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마키의 서울유레카

한국도 일본도 설음식은 떡국
설 연휴를 한국에서 보낸 지 오래됐다. 이번 연휴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나도 숙소에서 떡국 먹고 나이 한 살 더 먹었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습관은 일본에도 있다. 일본에선 떡국을 조우니라고 부른다. 조우니는 잡다한 식재료를 한꺼번에 끓인 국을 말하는 것인데, 그만큼 지역과 집안 따라 여러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 나는 이해한다. 떡도 동그랗게 썬 것과 네모로 썬 것, 그냥 끓인 것과 구운 떡을 국물에 넣은 것 등이 있다. 국물을 내는 재료도 다시마, 된장, 간장, 버섯, 오징어 등 다양하다.
일본에서 떡국이 문헌상에 등장한 시기는 15세기경이라고 한다. 연말에 제단에 바친 떡을 먹는 일부터 시작되었다는 통설이 있는 반면, 전국시대에 무사들이 잡다한 식재료를 넣고 끓여 먹은 게 조우니의 기원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아무튼 에도시대 때까지는 흰 쌀을 먹을 수 있는 계층은 무사로 대표되는 지배계급과 일부 부유한 상인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떡국도 역시 무사들이 의례로 설날에 먹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통설도 있다.
아무튼 한국과 일본이 설날에 같은 풍습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지만 이번에 언급하고 싶은 것은 떡이 아니라 국이다. 나는 한국인을 국물의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근대화 이전까지 육식을 금기시한 탓에 한국만큼 국물음식이 발달되지 않았다. 내가 본 한국의 국물음식은 정말 다양했으며, 내가 ‘깜놀’하며 즐기고 있는 맛난 음식들이 있다.
일본 음식상의 기본은 밥, 주요리, 반찬, 그리고 국물이다. 물론 요즘은 국물을 먹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본 여행을 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규동’이라고 불리는 소고기 덮밥의 체인점들이 있다. 그중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규동집은 요시노야(吉野屋)다. 요시노야는 1990년대 중반에 한국 체인점을 열었으나 2년 만에 철수했다. 아무래도 시기상조였던 듯.

한국에서 규동집이 실패한 이유
20여 년 전의 한국인의 입맛은 현재보다 확실히 보수적이었다. ‘규동’을 ‘비프볼’이라고 불렀다. 주문 후 패스트푸드점들처럼 스스로 음식을 가져가야 하는데, 사기그릇에 담긴 규동을 스스로 식탁으로 운반한 것 자체를 어색해했다. 게다가 ‘미소된장국’을 별도로 구매해야 하며, 김치도 나오지 않다니…. 실패는 당연지사. 그렇다면 지금은…. 요시노야는 반면교사가 되었다. 요즘 한국에 진출한 일본 음식점 대부분은 국물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영화판을 전전하던 나에게 한국의 도시락문화는 놀람 그 자체였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성장한 한국의 외식산업 중 하나가 도시락업체다. 그것이 진화돼 요즘 영화판은 ‘밥차’가 대세가 되었지만, 당시 따뜻한 밥과 국이 함께 제공되던 도시락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일본 도시락집에는 없는 서비스다. 일본에서 영화촬영 현장을 여러 번 다닌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밥차’를 만난 적은 없다. 식사로 도시락이 나오는데 상상하시듯 편의점 도시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따뜻한 국물은 없다. 여기서 한국 사람들의 정서가 이해된다. “어떻게 국 없이 밥을 먹나?” 진심 그렇다. 나도 한국생활 30여년에 한국사람 다 돼 그런가? 국 없이 밥 먹는 게 어색하다.
생각해보니 한국은 국물요리가 그날 식탁의 메인이다. 아무리 밑반찬이 풍성해도 국물요리가 없으면 ‘차린 게 없는 식탁’이다. 한국 주부들의 고민 중 하나인 “오늘 뭐 먹지?”는 “어떤 국물요리하지?”의 다른 표현인 거다. 그만큼 한국 국물요리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365가지인 것이다. 일본도 우동과 메밀국수가 있지 않으냐고? 대답대신 그냥 웃고 말겠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국물음식이 발달된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의 양념연구소 홈페이지(http://yangnyeom.jp)에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한국인은 국물 없이 식사를 하면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국물은 식사 때 중요한 존재다. 비교적 건조한 기후 풍토 때문에 국물을 많이 먹었다는 점과, 국물요리 자체가 적은 양의 재료로 최대한의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한반도의 기후적 영향과 요즘 시쳇말로 ‘가성비’가 국물요리 발달의 주원인이라는 말이다. 또한 소, 닭, 돼지, 해산물 등이 기본이 되지만 된장 등 장류의 발달도 한몫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국의 국문화가 놀라운 이유
국물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식탁을 보고 당혹감을 표하기도 한다. 국이 밥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은 것에 대한 놀라움이다. 한국인들처럼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는 것이 아니라 그릇째 들고 마시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그런 당혹감은 한국인들의 식습관을 보게 되면 금세 사라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인들이 ‘국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떠먹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마시지 않고 떠먹는다.
내가 즐겨 먹는 한국의 국물음식은 갈비탕이다. 한국에선 ‘갈비’하면 뼈가 함께 있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동쪽나라에서 온 이방인인 나에게 뼈가 함께 있는 갈비탕이나 갈비는 맛으로나 비주얼로나 충격이었다. 어째든 뼈에서 고기를 발라먹는 재미는 일품이었다. 거기다 국물까지 있는 탕이라니….
한국의 지인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한국음식 뭘 좋아해?” 나는 “순두부”라고 즉답한다. 갈비탕과 함께 즐겨 먹는 음식인데, 의외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요즘은 일본에서도 순두부 양념을 슈퍼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으며, 한식당 등에 가면 쉽게 먹을 있는 음식이 순두부다. 하지만 나에겐 가난한 유학생의 추억이 서린 음식이 순두부다. 한국에 유학생 신분으로 와 있었던 1980년 말,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던 때 신촌의 분식집을 전전하며 순두부에 탐닉했던 나였다. 물론 갈비탕 보다 가격이 싸다는 점과 20대 청춘 시절 맵다는 이유로 공깃밥 두 그릇을 거뜬히 비울 수 있었던 까닭도 있다.
나의 ‘2차 순두부 붐’은 2002년 3월. 취재 때문에 LA에 살던 한국 영화인을 만나러 갔었다. 그때 현지 코디네이터가 안내해준 식당이 코리아타운 안에 있는 어느 순두부 전문점이었다. 순두부 전문점이라는 것은 한국에도 없었고, 순두부 하나만으로 장사가 될까 하며 약간 의심을 가졌지만 여하튼 한 번 가보자는 코디네이터의 권유에 막연하게 따라갔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생각한 순두부집이 아니었다. ‘소고기’, ‘해물’, ‘섞어’ 등 다양한 종류의 순두부가 메뉴판에 있었다. 나는 그때 해물순두부를 주문하였는데 한국 전통 순두부와 다른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국, 찌개, 탕, 전골의 차이
라면과 카레는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개량된 음식이라고 전에 소개한 적이 있었다. 순두부는 태평양을 건너 짧은 기간에 본국과 다른 진화를 이룬 것이다. 한국음식의 거의 모두를 먹었었다고 생각한 나에게 LA에서 먹은 순두부는 오랜만에 느낀 충격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LA순두부’가 한국에 상륙했고, LA순두부의 한국 역상륙은 문화의 유전을 실감케 하는 일이기도 했다.
여기서 외국인이기에 갖는 의문, 혹은 내국인들도 가끔 의심해볼 만한 것들. ‘국’, ‘찌개’, ‘탕’, ‘전골’의 차이는 뭘까?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쪾국 : 고기, 생선, 채소 따위에 물을 많이 붓고 간을 맞추어 끓인 음식. [비슷한 말] 갱탕.
쪾찌개 : 뚝배기나 작은 냄비에 국물을 바특하게 잡아 고기·채소·두부 따위를 넣고, 간장·된장·고추장·젓국 따위를 쳐서 갖은 양념을 하여 끓인 반찬.
쪾탕 : 국의 높임말.
쪾전골 : 잘게 썬 고기에 양념, 채소, 버섯, 해물 따위를 섞어 전골틀에 담고 국물을 조금 부어 끓인 음식.

위의 설명을 보면 탕은 국의 높인 말이라고 차이를 두고, 전골은 국물을 조금 부어서 끊인 음식이라 찌개보다 국물이 적다는 설명이다.
과연 위의 구별을 분명한 것일까요? 삼계탕은 삼계국이라고 하지 않는다. 닭고기자체가 귀한 것이라 탕이라고 높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감자국과 감자탕을 비교하면 전자는 사발 안에 들어 있는 이미지이며 후자는 냄비로 끓이는 이미지다. 감자탕은 국물이 비교적으로 적은 편이다, ‘감자전골’이라고 해야 마땅한데 아무도 그렇게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나중에 알았는데 감자국과 감자탕은 그 재료부터가 별개였다. 내 오해임을 밝힌다.) 김치찌개와 김치전골은 명칭은 다르지만 실제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조개탕, 조갯국, 조개전골은 있으나 조개찌개는 없다. 인터넷 상에서 검색하면 여러 설명들이 있으나 “이거다!”라는 답변을 찾을 수 없었다. 독자 여러분이 외국인들부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의외로 어려운 명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째든 모호하지만 맛있게 먹으면 되지 않을까? 장미가 장미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그 아름다움을 누구나 인정하는 것처럼….
아무튼 한국에는 다양한 국물음식이 있으며 비빔밥보다 더 세계에 어필할 수 있는 한식문화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