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롱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미개척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범위가 다양해지고 넓어졌다며 환성을 지른다. 하지만 그렇게 발전만 거듭하는 과정 중에 부작용도 생기기 마련이다. 만일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아기를 낳아서 기르는 데 필요한 희생이 너무 거창하게 느껴져 모든 나라에서 피임이 합법화되고, 그렇게 피임이 확산되다보니 인류가 더 이상 후손은 생산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면? 거장 알폰소 쿠아론이 만든 영화 「칠드런 오브 맨」(공상과학, 미국/영국, 2006년, 104분)은 이런 문제의식으로 시작된다.
서기 2027년, 모든 여성이 임신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후손을 생산할 수 없으니 수 십 년 내에 인류가 자연스럽게 멸망하는 종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때문에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정부가 국가를 운영해나갈 만한 기능을 상실했고 폭동과 테러가 난무한다. 그나마 유일하게 군대가 살아남아 통제력을 갖고 있던 영국에는 불법이민자가 넘쳐난다.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한때 정부의 강압정책에 저항하는 지하조직에서 활동했지만 유일한 희망이었던 어린 아들마저 죽고 나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었던 줄리앤(줄리안 무어)이 테오 앞에 나타나면서 그의 삶이 급격하게 바뀐다.
알폰소 쿠아론이 감독한 영화 「그래비티」(2013)를 보며 독창적인 편집기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바 있다. 무중력의 공간을 그 정도로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이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도 불법이민자 구역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이 대단했다. 지하조직 특공대와 탱크를 동원한 군대가 시가전을 벌이는 것인데 흑인여성 키(클레어 홉 예쉬티)를 보호하기 위해 테오가 전투 한 복판에 뛰어든다. 먼저 루크(치웨델 에지오포)가 이끄는 특공대가 테오를 제압한 후 키를 데려가고, 와중에 중무장을 한 이민자들의 데모 행렬이 하늘로 총을 쏘아대며 거리를 지나간다. 이어서 군대가 투입되고 도망가는 행렬을 좇아 특공대가 피신한 건물로 돌진해 들어온다. 이 모든 게 끊어짐 없는 하나의 씬으로 약 10분 정도 진행된다. 길이 남을 명장면이라는 말은 이런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 외에 영화에서 또 한 가지 무게를 두는 점은 불법이민자들의 열악한 처지다. 그들은 마치 나치가 유대인들을 게토에 몰아넣었듯 폐쇄된 구역으로 쫓겨 들어가야 한다. 목숨을 부지하고자 사선을 넘어와도 결국 이민자들의 눈앞에 또 다른 철망이 놓여있는 셈이다. 예지력이 뛰어난 감독이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유럽 국가들은 다른 나라를 파괴시켜놓고 그 결과로 생긴 불법이민자들을 다시 한 번 짓밟는 행태이다. 이민정책에 대한 경각심이 절로 생겨났다.
영화는 종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죽음의 땅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만들어준다. 탈무드에 보면 한 사람을 살리면 전 인류가 사는 것이고, 한 사람을 죽이면 전 인류를 몰살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인류의 조상은 원래 아담 한 사람이었기에 그 후손들 누구라도 공동운명체에 속한다는 뜻이다. 키에게 거는 희망이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