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프랑스 현대무용가 헤수스 히달고와 협업하여 만든 작품 『눈보라(Blizzard)』를 올리기 위하여 2016년 11월26일부터 12월4일까지 8박 9일간의 춤 여정이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펼쳐졌다. 초연으로 2015년 10월22~23일 부산의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올려진 지 1년 만이었다. 프랑스 소설 「눈(Snow)」을 읽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탄생된 『눈보라』는 현대무용가와 한국무용가 총 7명의 무용수가 함께한 작품으로, 이번 프랑스에서의 공연은 헤수스의 기획에 의해 성사되었다.
헤수스와의 만남은 23회 「부산국제여름무용축제」(2010년)와 10회 「국제무용제」(2014년)에 참가하면서 이루어졌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작업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한국창작춤과 현대춤의 합작을 통해 새로운 동·서양 춤의 에너지가 융합되고 창출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나의 유럽 공연은 독일 베를린과 호주 시드니에서 한 이래로 20여 년만이고, 특히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선보인다고 하니 그동안의 나의 춤 여정에서 새로운 전환점으로 느끼며 설레는 가운데 프랑스의 파리공항에 도착하였다. 칠흑 같은 밤, 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우리를 마중 나온 헤수스의 렌트카에 몸을 싣고 약 2시간 거리에 떨어진 노르망디의 캉(Caen) 시에 있는 로얄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짐을 풀고 한국인이 매니저로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데부터 캉에서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오! 처음부터 나온 음식이 온통 빵에다 치즈, 햄뿐…. 단원들에게 미리 햇반과 컵라면을 준비하라고 단단히 알려줬건만 짐의 부피 상 많이들 준비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의 눈빛들이 가득했다. 식사를 하며 다음날 스케줄을 의논하여 매주 일요일 오전10시부터 오후1시까지 열린다는 야외장터를 둘러보고 헤수스의 극장 히포캠프 소극장에서 공연 리허설을 하기로 하였다.
다음날인 27일, 창문 사이로 비쳐든 햇살에 의해 깨어나면서 커튼을 거두니 마치 성같이 가지런히 늘어선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부터 이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실감이 들면서 내심 긴장감도 서서히 들었다. 그때 떠오르는 단어는 ‘초심’. 그동안 춤에 대해 안주했던 반복된 삶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신선한 기운을 맛보며 이제 환갑이란 나이도 지난 나에게 이 느낌은 정말로 중요하였다. 그리고 공연이 마쳐질 때까지,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노르망디는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맞아 완전히 폐허 상태에서 새로이 복구된 도시여서 마치 곳곳이 유적지같이 고풍스러웠다. 오래된 교회나, 성당, 성벽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원래의 옛 모습인 건물들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나라는 오래된 건물들을 찾아 볼 수 없게 현대 빌딩으로 둘러싸인 것과는 비교가 되었다. 야시장에서 점심거리로 통닭과 과일을 마련하고 리허설 장소인 히포캠프소극장으로 향하였다. 춤 전용 소극장인 히포캠프소극장은 100석 정도의 규모로 높은 천장과 오디오, 조명시설, 분장실, 소품실, 그리고 휴식공간도 있었는데, 공연이 없을 경우에는 무상으로도 빌려준다고 하였다. 내심 우리나라도 이런 규모의 극장들이 많았으면 하는 부러움을 느끼면서 『눈보라』 작품과 히포캠프에서 공연할 단원들의 소품리허설을 하였다.

그 다음날 (28일) 첫 공연 장소인 약 40분 거리의 생로(Saint-Lo) 시로 이동하였다. 한국의 높고 푸른 하늘과도 같은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 이동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고, 산은 없고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위로 여러 마리의 하얀 소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선 우유가 유명하다고 한다.
마치 휴양지의 단층건물 같은 뤼노텔(Restaurant Lunotel) 호텔에 짐을 풀고 생로극장으로 향하였다. 꽤 오래된 극장인 생로극장은 350석 정도의 중·소극장으로 로비엔 2016~2017년 공연 스케줄 홍보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조명과 영상은 다비아노(원래 현대무용가였던)가 담당하였고 음악은 헤수스가 담당하여 나는 춤 외 무대스태프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춤만 출 수 있어 매우 행복했다.
29일 첫 공연은 기대감과 긴장 탓인지 일부 유연하지는 못하였지만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공연에 대한 호응도를 알고 싶어 했지만 뒷마무리를 해야 하는 헤수스를 분장실에서 기다리다가 대화를 원하는 일반관객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갔다고 해서 단원들이 못내 섭섭해 하였다. 아쉬움을 안고 생로에서 캉으로 처음 묵었던 호텔로 다시 이동하였다.
30일 히포캠프에서 단원 허종원, 박은지, 구은혜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외국인 참여 무용인은 6명(30~40대)이 참여하였는데 각 작품마다 개성과 의식의 에너지가 넘쳐보였다. 대부분 라이브와 인터렉터 작업 위주로 총 11작품을 선보였다. 한국 유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국 전통춤을 매우 보고 싶어 했다. 직접 헤수스에게 말해서 다음 기회에 볼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다.
12월1일과 2일 양일간은 캉국립안무가센터에서 워크숍과 컨퍼런스를 진행하였다. 국립 안무가센터는 전국적으로 16개로, 노르망디에 2개가 있다고 한다. 워크숍 대상으로 주로 무용지도자 10여명이 참여하였고 1일 허종원과 구은혜는 『눈보라』에서 시도한 동작을, 2일은 한수정이 『봉산탈춤』 기본무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나의 컨퍼런스로는 한국춤의 특징과 원리를 『살풀이춤』 시연과 함께 설명하면서 덧붙여 『눈보라』 작품과정도 발표하였다. 발표를 들은 전공자 및 일반시민들은 동·서양의 만남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며 질문하였다. 그리고 단원 박재현은 거리에서 본인의 춤을 시연하기도 하였다.

2일 오후에 간단한 짐만 가지고 다음날 공연장소인 캉에서 도빌(Deauville) 시로 40분간 이동하였다. 도착 즈음 홍보물에 CHOI가 보여서 여기도 CHOI가 있네 하면서 스쳐지나갔는데 알고 보니 우리 공연의 홍보물이었던 것이다. 도빌은 바다가 있어 해산물이 유명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한때 국제 아시아 영화제가 개최되었던 곳이고, 명품의 거리와 백화점이 있다.
공연할 도빌극장은 이탈리아풍의 극장으로, 카지노 건물 안에 있었다. 니진스키와 이사도라 던컨이 섰던 극장이라고 하였다. 부산을 떠나기 전 이사도라 던컨의 영화를 봐서 그런지 극장을 떠올려보며 내가 마치 한국의 이사도라 던컨으로 착각에 빠져 보기도…. 역시 350석 규모 중소극장인데 이 먼 곳까지 와서 누가 공연을 보러 올까 내심 걱정하면서 공연 10분전까지 막사이로 본 관객은 몇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관객 수는 머리에서 지우고 오직 춤에만 집중하기로 하였다. 막이 오르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이다. 호르존트 가까이에서 걸어가면서 퇴장하기 때문에 명상하듯 서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걸음걸이에만 집중하였다. 오래된 극장이라 약간 비탈지고 무대가 다른 극장에 비해 높았다. 나의 독무부분에서 비로소 관객을 보게 되었는데 관객 머리만이 빽빽하게 보여서 깜짝 놀랐다. 춤에만 몰입해야 하는데 어느새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들어왔을까 놀라웠다. 관객석도 너무 가까워 관객의 몰입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무대에 대한 희열감, 그리고 이 한순간을 위해 연습했던 시간들이 교차되었다. 순간순간 자연스럽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멈췄다 내쉬면서 나의 몸동작을 풀어나가며 최선을 다하였다.
생로에서는 긴장감과 피로감이 있었던 것에 비해 도빌에서는 최상의 컨디션을 갖고 공연에 임하는 단원들에게 너무도 감사하고 헤수스, 다비아노, 관객들에게도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이제 프랑스에서의 모든 춤 여정이 마쳐지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도빌의 유명한 석화와 화이트 와인은 아쉽게 뒤로 하고 캉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약 일주일동안 3번의 호텔을 옮기면서 숨 가쁜 일정이었지만 한국춤이 녹아든 작품을 유럽에서도, 특히 예술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올린 점이 무엇보다 뿌듯하였고 앞으로 한국창작춤이 해외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교 수업일정상 파리의 자유여행(단원들은 자유여행 진행)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홀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삶은 여행이고, 춤은 여행이다라고 읊조리면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박스기사]



“눈보라”가 도빌의 카지노 극장 무대를 환하게 비추었다

최은희의 한국 전통춤과 헤수스 히달고(jesus Hidalgo)의 초(超)현대 안무의 만남에서 탄생한 공연 『눈보라』가 12월3일 토요일 도빌의 카지노 극장 무대에 섰다.



눈처럼 흰색
이번 토요일 저녁, 카지노 바리에르 드 도빌의 극장은 동양적 전통과 현대적 모색이 일어날 법하지 않은 만남에서 탄생한 발레를 관람하기 위한 관객들로 가득 채워졌다. 무대장치가 완전히 배제된 무대는 눈처럼 하얗고, 비니 케이(Vinnie kei)가 생기를 불어넣는 음악은 연이어 극장 분위기에 어울렸다. 그리고 무용수들은 이 발레에 영감을 준 막상스 페르민(Maxence Fermine)의 소설 「눈」에서 작가가 가졌던 격한 감정을 바로 느꼈다. 즉, 사랑과 시가 흰 옷을 입은 무용수들을 인도했을 것이다. 인체의 동작의 정확함과 연결 시퀀스의 뛰어난 완성이 번갈아 나타났으며, 두 무용수들이 무한한 키스를 나누면서 정열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은 특히 주목할 만했다.

존재감
최은희가 무대 위에 섰을 때 이는 관중들을 감명 깊게 했다. 그녀는 우아하고 부드러웠지만, 놀라운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그녀 주위를 맴도는 무용수들에게 강렬한 시선을 보냈다. 눈과 눈보라에 잠긴 듯한 환희가 한 시간 동안 계속 되었고, 관중들은 갈채를 보냈다. 헤수스 히달고는 관객에게 인사하기 위해 발레 공연에 합류했다.

출전: 「Ouest France」
(http://www.ouest-france.fr/normandie/deauville-14800/blizzard-illumine-la-scene-du-theatre-du-casino-deauville-4656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