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시인 사진가. 꼭 10년 전 2월 2일 하늘로 떠난 오규원(1941~2007)의 초상이다. 그는 생전 40년 동안 시집 10권을 냈다. 사후 10년 뒤 사진 산문집 『무릉의 저녁』(눈빛)이 나왔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꽃 그늘로 새가 찾아들면 그때 한 번 만나자”고 썼다. 그 약속을 고인은 책으로 지켰다.
10주기 특별전 「봄은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26일까지 서울 자하문로 류가헌)는 이 책에 실린 시인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월간 「책과 인생」(범우사)에 포토에세이 형식으로 연재했던 몇 점을 빼곤 다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시인은 평생 그를 괴롭힌 만성폐쇄성폐질환(폐기종)이란 희귀한 병 탓에 오염된 서울을 떠나야 했다. 폐기능이 정상인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니 청정한 공기를 찾아야 살 수 있었다. 그곳이 강원도 정선군 무릉이었고 적막강산에서 그는 사진을 찍었다. 시가 말하지 못한 것을 그는 사진으로 말하고 있는 것일까.
스승을 찾아 무릉에 머물렀던 박형준 시인은 “저녁 어둠에 까맣게 물든 서쪽 겨울나무들만이 전편에 펼쳐져 있는 사진 역시 선생의 마음 자체일 것”이라고 썼다. 제자의 짐작처럼 시인 사진가는 무릉이나 설악이 품고 있는 풍경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남긴 사진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를 읽는 데는 사실을 사실로 읽을 수 있는 시각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실들이 서로 어울려 세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세계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무릉의 봄부터 겨울까지를 다룬 사진은 대지보다는 허공을, 풍요보다는 앙상함을 좇는다. 그럼에도 한 겨울의 눈 풍경은 춥지 않고 따듯하다. 시인은 “기하학적인 세계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그 기하학적 이미지의 그늘을 보여주는 균열과 상처에도 똑같이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시인이 찍은 눈 사진은 “단순함 속에 본질이 담긴다는 것을 눈처럼 잘 보여주는 존재는 드물다”는 그 눈의 정체를 보여준다. 그는 카메라로도 시를 쓰고 있었다. 그의 사진을 보면 그의 시가 떠오른다.
“노점의 빈 의자를 그냥/ 시라고 하면 안 되나/ 노점을 지키는 저 여자를/ 버스를 타려고 뛰는 저 남자의/ 엉덩이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버스 정거장에서」 중에서)
다시 그의 눈 사진을 바라본다. 고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세계 위에 서서 멀리까지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세계가 너무 눈부시거나 아니면 우리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