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새해 업무가 시작된 1월2일, 국내 출판 도매업계 2위 업체인 송인서적이 부도 처리되었다. 1959년 송인서림으로 출범하여 60년 가까이 출판 도매유통을 지킨 업체다. 1월10일 출판계, 민주당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송인서적 부도 사태에 따른 출판산업 피해 대책 긴급 간담회’에서 출판계가 밝힌 송인서적의 부도 관련 액수는 부도 어음 약 100억 원을 포함해 총 688억 원에 이른다.
송인서적 거래처인 2천여 출판사와 1천여 서점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송인은 다른 도매상들보다 거래 장벽이 낮고 거래처도 많은 편이라 영세 출판사와 영세 서점의 거래가 많았다. 영세 출판사와 서점들이 출판시장 불황의 매서운 한파를 견디며 어렵게 유지되던 상황에서, 업체당 수천만 원부터 수억 원까지 ‘물린’ 상황은 보통 일이 아니다. 책의 판매 이익금으로 환산하면 수만 부에서 수십만 부를 팔아야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송인서적의 부도 원인으로는 출판시장 및 도매유통의 축소라는 경영환경 악화와 함께 경영 부실의 누적, 어음 거래 관행, 납품 대행 시장에서의 출혈 경쟁 등이 꼽힌다. 합리성과 규모의 경제가 결여된 단행본 출판유통 구조의 가장 약한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부도 사태 이후 출판계 단체와 채권단,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등에서 전례 없이 다양한 해법과 지원 방안을 발 빠르게 제시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피해 출판사 대상의 저금리 대출과 경영안정자금 지원, 도서 구입비 조기 집행이 큰 줄기다. 이에 대해 피해 출판사들은 공적 자금에 의한 부도 어음의 매수와 공신력 있는 도매상의 조속한 재건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도매상 부도 사태는 후진적인 유통체계를 증명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산업 전반의 혁신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출판산업에서 유통자본과 유통질서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것은, 출판시장의 핵심인 학습지와 학습참고서를 만드는 대형 출판사들이 총판을 비롯한 독자적인 유통 채널을 갖춘 반면 대다수 단행본 출판사들은 협업체계와 변화하는 유통 환경에 대한 대응력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산업과 정책의 난개발, 출판 생태계를 뒤덮은 각자도생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협업과 공생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해방 이래 한국 출판의 최대 과제였던 유통구조 개선의 핵심은 유통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는 것이다. 어음 거래를 순차 폐지하고 위탁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없애야 한다. 거래 대금 중 일부만 지급하는 잔금(잔고) 관행도 사라져야 할 구시대 유물이다. 출판시장 전체를 망라한 출판 판매정보 시스템 구축도 절실히 요청된다.
나아가 거품가격 구조를 타파하고 지역서점을 키우기 위한 완전한 도서정가제 정착, 각종 도서관의 도서구입비 증액, 독서환경 조성을 위한 체계적인 정책 추진으로 출판시장 확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출판유통 구조 혁신과 거래질서 확립, 출판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한 새로운 판짜기의 도화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