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영상을 보다가 결국 극장으로 오게 하는 이런 과정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시도가 거의 없습니다. 슈퍼스타가 나타나지 않는 한 무용계의 확장은 현재로선 요원한 상태입니다.

즐길 거리가 많은 시대,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고 싶지 않아
이정희 _ 현대사회에서 춤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 굉장히 많이 들어와 있거든요. 그런데 대충춤, 대부분 스트리트 댄스라든가 힙합 등이고 그런 것들만 상당히 커지고 즐기고 있어요. 반면 순수무용 쪽은 많이 침체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겪고 있는 거죠.
1970년대 말과 1980년 초까지 뉴욕에서는 현대춤이 아주 왕성했어요. 그런데 몇십 년이 지나고 지금 가보면 뉴욕도 그런 스튜디오가 다 외곽으로 빠지고 하여튼 굉장히 썰렁해졌어요. 현대춤이 왕성했던 시절에는 왜 사람들이 현대춤을 좋아했을까, 그때 관객이 왜 그렇게 많았을까요? 그때는 공연장에 가면 무용예술가들뿐만이 아니라 일반예술가들도 무용을 많이 보러 다녔어요. 그래서 관객들 수준이 좋았습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마사 그레이엄, 앨빈 애일리, 호세 리몽이라든지 이런 분들의 작품 속에 굉장한 철학을 부여해서 안무를 하고 춤을 췄던 거예요. 무용이 그냥 즐기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고 춤 안에 안무자의 정신과 철학이 들어있는 작품을 보고 관객들이 몰려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철학이 부재한 지금의 시대에 무용작품에도 철학이 부재한 것 아닌가, 철학이 바탕이 되면서 시대를 입혀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성과 재미
정기헌 _ 국립현대무용단에 대해서 제가 궁금한 것 몇 가지를 질문하겠습니다. 올해 상반기와 내년 작품을 계획하고 계실 텐데, 일 년에 두 작품을 신작을 하시는 건가요? 신작과 외부 안무가를 초청하는 프로그램도 예술감독 주관으로 진행하실 텐데, 작품을 선정하실 때 고려하는 점이나 선정 기준을 소개해주시죠.
안성수 _ 기획팀장이 공채로 새로 오셨는데, 다행히 그분이 저와 여러 해외 일들 했던 분이라 그분하고 많이 상의를 하죠. 물론 기본적인 기준은 제가 판단하는 거죠.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는 거죠. 그런데 11월에 유명하고 재미있는 해외 안무가의 작품을 유치하기에는 이미 늦었어요. 그래서 좀 힘들었는데, 계속 찾아서 스위스 안무가 두 사람을 유치했어요.
제 기준은 관객의 눈높이에서 엔터테인이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 하는 것이에요. 엔터테인이라는 말은 예술적이라는 말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는 예술성을 잃지 않고 엔터테인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면에서 제가 판단을 하는 거죠. 그런데 다행히 요즘 많은 안무가들이 그런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정기헌 _ 국내 초청 예술가들도 같은 기준으로 하시나요?
안성수 _ 내년에 공연하게 될 분들을 보면, 박순호 씨, 김용걸 씨, 김설진 씨, 김보람 씨 등이 라인업이 됐어요. 김용걸 선생이 최근에 만든 ‘볼레로’ 같은 경우에는 제가 보기엔 엔터테인하고요. 모든 안무가들이 항상 재밌을 순 없는데, 이번에 김설진 씨도 그렇고 김보람 씨도 그렇고 다 재밌을 것 같아요. 다 그런 기준이죠. 사실은 예술 단체들이 평창 올림픽 1년 전에 공연을 해요. 국립발레단도 하고, 국립무용단도 하고 국립단체들이 많이 하는데, 저희는 보낼 프로그램이 없더라고요. 2월에 공연 페스티벌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관객을 가장 흥겹게 해줄 수 있느냐 생각하고 제가 작품을 골랐어요. 박순호 씨의 『유도』, 김보람 씨의 『바디 콘서트』 등이에요. 그냥 페스티벌처럼 즐길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예산을 그분들에게 주고, 그분들이 가서 공연을 하는 거죠. 국립현대무용단이 생각하는 페스티벌에 맞는 현대작품들을 골랐고, 그런 식으로 판단하려고 해요. 그런데 그 기준이 아까 말씀하셨던 관객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기헌 _ 다른 예술 분야나 다른 장르랑 협업을 해서 해보고 싶은 작품들이나 구상이 있으신가요?
안성수 _ 글쎄요. 저는 항상 음악과 함께 하는 것도 협업이라고 생각하고, 무대미술도 그렇고, 조명도 그렇고 다 협업이라고 생각해요. 무용인들이 혼자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조명도 있고, 무대미술도 있으니까요. 저는 작곡가와 협업하는 걸 제일 좋아해요. 7월에 하는 『제전악』이라는 작품도 협업이에요. 젊은 신예 국악작곡가 라혜성 씨와 같이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라혜성 씨가 2분짜리 곡을 만들어서 녹음해서 보내주면, 저는 그걸로 안무를 하고, 그런 작업을 반복해서 지금 다섯 씬 정도를 만들었어요. 제 생각엔 그게 협업이죠. 그리고 무대미술, 의상 등 거기에 여러 가지를 끼워 넣는 거죠. 그렇게 여러 예술가들이 다 모여서 하고 있어요. 특별하게 국립현대무용단이라서 이런 협업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없고, 늘 하던 대로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거죠.
이정희 _ 첫 신작작품이 정해지셨나요?
안성수 _ 네. 토월극장에서 7월 말에 하는 데요. 『제전악 - 장미의 잔상』이라는 걸 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오디션을 통해서 뽑은 14명의 무용수와 같이 지금 연습하고 있습니다.
정기헌 _ 국립현대무용단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공연장이 있으면 좋겠네요. 지금 현실에서 어떤 극장을 주로 사용한다고 하기도 그렇고, 새로 만들기는 요즘 더 어려운데, 극장까지 있다면 좋겠네요.
이정희 _ 아르코가 무용 공연을 하기에는 좋은 극장이에요. 물론 전용극장이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극장을 탓할 건 아닌 것 같아요. 무용이 극장예술이긴 하지만, 그래도 극장도 파괴해가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조금 새롭게 출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에 좋은 무용수들이 많고, 좋은 안무자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좋은 작품이 안 나오고, 왜 관객 수가 적은지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안 선생이 이번에 국립현대무용단 첫 작품 안무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시겠지만, 대표직을 갖고 계시니까 어떻게 하면 관객이 좋아하고 와서 감동도 받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그런 공연이 무엇인가를 좀 두루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예술성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관객을 어떻게 하면 끌어들이고 화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첫 작품에서 굉장히 많이 신경써주시길 바라요.
사실은 안무에만 전념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안무자가 그런 것까지 하기는 참 어렵죠. 그래도 주위에 기획력을 갖고 있는 좋은 스태프들을 기용하시고 그런 노력을 통해서 우리 무용이 침체기에서 벗어나야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에요. 우리가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고, 변하지 않으면 못 산다는 게 모든 사람의 말인데, 우리 무용은 더 먼저 빠르게 가야 되는 예술임에도 그런 세월의 변화에 너무 둔감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여기서 이런 얘기를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무용협회를 지적하고 싶어요.(웃음) 지금 무용협회가 50년이 흘렀는데, 회장 4~5명이 이끌어 왔어요. 한 번 했다 하면 십 년 이상을 하는데, 그건 다른 분야에선 있을 수도 없는 거거든요. 기성세대부터 변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후에는 젊은 세대들이 변화를 이끌어줘야 돼요.

국민 중 3천만 명 이상이 손에 스마트 폰을 들고 다니면서 뭐든지 볼 수 있는데, 그들을 위한 1분짜리 영상을 제공하는 무용가가 없는 현실
정기헌 _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에 관해서 질문하겠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면서 오디션을 통해 많은 무용수들을 만나셨죠? 예술감독의 주관으로 작품에 적합한 무용수들을 뽑는 거잖아요. 많은 무용수들이 도전을 했을 텐데, 지원한 사람들의 수준은 어땠나요?
안성수 _ 다들 아시겠지만, 서울에도 무용과가 굉장히 많아요. 그리고 퀄리티가 다 높아요. 그런데 실상 오디션에는 안 와요. 세종대도 있고, 중앙대도 있고, 성균관대도 있고, 한성대도 있고, 굉장히 좋은 무용수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오진 않아요. 이번 오디션에도 약 200명 가까이 모였는데, 거기서는 많이 안 왔어요. 다들 각자 하는 일에 굉장히 열심인데, 국립현대무용단이 오디션을 한다고 해서 꼭 오진 않아요.
정기헌 _ 이건 농담처럼 드리는 말씀인데, 아주 잘하는 무용수가 출신 학교의 교수님이나 선생님에게 미움 받으면 국립현대에 가는 거죠.(웃음)
안성수 _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대학에서 열심히 하는데 꼭 국립현대무용단에 가야 하는가 생각할 수도 있어요. 거기서도 보람을 느끼면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니면 제가 좀 무용수를 뽑는 것을 조심스러워 해서인지 제 취향 때문인지 선발되는 무용수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인 컴퍼니를 하고 있었을 때도 한 네 명, 다섯 명 정도에요. 제 취향 탓일 수도 있어요. 제가 봐도 안타까운 것이, 14명 뽑았는데 13명이 제가 다니던 학교 출신이에요. 그런 게 안타깝죠. 다행히 세종대에서 잘 하는 무용수가 한 명 왔더라고요.
이정희 _ 굉장히 좋은 조건에서 무용을 하는 건데, 무용수들이 왜 국립현대무용단에 오디션에 참가하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데 초기 때부터 좋은 무용수들이 가지 않은 이유는 안무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 안무자의 스타일이 나하고 맞지 않을 거라든지, 가봐야 안 될 게 뻔하다든지 그런 걸 미리 판단하는 게 안타까워요. 그리고 안성수 예술감독도 한예종 교수로 계셨기 때문에 대부분 거기 무용수들이 갈 거라는 선입견도 있겠죠. 그래서 다른 학교 출신들이 아마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오디션이 오픈되어 있다는 이미지를 자꾸 심어줘야 되는데, 지금 또 보니까 몇 명 중에서 한 명을 빼고는 다 그 학교 출신이라고 하니까 그것부터 벌써… 그건 좀 지양하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성수 _ 이대 나온 학생들이 세 명 왔었어요. 너무 잘했어요. 특히 발레 전공자는 정말 잘했어요. 그런데 2차 오디션이 워크숍이었는데 하루 나오더니 포기하더라고요. 제가 하는 게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나머지 두 사람은 현대춤 전공자로 참 잘 했는데, 이 작품은 팔이 길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한 신체조건에 맞지 않아서 참 안타까웠어요.
이정희 _ 그런 경계가 없어져야 하는데 안타깝네요. 이번에 국립현대무용단 오디션을 통해서 대부분 한예종 출신들이 들어갔다고 하면 한예종 발표회와 다를 게 뭐 있냐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요. 무용계에서 그런 게 무너져야 해요.
정기헌 _ 열린 분위기에서 국립현대무용단에 많은 무용가들이 지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좋겠네요. 젊은 무용가들이 국립현대무용단에서 1~2년 정도 작품을 함께 하면 그들에게도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돼야 되겠죠.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무용가들은 적어도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사람부터 대부분 10년 이상 트레이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20~30대 젊은 사람들 중에 한 분야에서 10년~15년 이상 열심히 한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자원들이 춤 사회에는 많이 있는데 이들에 대한 활용이 미비한 실정입니다. 늘 문제로 대두 되는 것이지만 대학무용이 40년 이상 계속된 상태에서 이대로 계속된다면 곤란하겠다는 지적을 피할 수가 없겠습니다. 이 얘기는 늘 하는 것이지만, 연초에 나누는 이야기니까 두 분 모두 우리 대학교육에 관해 한 말씀씩 해주시죠.
이정희 _ 우리나라에 무용과가 무척 많은 편이에요. 1980년대에 경제가 좋아지면서 무용과가 많이 늘어났어요. 지금 세월이 많이 흐르면서 과연 대학 무용과 출신들이 사회에 나와서 어떤 역할들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어요. 무용과 졸업생을 많이 배출하고 있지만, 사회에서 졸업생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기반이 굉장히 적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예술가들이 대학 교수가 됐지만, 대학이 예술가들을 양성해내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대학이 예술가도 길러내야 하겠지만, 동시에 무용과 출신들이 사회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학 무용과가 너무 예술에만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와서 할 수 있는 것들은 굉장히 적어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실업자를 양성하는 곳이 될 수도 있어요. 또 그들이 10년 이상씩 무용을 했는데 포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젊은 무용수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춤이라는 것은 한 번 경험해보면 버리기도 어려운 분야라서 쉽지 않거든요. 그런 언저리에서 굉장히 고민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대학 교육이 좀 더 다양해져서 사회에서 필요한 교육과 예술인들을 길러내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무용교육이 좀 더 다양해져서 사회에서 필요한 교육과 예술인들을 길러내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정기헌 _ 안성수 선생께서도 대학교육에 대해서 한 마디 해주세요. 창작과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하셨는데, 대학 무용교육에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이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인재를 배출한다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안성수 _ 저는 창작과라는 곳에서 가르치지만, 창작과라는 곳이 안무가를 만드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회에서 쓸모 있는 것을 교육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실기만 많이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제 생각에는 다양한 도구 사용법을 가르쳐주면 학생들이 자신에게 맡는 도구를 찾을 거라고 봐요. 그 도구를 사용해서 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그게 보람된 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그런 점을 중점적으로 생각을 했는데, 어떻게 바뀌어야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계속 지켜보면서 노력해야겠죠.
이정희 _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무용계에 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몇 년 됐습니까?
안성수 _ 22년째에요.
정기헌 _ 현대무용이란 예술은 다양한 창의적 사고가 존재해야 더욱 활력이 넘치는 분야입니다. 무용을 전공한 사람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창의적 활동을 한다면 좋겠는데 지금 무용계의 여건은 그렇게 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저는 화학을 전공하고 건축과로 대학원을 갔습니다. 건축계에서도 건축공학과로 구성된 사회에서 디자인의 한계가 나타났고 대안으로 타 분야의 전공자들로 구성한 건축대학원이 대안으로 등장했던 것이지요. 수학이나 철학을 베이스로 공부했던 사람들이 건축계에 들어가서 새로운 활력을 만들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현대춤에도 그런 프로그램이나 대학이 있다면, 좀 재미난 활력이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정희 _ 현대춤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창조성이거든요. 그 창조성을 바탕으로 해서 테크닉이 받쳐주는 거죠. 테크닉보다 창조성이 더 위라는 거죠. 그래서 현대춤은 테크닉으로 추는 춤이라는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돼요. 클래식하고는 다른 장르죠. 그래서 그 창조성을 생명으로 가지려면 인간의 다양한 정신과 시대의 흐름 등을 감지해야 되기 때문에,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어서 현대춤 안무에 상당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용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획기적인 아이디어에 주목하고 있어요. 이제는 그냥 뻔한 춤을 추면 전혀 감동을 받지 않는데, 우리 무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테크닉에 치우쳐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춤이라는 건 1~2년에 되는 게 아니고 굉장히 오랜 세월을 거쳐서 아름다운 움직임을 몸으로 표출해내는 거라서 테크닉에 치중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도 현대춤은 그것보다 창조가 더 먼저에요. 지금 융복합 시대라고 하는데, 시대 흐름에 맞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안성수 _ 제가 처음 무용을 하게 된 계기도 눈앞에서 보는 인체의 경이로움 때문이에요.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실제로 땀이 날리는 것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무용처럼 그렇게 실질적으로,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예술이 저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춤에 빠져들었어요.
저 역시 창조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정희 선생 말씀에 동감하는 이유가, 테크닉을 생각하면 너무 인위적인 게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보일까, 그게 창조성과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아이디어들이 우선적으로 돼서 잘 움직이고 멋있지만 전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먼저 있어야 되겠죠. 그게 없으면 사실 전국체전이 되는 거죠. 물론 스포츠도 정말 아름답지만, 어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점수를 매기는 게 되면 안 되죠.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여러 분야가 함께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창작과에도 대학원 코스가 있는데, 거기에는 진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있어요. 최고의 테크니션도 있죠. 이정희 선생 따님도 저희 과에 있고 최고의 무용수죠. 그런 사람들이 있는 반면, 연대 신방과 나온 사람도 있고, 무용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도 있고, 이번에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사람도 들어왔어요. 이런 분야의 사람들이 만나니까 더 즐거운 것 같아요. 사실 이정희 선생 따님 같은 경우는 대중적으로 굉장히 유명하고 바쁘잖아요. 그런데 대학원 수업까지 들으려면 굉장히 힘들 텐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환경이 재미있어서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국립현대무용단이 자주 갈 예정
정기헌 _ 안성수 선생의 올해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개인적으로 준비하시는 것도 있으실 거고, 국립현대무용단에서 것도 소개해주시죠.
안성수 _ 올해 계획은 3월에 『혼합』이라는 작품 하고, 6월에 『세 개의 볼레로』라는 작품을 합니다. 그건 김용걸 선생이 했던 37명이 출연하는 볼레로를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지금 예산 때문에 지휘자와 아직 확실하게 이야기가 돼서 결정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아마 오케스트라로 김용걸 선생이 하실 거예요. 김보람 씨는 아마 다른 오케스트라로 볼레로를 만들 거고, 김설진 씨는 국악 예술가와 타악기 예술가와 같이 공연할 거예요. 세 공연 다 라이브로 하는 거예요. 6월에 볼레로가 좀 화려한 공연이 될 듯합니다.
그리고 7월에 제가 『제전악』이라는 신작을 하고, 그 다음에 10월에 박순호 씨가 신작을 합니다. 또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가 배출한 안무가라고 생각하는, 다크써클컴퍼니에 있던 조슈아라는 사람이 지금 미국에서 굉장히 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두 분을 같이 엮은 이유는 두 사람 다 작년에 미국의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래된 페스티벌인 「제이콥스 필로우」에서 공연을 했어요. 그 두 사람이 신작을 할 텐데, 죠수아는 자신의 컴퍼니를 데려와서 신작 만들어서 할 거예요.
그리고 11월에는 아까 말씀 드렸던 스위스 안무가가 와서 여기서 오디션을 해서 작품을 할 예정이에요. 12월에는 안애순 선생이 기획한 『춤이 말하다』를 계속 진행할 거고요. 이번에 라인업은 김용걸 씨, 김설진 씨, 한예종 전통원 출신인 춤 잘 추는 영화배우 한예리 씨도 출연하고, 아직 확실히 정해지진 않았는데 한국무용하는 분들도 나올 듯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제가 예술의전당 기획으로 했던 『투오넬라의 백조』를 공연할 예정이에요. 핀란드 음악가들과 서커스 하는 사람들과 만든 건데, 그걸 연말 공연으로 『춤이 말하다』와 함께 묶어서 해요.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제가 중점을 두는 건 지방 공연이에요. 제가 지방 문화회관에 가서 대표님 만나느라고 힘들었는데, 저는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국립현대무용단이 자주 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벌써 얘기가 된 것도 많고요. 지방 공연이 많이 늘어날 것이고, 해외 공연도 해야겠죠.
정기헌 _ 지금 말씀하신 것만 해도 올 한 해가 금방 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품에만 전념하실 수 있는 구조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안성수 _ 일단 제가 국립현대무용단에 12월에 들어왔기 때문에 좀 바빴어요. 사실 작품 할 기회는 많다는 점에서 좋은 시스템이에요. 또 제가 원하는 만큼 연습할 수 있고, 무용수들에게 급여도 지급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2월부터 일단 11시부터 7시까지 계속 연습을 해요. 점심시간은 뺀 거죠. 그러니까 일주일에 4일, 8시간 연습을 합니다. 물론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은 있겠죠. 연습을 하루에 세 타임 정도 하는 거죠. 그런 시스템이 좋은 것 같아요.
정기헌 _ 이정희 선생님께서도 50주년 공연하신 것을 기점으로 계속 무대에 서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정희 _ 50주년을 맞아 작품을 정리하고, 점을 한 번 찍고 나니까 모든 것이 자유로워졌어요. 그동안 그리던 그림도 그리고요. 이번 2월22일 갤러리 팔레드서울 초대전에 「춤을 그리다」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갖게 되었어요. 춤을 통해서 경험한 형상들을 그림으로 확대한 작업입니다. 무용과 그림 재미있지 않으세요? 보러 오세요. 그리고 나의 두 딸 이루다와 이루마가 춤을 이어가고 있으니 춤은 나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운명 같은 거죠. 춤은 영원한 나의 사랑이고 나의 삶이니까요.
국립현대무용단의 계획을 지금 쭉 말씀하셨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기획력과 홍보력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홍보와 기획력을 넓히는 데에 노력해주세요. 사실 무용은 몸으로 표현하는 최고의 예술이고 무용관객이 많아진다면 최고의 예술을 감상 하는 것이지요. 그런 관객이 늘어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기헌 _ 오늘 이정희 선생, 안성수 선생 두 분을 모시고 현대춤과 국립현대무용단에 대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나눴는데,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이정희 선생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안성수 선생이 앞으로 써나갈 얘기 이런 걸 생각했었는데, 이정희 선생은 앞으로 써나가실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고, 안성수 선생께서는 강력하게 밀고 나가셔서 원하시는 그림을 그려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두 분과 이야기 나눠서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