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7일 인쇄
2017년 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7년 2월호 통권 492호 |2025년 7월 6일 일요일|
 

서평

 

춤이 담긴 이야기책처럼…
-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화보집 「사포의 시간」



박민경
(춤평론)

현재 전북 지역의 대표적인 현대무용단 중 하나인 ‘사포’는 원광대 무용과 졸업생들을 주축으로 1985년 출범했다. 한국 현대무용의 입지적 인물인 김화숙이 1981년 원광대 교수로 부임한 후 지역의 현대무용 운동에 열성적으로 헌신한 증거이기도 하다. 창단 때 명칭은 ‘전북가림다 현대무용’이었는데, 이는 이미 서울에서 김복희와 함께 ‘가림다무용단’을 이끌었던 전력을 담고 있다. 무용단 이름은 1990년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로 공식화되었고, 흔히 줄여서 ‘사포’로 불리고 있다. 2015년 예술감독인 김화숙 교수의 정년퇴임은 일종의 터닝포인트로서, 무용단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로 들어섰다. 어쩌면 원광대학교에 무용학과가 폐지되면서부터 예고된 기로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포만의 문제가 아닌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 간 지방의 무용학과가 겪고 있는 위기는 생존 그 자체의 문제이니까. 사포의 운명은 우리 모두의 운명과 다를 바 없다. 많은 무용학과가 통폐합의 수순을 밟으면서 결국 생명을 다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한국의 춤은 미래를 위협당하고 있다.
그처럼 어두운 미래를 앞둔 가운데서도 2016년 사포는 무용단 30주년 기념공연을 펼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춤은 바로 그처럼 암울한 현실에서 더욱 자신의 가치를 증명이라도 하듯 빛나기 마련이다. 기념공연에 대한 내용과 그간의 이야기가 「춤」 잡지 489호에 실렸는데(2016년 11월호 좌담과 관무기 등), 대학 기반이 사라진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작업들을 해나갈지 관심이 간다. 실질적으로 지역의 현대춤은 대학 무용과에 의해 성립되고 발전되었기 때문에, 무용학과 없는 지방의 춤현장을 상상하기 어렵다. 수십 년 전 무용교육을 개인 교습소에서 하던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것일까.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은 늘 답답하기만 하다. 한편, 김화숙 교수는 퇴임 후에도 ‘한국무용교육원’을 통해 활동을 이어가는데, 이런저런 좋지 않은 춤환경에서 이러한 기관의 발전방향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사포는 기념공연과 더불어 30년의 시간을 정리한 화보집 「사포의 시간」을 발간했다. 공연을 중심으로 무용단의 작품목록을 만든 것인데, 제목에서 ‘1985~2015’이라는 덧붙임이 역사적 의미를 더해주었다. 붉은색 천 재질의 양장본으로 된 책은 부록과 함께 박스 포장되어 있었는데, 부록은 김화숙의 대표작 중 한 편인 『편애의 땅』 CD와 브로슈어였다. 한국춤평론가회가 선정한 「제2회 춤비평가상」 수상작이기도 했던 『편애의 땅』은 1997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사포의 작품스타일과 정체성이 담긴 대표작에 속하는 만큼 무용단의 전성기를 이끈 공연인 셈이다. 그런 작품을 20년 만에 영상으로나마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자료는 특히 우리 현대무용의 역사를 공부하는 현재의 무용학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단연 사진만으로도 가장 돋보이는 작품 『편애의 땅』은 1995년 초연한 『그 해 오월』에 이어 제작된 것인데, 안무자 김화숙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총 3부작을 기획해 공연한 바 있다. 그 세 번째 작품은 1998년 초연한 『그들의 결혼』이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낼 수 있는 것처럼, 예술가들은 나름의 매체로 역사를 기록하여 살아남은 자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그러한 작품은 절망과 고통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다. 그러므로 예술은 하나의 희망이다. 그래서 고통이 고통으로 그려지고 슬픔을 감추지 않은 채 표현된 작품일지라도 그 가장 깊숙한 안쪽에는 희망의 씨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작품의 가치와 예술의 의미를 이야기하게 된다. 김화숙은 한국 현대무용의 실질적인 주역으로서, 소위 ‘작가주의’ 세대의 무용가다. 현대무용의 발전사를 보면, 1970년대 데뷔하여 80~90년대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확립한 안무가들이 있는데, 우리 현대춤의 주역으로 불리는 이들의 특징을 작가주의로 간주할 만하다. ‘작가로서 안무가’의 등장은 춤을 ‘(예술)작품’으로 수준을 높임으로써 사회적 입지를 확고히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런 점에서 『편애의 땅』은 한국 현대무용사에 주요작으로 남을 만한 작품으로 꼽힌다.
‘사포의 흔적’으로 담긴 사진들은 모두 공연사진인데, 그 작품명을 쭉 읊어보면 ‘거울 속의 카르멘’, ‘취한 배’, ‘오렌지 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그들은 꿈꾸고 있었다’, ‘그 해 오월’, ‘편애의 땅’, ‘그들의 결혼’, ‘9월의 신부’, ‘손을 주세요’, ‘누군가 앉았던 의자’, ‘다시 핀 그대에게’, ‘여름 달’, ‘겨울 태양’, ‘달이 물 속을 걸을 때’, ‘지울 수 없어라’, ‘그대여 돌아오라’,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Beautiful Memories(아름다운 기억)’, ‘길을 가다’, ‘눈물 어릴 나의 사랑’, ‘지나가리라’, ‘검은 태양’, ‘사포, 말을 걸다’이다. 제목 하나하나가 시적이며 문학적인 것도 사포만의 특색이다.
양질의 종이를 사용해 고급스럽게 만든 화보집은 한 편의 춤작품을 만들 듯 섬세하게 사진을 고르고 다루었을 사포의 정성과 노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 장 한 장 찬찬히 훑어보며 무용단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무엇보다 다시 ‘춤’, 그때의 시간을 되새겨보는 것은 생각보다 긴 여유를 필요로 한다. 개인적인 신념이 하나 있다면, 진정한 ‘춤’은 영상보다는 사진으로, 평론보다는 시(詩)로 남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기록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방식임을, 그래서 결국은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춤’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ㅡㅡㅡ
21.5*25cm(양장)/ 192쪽/ 2016년 발행/ 발행처 사회적기업 마당(063-273-4823)/ 값 3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